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할아버지의 눈물

2009.02.04 07:12

이영숙 조회 수:472 추천:124

“어느 할아버지의 눈물” 채소가 가득하던 아파트 정원에 이제는 잔디가 푸르다. 정원 양 옆으로 키가 훌쩍 큰 두 그루의 팜 나무가 우리 아파트의 경비원이나 된 듯 버티고 서 있다. 며칠 전 불어온 바람에 떨어진 팜 나무 잎이 지저분하여 줍고 있었다. “정원사가 오지 않나요?” 지나가는 사람이 영어로 말을 걸어왔다. 순간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4년 전에 만난 그 할아버지 음성인 듯하여. 놀라 쳐다보는 나에게 그 한마디만 던진 신사는 웃음을 지으며 내게 대답할 시간도 주지 않고 그냥 지나갔다. 그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서 있는 내 마음은 어느덧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가슴 아리게 생각나는 할아버지가 있었다. 참 따뜻하고 친절하던 분. 낮선 할아버지 한 분이 지나가시다가 아파트의 작은 정원에서 잡초를 뽑고 있는 나에게 말을 걸었다. 유창한 영어에는 언제나 그렇듯이 잔득 주눅이 든 채로 대답을 겨우 했다. “당신은 지혜로운 여인이군요. 정원에 꽃이 아닌 야채를 심다니......”라고 말을 걸어오는 할아버지는 이곳에 이사 온지 1년이 지난 어느 날 내가 처음 보는 분이었다. 웃으며 “고맙습니다.”라고 대답하는 내게 “이것은 무엇이냐, 저것은 어떻게 먹는 것이냐?”를 열심히 묻고 나는 더듬거리며 그러나 공손하게 꼬박꼬박 대답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고 대답을 할 수 없어서 멋쩍게 “......내가... 영어가 부족해서......”라고 더듬거렸다. 할아버지가 나에게 미국에 온 지 얼마나 되었느냐고 물었다. “4년쯤......” 이라는 나의 말에 “4년에 그 정도면 잘 하는 편인데 뭘 그러냐.”며 칭찬까지 하는 그 할아버지는 퍽 다정한 분 같았다. 아이가 있느냐, 아이는 미국에 잘 적응하느냐 등 질문을 하던 할아버지가, “나는 1학년 때, 7살 때 미국에 처음 왔습니다.”라고 하시더니 갑자기 먼 산을 보는 듯 아련한 눈빛과 촉촉이 젖은 목소리로 “처음 학교에 입학하여 화장실에 가고 싶었는데 어떻게 말을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어서 그날 바지에 똥을 싸고 말았답니다.”라며 60년 전으로 돌아간 아득한 모습이었다. “얼마나 부끄럽고 창피했는지 지금까지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내 나이 70살을 바라보는데, 지금은 기억이 가물 하여 어제의 일도 잊어버리는데도 불구하고 그 옛날 60년 전의 일이 바로 어제 일보다 더 생생하게 나의 기억에 남아있지요.”라며 얼굴에는 미소가, 그러나 가슴에서는 아팠던 기억을 더듬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그 말에는 이민자라면 누구나 겪었음직한 아픔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또한 그 말은 내 가슴에 아릿한 기억이 되살아나게 했다. 처음 미국에 와서 아이를 학교에 보낼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한국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방학 연수차 온 어느 교사가 아이와 나를 보고 “내가 아는 아이가 한국에서 공부도 잘 하고 똑똑했었는데 미국에 처음 와서 영어가 되지 않으니 학교에 입학하여 열등반에서 공부하는 것을 보고 참 마음이 안타까웠다.”라는 말을 거침없이 뱉어 놓아 내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했다. ‘나의 모자라는 생각 때문에 아이의 마음에 상처만 남기는 것은 아닐까? 동양아이라는 이유로 다른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고 오지나 않을까?’ 온갖 염려와 걱정에 싸인 체 그해 9월, 2학년에 딸을 입학시켰다. 학교에 입학하는 첫날 아이보다 내가 더 떨리고 불안하여 아침에 일어나 잘 아는 목사님을 찾아가서 기도 받고 내가 또 기도해주고 학교로 데리고 갔다. 가면서 신신당부하며 타일렀다. “너는 한국아이니까 한국말을 하고 그 아이들은 미국아이니까 영어를 하는 것뿐이야. 그러나 조금만 지나면 너는 영어와 한국어를 모두 다 잘 할 수 있으니까 그 아이들보다 훨씬 똑똑한 아이가 될거야. 그러니 조금도 부끄러워하거나 주눅 들지 말고 지내라.” 몇 번이고 이르고 또 일러서 보냈다. 열등반에 들지는 않고 일반아이들과 함께 공부하였지만 처음 한참동안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입학하고 한 2주쯤 되었을까,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아이가 울고 있으니 데리고 가라고. 깜짝 놀라 학교로 한걸음에 달려갔다. 