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걸이’

2008.10.16 03:02

이영숙 조회 수:322 추천:115

지난 토요일 우리교회 장로님 딸의 결혼식이 있었다.  그 아가씨는 특히 내 아이의 주일학교 교사였던 사람이라 나에게나 아이에게 특별한 사람인 것이다.         벌써 몇 달 전부터 아이는 결혼식에 갈 것을 부푼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결혼식이 가까이 오자 아이는 입을 옷이 마땅치 않다고 걱정이 가득하였다.  특히 이번이 아이가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참석하는 결혼식이어서 아이에게는 여러모로 특별한 기회인 것이다.  그러니 옷도 좀은 색다르게, 좀 화려하게 결혼식에 맞도록 입고 싶은 마음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우리 형편에 결혼식에 입을 옷을 사줄 수도 없는 것이고.         결혼식 옷이라는 것이 결국은 좀 드레시 한 옷인데 요즘 10대들이 평소에 입는 옷은 캐주얼 한 옷이지 그렇게 드레시 한 것은 잘 입지 않는 것이다.  딸은 옷을 샀다가 잠시 입고 리턴하면 어떻겠냐는 생각까지 했지만 내 생각에 그것은 마땅치가 않아서 허락을 하기 싫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별로 사치를 하지 않고 자라났다.  거기에 비해 딸아이는 사치를 많이 하는 편이다.  물론 지금이 옛날과 다르니까 그것이 얼마나 ‘많이’하는 것인지는 내 주관적인 입장에서 알 수는 없지만 내 눈에는 최소한 그렇게 보였다.         가끔은 생각하면 그러한 딸이 밉지 않아 보이기도 하다.  여자가 최소한 외모에 대한 관심을 가지는 것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과하지 않게 적당히 꾸미기도 하고 아름다움을 유지하며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가는 것은 자신에 대한 만족감이며 당당함도 될 수 있을 것이니까.  그러나 형편에 맞지 않는 것을 억지로 만드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라고 어떻게 설득을 할까 생각하며 지나왔었다.           가끔 딸과 책에 대하여 이야기하며 난 한국말로 읽은 책들을 권하여 함께 도서실에 가서 영어로 된 책을 빌려와 딸이 읽을 때는 참으로 뿌듯한 마음까지 들곤 한다.  벌써 이렇게 커서 내가 읽고 감명 받았던 책들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 행복이고 기쁨이었다.         며칠을 지나 어느 한가한 시간에 딸과 이야기할 시간이 있었다.  모파상의 ‘목걸이’를 이야기 하면서 사치나 형편에 맞지 않게 행동하는 것, 남에게 과시하기 위하여 꾸미는 것 등은 옳은 것이 아니라고 설명을 하면서 그로 인하여 당한 일들이 얼마나 어렵고 힘들었는지에 대하여 그저 편안히 이야기하듯이 말 하였다.         얼마 전에 내가 권하여 그 책은 벌써 잃었다며 다 알고 있다고 말하는 딸은 웃기만 하며 특별한 말은 없었다.  좀 이해하고 마음을 바꾸었을까 생각하고 있는데, 그 다음날 잠시 밖으로 나가는 길에 친구 집에 잠깐만 들렀다 가도 되겠냐고 나에게 물었다.  친구에게 받을 것이 있다며.         나가는 길에 잠시 들어가서 친구를 만나고 나온 딸의 손에는 옷이 하나 들려있었다.  결혼식에 입고 갈 옷을 친구에게 빌려 온 것이다.         아무 말도 없었다, 나는.  이제 다 큰 아이 내가 그 정도로 말하였으면 자신이 알아서 행동하여야지 더 이상 조그마한 것까지 말 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난 가끔 딸에게 말한다.  “이제 너도 15살이 넘었으니까 너의 일은 네 스스로 결정하도록 하여라.  그것이 좋은지 나쁜지 나에게 물어보면 조언은 해 주지만 결정권은 네가 가져라”  이제 나이가 그만하니 지금부터 스스로 결정하고 거기에 대한 책임도 스스로 질수 있도록 하여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결혼식에 예쁘게 잘 입고 다녀왔다.  옷을 입었을 때 예쁘다고, 잘 어울린다고 칭찬까지 해주었다.  이왕 이렇게 된 일.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한 2-3시간 잠깐 입었는데 빨아서 주어야겠다는 딸의 말에 동의하며 깨끗이 빨아서 드라이까지 하여 넘겨주는데 깜짝 놀랐다.  딸아이가 주머니에 껌을 넣어놓고 잊어버린 것이었다.  짙은 분홍색의 껌이 드라이 하는 과정에서 녹아서 하이얀 옷의 안과 밖에 색깔을 입히고 말았다.  속으로는 화도 나고 딸을 야단을 쳐주고 싶은 마음도 간절하였지만, 꾹꾹 억누르고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함께 의논하였다.  일단 가능한 빨리 친구에게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일러주고 바로 다음날로 옷을 가지고 딸의 친구에게 갔다.  미리 일러주기를 만약에 많이 기분나빠하면 그 옷을 가져오고 새로 옷을 사 주겠다는 말을 하라고까지 일렀다.  보여주고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다음에 맛난 것을 사 주겠다고 말을 하였단다.  그러자 그 친구가 자주 입는 옷이 아니라 괜찮다고 말을 하였다며 안심하는 모습으로 돌아오는 딸에게 “어쩌면 모파상의‘목걸이’랑 비슷한 일이 생겼군.”이라고 한마디의 말만 하고 말았다.  딸 역시 말없이 웃으며 듣고 있었다. 7/31/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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