가솔린을 아끼려다

2008.09.17 03:38

이영숙 조회 수:393 추천:118


“가솔린을 아끼려다”

        요즘 가솔린 값이 천정부지로 뛰어 오른다.  프리미엄은 4달러에 훨씬 넘어갔고, 레귤러 값이 4달러에 바싹 다가선지 이미 오래전이다.  매스컴들은 이제 머지않아 5달러가 넘어설 거라며, 안 그래도 불안한 서민들의 목을 미리부터 잔득 죄고 있다.  너나 할 것 없이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가솔린을 아낄까 하는 생각이다.  가능만 하다면 차를 두고 걸어갈 수 있는 곳은 걸어가고 싶고, 버스가 잘 소통되는 곳이라면 버스를 이용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지만 그 또한 여의치가 않을 때가 더 많다.  그러니 내가 가진 모든 머리를 짜내서 연구 한다.  가솔린을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아낄 수 있을까 하여.  그러든 중 며칠 전 신문에서 좋은 상식을 하나 얻었다.  신문 역시 어떻게 하면 가솔린을 절약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여러 가지 방안들을 제시했다.  그 중에 하나가 65마일 이상으로 달리면 가솔린을 쏟으며 가는 것이라고.  가능하면 60마일 이상은 속력을 내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RPM 2000을 넘기지 않고 주행하는 것이 가솔린을 아끼는 방법이라고 했다.

        아, 그렇구나.  이제 그렇게 해야지.  매일 101프리웨이와 405프리웨이를 다니는 나는 가솔린을 아끼는 방법을 실천해야만 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55마일정도를 유지하며 때로는 60마일이 조금 넘기도 하지만 그럴 때는 가능한 60마일 아래의 속도를 지키려 노력하며 천천히 달렸다.  나의 답답한 운전에 많은 차들이 나를 앞질러 갔고, 어떤 운전자는 빵빵 거리다가 앞지르며 나를 돌아보고 뭐라고 중얼거리며 갔다.  그 모습은 바로 얼마 전의 나의 모습과 흡사하다.  앞차가 조금만 천천히 가도 속이 답답하여 즉시 차선을 바꾸어 추월하면서 “도데체가 운전을 하는 거야 조는 거야”라며 중얼거렸던 내 모습이다.  아마 그들도 그러한 말을 중얼거리며 가겠지.

        그런데 이상한 것은 느리게 운전을 하니 왠지 그렇게 마음이 편안해지고 여유가 생겼다.  사고의 위험도 훨씬 줄어든 것 같고, 마음이 가벼워지며 주위의 모습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차갑고 딱딱하여 도대체가 풀 한포기 생명 한 움큼 자랄 수 없는, 그래서 차가움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아스팔트.  그 시멘트 바닥들에게는 부드러움이나 따뜻함은 찾아 볼 수 없다.  여유란 전혀 허용되지 않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곧게 그어진 하얀 차선.  그들은 세상에 곡선의 아름다움도 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세상의 모든 것들과 단절하겠다는 굳은 의지가 결연한 근엄한 모습으로 버티고 서 있는 저 콘크리트 방음벽.  단절보다는 함께 어우러져 사는 것이 더 편안함이고 자연스러움이라는 것을 세상에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배운 적이 없는 모습이었다.  왜 이러한 모든 것들이 80마일씩 달려갈 그때는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전혀 편안함이 없는 그것들.  내 삶의 모든 여유를 앗아 가버리는 그 삼엄함, 딱딱함, 냉정함, 차가움.

        몇 년을 같은 프리웨이를 타고 다녔지만 딱딱한 아스팔트길과 양 옆으로 둘러쳐진 콘크리트 벽 외에는 아무 것도 눈에 들어온 적이 없었음에도 늘 그런가보다고 아무런 느낌도 없이 지나다녔다.  차가운 것은 원래 그렇게 차가웠었나보다, 딱딱한 것은 언제나 그랬으니 여전히 그런가보다,  여유 없음을 보고도 안타깝기 보다는 늘 그랬으니 지금도 그렇겠지 라고 지나온 그 시간들.  나의 무관심이었을까.  바삐 살아온 내 삶의 어쩔 수 없는 모습이었을까.  지금 보니 그 콘크리트 벽 위로 울창하게 나무들이 덮고 있기도 하다.  아니, 언제 저것들이 저 자리에 있었지?  늘 삭막하게만 느끼고 지나온 이 길에 저렇게 푸르른 나무들이 둘러쳐져 있었단 말인가?  군데군데 보이는 저 자카린다는 깊이를 측량 할 수 없는 파아란 하늘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보랏빛이다.