사무실에 앉아 이미 눈물을 그치고 나를 기다리는 아이를 보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무엇 때문에 울었냐고 물어도 “괜찮아, 아무것도 아니야”라고만 말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얼마나 힘들었을까. 나가 란들, 들어 오란들 어떻게 알아들을 수 있을까. 정말 화장실에 가고 싶어도 말 할 줄을 몰라서 그냥 쉬는 시간까지 참고 기다려야만 했을 것이다. 지금은 가끔 그 때 이야기를 하며 정말 스트레스가 많았었다고 말 할 때가 있다. 그 할아버지는 다음에도 자주 만났다. 아파트 앞에 작은 정원이 있는데 주인이 잔디를 심을 것이라 말하고는 그냥 두었기에 내가 상추며, 쑥갓이며, 케일이나 호박 등 여러 가지 채소를 심었다. 채소를 만지고 있을 때 가끔 그 앞을 지나가는 할아버지를 만났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하는 할아버지에게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만큼만 대답하고 함께 웃곤 했다. 한번은 만면에 미소를 가득히 머금고 나에게 다가와, “내가 오늘 몹시 흥분되는 날입니다. 내 딸이 30살인데 어제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동안 아이가 없어서 딸이 몹시도 불안해하는 것을 조금만 기다리라고, 아직 나이가 어리니 조금 더 기다리라고 말을 하면서도 나 역시 불안했었는데 어제 아들을 낳아서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나, 이제 할아버지가 되었답니다. 믿어지세요?” 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축하합니다, 정말 축하합니다.”맘껏 축하해드렸다. 할아버지는 가끔씩 지나가다가 내가 정원에 없어도, 집안에서 움직이는 모습에 창가에 보이면 길가에서 큰 소리로 불러 이야기를 걸었다. 나 역시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함께 이야기 하곤 했다. 어쩌면 그 할아버지는 지나는 길에 나와, 비록 영어가 되지 않아 긴 이야기나 깊은 이야기는 나눌 수 없었지만, 함께 잠시 이야기 나누고 가는 것이 즐거움이었는지 모른다. 자그마한 키에 약간은 남루한 행색. 나이보다 10년은 더 들어 보이는 그 할아버지는 우리 아파트에서 두 블록쯤 지난 곳에 시에서 마련하여준 보금자리에서 비슷한 형편의 사람들과 함께 생활했다. 가족은 딸 하나가 전부라고 말한 그 할아버지는 이민생활에 어려움이나 아픔을 나와 함께 이야기했다. 어떤 이들은 이민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집을 장만했다는데, 아직도 단칸방 신세를 면하지 못한 나. 이 넓고 넓은 미국 땅을 이 잡듯 뒤져도 사돈의 팔촌도 없이 딸과 둘이 살아가는 내 모습. 어쩌면 바로 할아버지의 그 모습이다. 이처럼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는 할아버지와 나는 거울을 들여다보는 마음으로 서로를 대했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 작은 정원이지만 가득히 자란 채소들은 우리가 먹는 것은 고작 서너 잎이고 주로 남에게 나누어주었는데 누군가에게 주려고 열심히 상추를 따고 있었다. 그 할아버지의 손에 술병이 들려서 나의 아파트 앞을 지나가다가 문득 멈추어 서서 나를 보았다. 그런 할아버지의 눈에는 가득히 눈물이 고여 있었다. 언제나 밝은 웃음이 얼굴에 가득해 보는 것만으로 나도 미소를 머금게 하는 그런 할아버지의 얼굴이 눈물로 젖어 있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던 일을 멈추고 벌떡 일어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세상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다 그런 것이 삶이 아니겠냐며 흐르는 눈물을 감추려고 하지도 않았다. “당신은 참 착한 여자이고, 친절한 여자입니다. 정말 좋은 사람입니다.”라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말을 하고는 흘러내려 얼굴에 가득한 눈물을 닦을 생각도 없는 듯 그냥 흘리며 내 앞을 지나쳐 갔다. 그 다음날 아침이던가. 바로 우리 집 한두 블록쯤 위쪽에서 시끄럽게 앵앵거리는 앰블런스 소리가 들렸다. 약간의 불안한 생각이 속에서 올라왔지만, 뭐 별일일까 하고 지나쳤다. 그리고 4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 그 할아버지를 다시 만나지 못했다. 어디로 가셨을까? 하나뿐인 혈육인 딸집에 가신 것일까? 아니면……. 할아버지가 보이지 않았을 때 왜 좀 일찍 찾아가서 알아보지 않았을까. 난 너무 냉정한 사람인가보다. 이민생활이 바쁘고 힘들었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그 냉정함을 변명하기에는 염체가 없다. 정원 한 켠에 잔디를 걷어내고 조그마한 공간을 만들어 상추라도 서너 포기 심어야겠다. 혹시라도 다시 모습을 나타낼지 모르는 할아버지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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