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한 사람이

2008.11.19 04:29

이영숙 조회 수:477 추천:146

“불행한 사람이 ” 나는 TV 시청을 전혀 안 한다. ‘전혀’ 라는 말에 좀 어폐가 있기는 하다. 식당에서나 찻집에서, 아니면 남의 집에 갔을 때에 켜져 있는 tv를 무심코 보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전혀 안 보는 것은 아니다. 내 말의 의미는 내가 tv를 보기위해 스스로 집에서 tv를 켜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것은 어릴 때부터 시작된 나의 ‘버릇’같은 것이다. 학교에 다닐 때 가끔씩 오빠 집에 놀러 라도 가면 아이가 있는 어느 집이라도 그렇듯이 올망졸망한 아이들이 집에 있는 시간은 종일 tv가 켜져 있다. 그러한 아이들에게 오빠는“고모가 tv를 싫어하니 너희들 고모가 있는 동안은 tv보는 것을 좀 줄여라. 그리고 볼 때도 소리를 조금 작게 해서 보거라.”라고 아이들에게 주의를 줬다. 불행하게도 그 때문에 조카들이 내가 가는 것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 이유가 되고 말았다. 아무리 심심하고, 혼자서 할 일이 없어도 tv를 보지는 않는다. 가끔은 좋은 프로그램이 있다고 이것은 꼭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가도 집에서 놀고 있는 시간임에도 잊어버리고 보지 않을 때가 거의 대부분이다. tv를 켜는 습관이 되지 않아서 그냥 놓쳐버리고 마는 것이다. 요즘 한국에서 tv끄기 운동이 한창이라고 한다. tv시청을 줄임으로 오는 여러 가지 플러스 요인이 많다는 것이다. 건강을 위해서, 가족 간의 대화의 시간을 위해서도, 전력 절약이라는 국가적인 차원에서나, 더하여 청소년의 폭력과 성적문란까지 여러 가지 측면에서 tv시청이 주는 불이익의 감소를 위해 전 국민이 tv끄기 운동이 한창이라고 했다. 정말 권할만한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tv를 보지 않는 내가 가진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우선 무엇보다도 난 tv시청에서 즐거움을 얻지를 못한다. 어릴 때의 기억인데, 어떤 드라마를 보던 중 참 가슴 아픈 사건이 있어서 그 주인공이 너무 불쌍하여 견딜 수 없었던 기억이 있다. 혼자서 얼마나 가슴을 졸이며 안타까워했는지 모른다. 한참을 가슴을 졸이다 “내가 왜 이런 드라마를 보고 이렇게도 가슴을 졸여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 tv를 끄고 다시 켜지 않았다. 아마 그 이후부터 tv시청을 즐기지 않았는지 모른다.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얼마나 아팠는지 그 상처는 30년이 다된 지금까지 그대로 가슴에 남아있다. 내가 지고 가야하는 문제도 많은데 만들어진 이야기인 그 드라마를 보고 그렇게 가슴이 아파야하는 것이 정말 싫었다. 그 다음으로 내가 tv를 싫어하는 이유는 바로 소리 때문이다. 일찍부터 피아노 가르치는 일을 내 직업으로 삼고 지내온 나는 늘 시끄러운 소리 속에 파묻혀 있어서 그런지 어떠한 소리이든 소리가 참 싫었다. 오죽하면 음악을 전공하고 음악을 업으로 삼고 있으면서도 음악조차도 듣지 않는다면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한때는 피아노를 가르치는 것이 얼마나 스트레스인지 그 피아노 소리가 너무나 싫어서 머리가 터질 듯 아프고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그만둘 수 없는 상황이어서 계속해서 피아노 소리만 듣고 살아왔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소리는 사실 음악이라고 볼 수가 없다. 이제 갓 배우는 아이들의 피아노소리. 특히 여러 대가 함께 소리를 낼 때의 그 소리는 정말 ‘소음’ 그 자체이다. 그래서인지 처녀 때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조용함’이다. 식당엘 가도 음식이 얼마나 맛이 있느냐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얼마나 조용한 집이냐, 찻집을 가도 분위기가 어떻고 하는 것보다는 조용하고 아늑한 곳이냐를 먼저 따져들고 있으니. 그러다 보니 tv도 바로 그 ‘소리’ 때문에 나에게 홀대 당하고 있다. 그러던 내가 요즘 ‘이상하게도’ tv를 보고 싶은 마음이 많이 생긴다. 한 번도 비디오나 DVD를 빌려 본 적이 없는 내가 한국 드라마를 보고 싶어 비디오를 어디 가서 어떻게 빌려야 하나를 생각하고 있다. 단칸방에 사는 우리는 아이가 지금 11학년이어서 이제는 아이가 있는 시간에는 마음 놓고 tv시청을 할 수도 없다. 공부하는 아이에게 방해가 되기 때문에. 그런데 정말 마음이 안타까울 만큼 한국 드라마를 꼭 보고 싶다. 어떻게 보는 방법이 없을까 혼자서 궁리중이다. 그런데 오늘 아침 조간을 읽던 중 약간의 충격이 있었다. 타이틀이“불행한 사람이 TV 오래 본다.”였다. 순간 갑자기 tv를 보고 싶은 요즘의 내 모습이 떠올라 기사를 읽어내려 갔다. 미국 메릴랜드 주립대학 연수진의 연구에 따르면 1975년부터 2006년까지 약 3만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보다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약 30%가량 tv시청을 더 많이 하는 것으로 나왔다고 했다. 그런데 응답자들의 대부분이 tv를 보고 있으면 즐겁다고 했단다. 그 즐거움을 0-10으로 보았을 때 평균이 8로 나타났다니, tv를 보고 즐거워하는 것이 얼마만한지 알만하다. 그러나 연구진의 말은 tv시청으로 인한 행복은 잠시이고 그 뒤에 오는 불행이 장기적으로 이어진다고 했다. 그래서 tv시청을 많이 하는 사람들은 대인관계나, 운동 등 장기적인 즐거움을 주는 일들에서 멀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종교생활도, 사회활동도, 신문구독도 일반인들보다 모두 뒤 떨어진다고 했다. 그래서 그들이 불행해서 tv를 많이 보는 것인지, 아니면 tv를 많이 봄으로 불행해 지는 것인지는 구분이 되지 않는다고 연구기관은 말 했다. 불행한 사람들이 30%나 더 많이 보는 tv. 내가 요즘 왜 갑자기 이렇게도 tv가 많이 보고 싶어지는지 신문을 읽으며 순간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요즘 너무 외로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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