        참 여유롭다.  이렇게 여유롭게 사는 것이 삶인 것을 나는 너무 앞만 보고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80마일씩을, 아니 때로는 더 빠르게 거침없이 달리며 하루의 성패가 프리웨이를 얼마나 빨리 달리느냐에 달려있기나 한 것처럼 정신없이 달려가는 것이다.  쌩쌩, 휙휙, 소리 내며 지금 내 곁을 지나가는 차들이 그렇다.  여유도 없고, 주위를 둘러볼 시간도 없고, 아름다운 보라색의 자카린다를 눈여겨 바라볼 시간도 없었다.  딱딱한 콘크리트 벽이 전부가 아니라 그 위에 저렇게도 푸른 나무들이 둘러쳐져 있다는 것도 볼 시간도 없이 지나온 나날이었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 삶의 모습이다.  이민생활의 모든 모습들이 그렇게 지나왔었다.  늘 바쁘게 사는 것, 여유를 모르고 지나온 시간들.  네가 그러니 내가 그렇고, 우리가 그러니 모든 것은 당연한 것이라는 듯.  남에게 눈 돌릴 시간도 여유도 없고, 잠시도 돌아보고 이웃을 보듬어 주거나 따뜻이 감싸 안아 줄 그러한 마음이 전혀 자리를 잡을 공간이 없었다.  내가 살아가는 것이 바쁘고, 나의 성공이 무엇보다 최우선이며, 내가 남들보다 한 걸음이라도 빨리 가서 자리를 잡아야 했다.

        뿐만 아니라 남을 추월하는 것이 내가 이기는 것으로 생각하고 어떻게 하든 추월하여 남보다 내가 앞서야 하는 욕망에 모든 것 덮어두고 달려온 나날이었다.  모두가 나를 추월하며 지나간다.  어제만 했어도 나도 뒤질세라 그들을 따라가서 다시 역 추월하며 경쟁적으로 갔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내 마음에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조금만 늦추면 가솔린도 아끼고, 안전하기도 하며, 여유롭게 아름다움을 즐기며 볼 수도 있는데 왜 그렇게 바쁘게 정신없이 살아왔을까.  그것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은 것을.  프리웨이에서 천천히 가기 시작하고, 조금 느리게 세상을 보기 시작한 후로 모든 것에 여유가 생기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인생은 얼마나 빨리 달리느냐 보다는 얼마나 바로 달리느냐가 중요하다'고 했다.  운전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는지.  내가 다니는 프리웨이는 65마일이 정해진 최고 속도이다.  빨리 달리면 교통법규를 어기는 것이다.  인생, 역시 무조건 빨리 가는 것이 대수가 아니라 바로 가야하는 것이라면 속도를 좀 줄이고 바로 가야겠다.  조금만 여유를 가지고 어려운 이웃도 돌아보고 내 손이 필요한 사람이 없는지 생각해본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제부터 운전이나 인생이나 규정 속도를 지켜서 빨리 가기보다는 바로 가는 삶을 살아가야지.  프리웨이에서는 도로 교통법이 정해준 대로 기준을 맞추어서 가야한다.  우리 인생에서는 정해진 속도가 있는데 그 속도에 불복하고 내 임의대로 '빠르게'만 가는 것이 대수는 아니다.  빠르게 가기보다 '바르게'가는 삶으로 만들어야겠다.  

        하나님이 나에게 허락하신 속도.  때로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휠씬 더딘 것 같아 마음이 답답하다.  좀 더 빨리 가서 남들보다 더 일찍 목적지에 도착하고 싶은 내 마음이지만 자꾸만 늦추시는 하나님.  속도를 늦추어서 천천히 가며 그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보아야겠다.  빨리 가는 것보다 바로 가는 것이 더 중요함을 배워야겠다.

5/12/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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