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공사 중

2008.09.25 03:18

이영숙 조회 수:398 추천:114

“지금은 공사 중”

  볼일이 있어서 한인 타운을 나갈 때 나는 주로 3가 길을 잘 이용한다.  6가로 갈 때는 윌턴을 만나기 전까지 나무가 우거져 울창한 숲이 있고, 가끔씩 보는 다람쥐들을 보는 재미나 새들의 소리가 참 좋다.  사철 변함없이 푸르른 그 시원함이란.  삭막하게 살아가는 도시인들에게 숲은 늘 마음의 안식처이며 쉼이다.  

  그런가 하면 윌셔 길을 이용할 때는 하늘의 높이라도 잴 듯 솟아 오른 빌딩으로 만들어진 숲들과 그 숲속에서 산소들이 흘러나오듯이 쏟아져 나오는 사람 구경을 할 수 있는 것도 싫지 않다.  백 개국이 넘는 나라 사람들이 모여 사는 로스엔젤래스에서 사람 구경이란 정말 빼 놓을 수 없는 재미다.  노란 사람, 까만 사람, 하얀 사람이 한데 어우러져 살아가며 주종의 관계로도, 친구의 관계로도 나름대로 만들어 가는 화합이 있어 인간 세상의 아름다움 중의 하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3가 길은 가장 밀리지도 않고 편안해서 나의 애용하는 길이 되어버렸다.  솔직히 밀리지 않아서 좋은 점도 있지만 사람은 늘 가기가 이용하여 익숙해 진 것이 편안하다.  3가 길은 오랫동안 다녀 나에게 퍽 익숙한, 아주 친숙한 길이 되었다.  이제는 특별한 일이 아니면 내가 선택하는 일번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약 두, 세달 전에는 정말 그 길로 가고 싶지가 않았다.  공사 중이어서 온 길을 다 파놓았다.  길이 울퉁불퉁하여 운전하기가 너무 불편하고 차에 많이 무리가 갈 것 같아서 염려도 되었다.  길이 그렇다보니 차가 얼마나 많이 막히는지.  그리고 공사 중이라 지저분한 것은 또한 어떤가.  여기저기 파 놓은 모습이 아름답지도 않고.  먼지가 일어 그곳을 통과 할 때는 차창을 열수도 없었다.  차창을 열수 없어 내가 싫어하는 에어컨디션을 켜야 하고.  그래서 가능한 그 길을 피하여 다른 길을 이용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좀 돌아가더라도.  내가 애용하던 길이 한순간에 가고 싶지 않은 길로 바뀌고 말았다.

  그러나 가끔은 꼭 그 길이 아니면 안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는 불편을 감수하고라도 그 길을 가야한다.  길이 밀려 마음에 답답함과 차가 손상될 것 같은 걱정과 울퉁불퉁한 길 때문에 생기는 짜증도 모두 인내하며.
  며칠 전, 3가 길로 갔다.  이게 웬일인가?  길이 너무나 아름답게 다듬어져 있지 않는가.  깨끗하게 포장 되고, 아름답게 정리 되고, 편안히 갈 수 있는 정말 좋은 길이 되었다.  공사를 하기 전 처음 길을 그렇지 않았다.  여기 저기 파인 곳도 많았고 파인 곳을 때운다고 한 것이 편편하게 때우지 못해 울퉁불퉁하여 운전하기가 아주 나빴다.  그리고 아스팔트를 깐 지 오래 되었기에 더럽고 지저분한 모습이었었다.  이렇게 공사가 끝나고 나니까 쪽 고른 편편한 길에, 새로 깐 아스팔트 덕분에 깨끗한 길이 되었다.  기분도 좋고 차를 운전하기도 아주 편안하여 졌다.  내가 다니지 아니한 몇 달 사이에 길이 이렇게 변해 있었다.

  상쾌한 기분으로 울퉁불퉁 흔들림도 없이, 얼음판에 미끄러져 나가는 듯 조용하게 움직이는 차를 느끼고 비록 혼자였지만 입가에 웃음이 넘쳐났다.  아, 뭔가 좋아지려면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시간이 지나야 하는구나.  집도 고칠 때는 참 불편하고 힘 든다.  어지러 놓은 가구들과 여기저기 제 자리에 앉지 못한 물건들을 보면 정말 불편하고 답답하다.  그러나 모든 공사가 끝나고 정리가 된 그 뒤에는 아름다움과 더하여 행복이 따른다.  

  아무런 힘든 일이나 어려움 없이 그냥 편안히 자고 일어난 어느 날 아침 세상이 갑자기 확 바뀌어서 좋아진 모습으로 변하여 있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귀찮고 짜증나고 어려운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이렇게 좋은 것으로 변화 되는 것을.  휘파람 소리라도 낼 듯 새털처럼 가벼운 기분에 문득 나의 삶이 떠올랐다.
  내 생에 있어서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지금 나는 ‘공사 중’에 있다.  50년을 살아오면서 이리 저리 파인 곳은 때워야 한다.  나 혼자서 열심히 때운 곳이 원래의 모양 보다 더 높이 올라 우뚝 솟은 교만한 모습을 가지고 울퉁불퉁 해진 부분은 깎아야 한다.  너무 오랫동안 방치하여 두어서 더럽고 때 묻은 부분은 긁어 내야하고.
  그런데 그 과정은 힘 든다.  참 많이 아프다.  그래서 가능만 하다면 피하고 싶다.  이 길이 아닌 다른 길로 돌아가고 싶고.  꼭 가야할 일이 아니라면 그냥 참고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할 수 없이 가야하는 때에도 불평이, 원망이 나오니.  왜 이래야 하는가?  왜 하필 이때인가?  다른 방법은 없을까?  온갖 생각과 원망과 불평이 내 마음속에서부터 흘러오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시간을 보냄이 없이 좋아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불편함도 아픔도 고통도 지나야만 더 나아진 모습을 만들 수 있다.  그래서 ‘고난은 위장된 축복’이라 하는 것이 아닐까.  공사를 모두 끝내고 나서야 아름답고 멋진 건물이 만들어 진다.  고난을 지나고 나면 축복의 시간이 우리 앞에 나타난다.  그 고난으로 인해 새롭게 만들어진 모습, 변한 상태, 한 발 전진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공사 중에는 불평도 있다.  불만도 털어놓고 원망도 서슴없이 쏟아 놓는다.  내일, 공사가 끝나는 내일을 바라볼 눈이 어두워졌기 때문에.  그러나 성숙한 사람은 공사 중에도 감사하며 기쁨을 누릴 수 있다.  감사할 줄 알며 눈을 들어 내일을 바라보며 기다릴 것이다.  
  잘못된 부분이 많을수록 더 많이 잘라내고 긁어내고 파내야 한다.  그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원망과 불평도 길어진다.  많이 잘못된 것을 고치기 위하여서는 시간이 많이 걸리고, 더 아름답게 만들기 위하여서도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  ‘큰 고난=큰 축복’이라는 공식이 성립될 수도 있겠지.

  3가 길을 공사하는 동안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이렇게 아름답게 변할 것을 예상하지 못하고 불편하다고 투덜댄 내 모습이 부끄럽다.


9/7/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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