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자국

2009.02.01 08:14

이영숙 조회 수:521 추천:117

“못 자국” 지난 1월 남편이 왔을 때 휴일을 맞아 온 가족이 팜 스프링 온천을 다녀왔다. 기러기 가족인 우리는 한 가족이 모여서 함께 여행하는 기회가 일 년에 두 번밖에는 오지 않는다. 가능하면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짧은 기간이나마 여행이라도 하며 함께 시간을 가지고 싶다. 하지만 아이가 커 가면서는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아이의 스케줄에 맞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겨울에 겨우 시간을 내어 간단히 다녀올 짧은 길을 선택하여 팜 스프링으로 가게 되었다. 겨울이니 온천욕은 역시나 좋았다. 살아가면서, 특히 어렵고 힘든 이민살이에서 오는 많은 스트레스도 녹이고 마음의 상처도 씻어 냈다. 너와 내가 뭉쳐서 살아가면서 생긴 찌든 때도 말끔히 닥아 내고 가슴에 가득히 쌓여있는 아픔도 씻을 기회가 된 듯 가벼운 마음으로 온천욕을 했다. 몸의 때뿐만 아니라 마음속에 쌓여있던 온갖 때도 모두 녹아 내려 다 씻어지는 듯 홀가분한 마음을 가지며 기회가 된다면 자주 올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쉬워하며 자리를 떴다. 행복과 편안함을 가득히 싣고 돌아오는 길에 차 타이어에 이상이 생겼다고 불이 들어왔다. 우리의 행복을, 편안함을 너무 많이 실어 차가 무거워 타이어가 지친것은 아닐까? 요즘 차들은 참 좋다. 이상이 생긴 것을 이렇게 스스로 진단하고 운전자에게 알려 주기까지 하니. 전에는 엔진오일을 언제 갈아야 할지 꼭 기록을 하고 있다가 가끔씩 체크해야 하는데 요즘은 차가 엔진오일 갈 때가 되었다고 알려주니 따로 기록해야할 필요가 없다. 확실히 좋은 세상이다. 아마 타이어에 공기가 부족한 것은 아닌가 생각하고 집 가까이에 와서 타이어에 바람 넣으러 갔다가 앞 오른쪽 타이어에 못이 하나 박혀 있음을 발견했다. 아마 못이 박히자 말자 차가 감지를 하고 불을 빨갛게 키고 나에게 알린 것 같았다. 메케닉이 체크하니 거기에서 바람이 빠져나오고 있었다. 못을 뽑고 그 곳을 때워 주었다. 타이어에 부족한 바람도 넣고, 못이 박혀있던 곳도 고무로 때웠으니 이제 다 되었다 생각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운전을 했다. 그런데 차는 여전히 타이어의 이상을 알리는 불을 빨갛게 켜고 있었다. 집에 와서 어떻게 끄는 것인지 안내책자를 보니 리셋을 눌러 불을 끄도록 돼있어 안내대로 불을 껐다. 이제는 괜찮겠지 하고 한참을 운전 하자 불이 또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몇 번을 불을 끄고 나서도 잠시의 시간이 지나면 다시 불이 들어오고, 또 끄고 나서도 얼마지 않아서 여전히 빨갛게 불을 키고 있었다. 이리저리 차를 살펴보며, 고쳤는데도 왜 불이 자꾸 들어오는지 혼자서 열심히 연구를 하다, 문득 아릿하게 가슴 아픈 생각이 떠올랐다. 타이어의 상처를 비록 고치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 상처의 자국이 있으니 그 자국을 감지하는 것이 아닐까. 이제는 못도 뽑아버렸고, 다 때워서 바람도 세지 않고, 더 이상 문제 될 것이 없도록 만들었다. 그래도 상처는, 그 못자국은 남아있는 것이니까 그것을 감지한 차가 아직도 여전히 불을 키고 있나보았다. 문득, 차도 어쩌면 사람과 이렇게도 많이 닮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처가 생기고 난 다음 그 상처가 아물었다고 해도 여전히 자국이 남아있는 것이 인간의 모습이 아닌가? 다 잊었다고 하다가도 어느 순간 문득 생각이 나면 또 다시 아파온다. 못을 박고 나서 뽑아냈어도 못은 사라졌지만 그 자국이 남아 있는 것이 당연한 것이니. 늘 마음 빨간 불을 켜고 다니며 상처가 있음을, 비록 고쳐지긴 했음에도 상처 난 적이 있었다고, 자국을 간직하고 있음을 마음에 세기고 사는 인간의 모습이다. 일 년 전의 아픔도 기억하고 십년 전의 상처도 다 알고 있다. 아프다고 말하고 싶고, 상처를 기억하며 못 자국 난 곳을 스스로 어루만지며 시간이 날 때마다 꺼내보고 되씹어본다. 가엾은 내 차, 언제쯤이면 너의 아픔을 잊을 수 있겠니? 얼마나 지나야 고무로 때워진 그 곳이 이물질이 들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아니라 너의 몸처럼 느껴져 몸의 일부로 인정할 수 있겠니? 너의 마음에, 그리고 몸에 빨간불을 지울 수 있는 시간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아릿한 마음으로 차 타이어의 못 자국 난, 때운 그 자리를 손으로 가만히 만져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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