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자녀

2009.02.06 04:25

이영숙 조회 수:587 추천:137

“어~? 한국분이세요?” 오래전, 30대초반쯤 되었을 때, 그때는 대구에 살면서 포항과 대구에 피아노학원을 두개를 가지고 여기 저기 다니며 바쁘게 움직일 때였었다. 급히 볼일이 있어서 포항에서 대구로 오면서 정유소에서 택시를 타고 “아저씨 어디까지 가주세요”라고 주문을 하고는 피곤하여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다가 목적지가 거의 다 와서 “아저씨 여기서 좌회전 하세요”라고 말 하자 택시기사가 묻는 말이었다. 가끔씩 듣는 말이어서 그냥 웃음으로 흘리고 말았다. 시장에서나 혹은 거리에서도 낮선 사람들이 가끔 한국 사람이 맞느냐는 말로 질문을 하여 처음에는 좀 난처하였는데 자꾸 들으니 그런가 보다고 덤덤해졌다. 그런데 미국에 와서는 보통 50-60%가 나에게 ‘정말 한국 사람이냐’라는 질문을 던진다. 미국에 와서 두어달 되었을 때 미장원엘 갔다. 처음, 미국은 모든 물가가 비싸고 미장원도 엄청 비싸게 받는다 하여 미국오기 바로 전날 머리를 아주 짧게 자르고 왔다. 그러나 아무리 짧게 잘랐던들 시간이 지나면 자라는 것이 머리카락인 것을... 두어달이 지나자 미장원엘 가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아는 사람의 뒤를 따라 미장원엘 갔는데 처음 이라 어색하고, 왠지 미국이라는 압도감에 주눅이 들어 한쪽 구석에 앉아서 아무런 말도 없이 있었는데 내 차례가 되어서 함께 간 사람이 거울 앞에 앉으라고 하길래 조심스레 어그적 어그적 거울 앞에 가서 앉았다. 미용사 역시 조심스레 오더니 뭐라고 어설픈 영어로 말을 걸었다. 그때 나를 데리고 간 그 분이 “한국 사람이에요”라고 말 하니, “네? 한국 사람이었어요?”라는 것이 아닌가. 모두가 함께 한참을 웃었다. 미국에서 처음으로 듣는 한국 사람이 아닌 것 같다는 말이었다. 그 이후 자주 “어머, 한국분이세요?”라는 말을 들었다. 오래전 가디나에 있는 한국마켓에서 그랜드 오프닝 세일을 하는데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물건을 사는 시간보다 돈을 내기 위하여 기다리는 시간이 휠씬 많이 걸리는 그러한 상황이었다. 한참을 기다려 겨우 내 차례가 왔는데 어떤 신사분이 물건을 달랑 하나만 가지고 와서는 케쉬어에게 “이것 하나 가지고 저 긴 줄을 기다리기 너무 어려우니 미안하지만 하나만 좀 계산을 해 주면 안 될까요”라고 묻는 것이었다. 그러자 케쉬어는 “난 괜찮지만 손님들이 싫어 할거에요. 특히 이렇게 외국 분들은 그러는 것을 아주 싫어하지요”라며 나를 가르치는 것이었다. 그 남자분이 나에게 영어로 실례를 해도 되겠냐고 묻길래 한국말로 대답을 할까 영어로 대답을 할까 잠깐을 망설이다가, 나를 다른 나라 사람으로 보는 케쉬어의 입장이나, 나에게 영어로 물어본 신사분의 상황을 생각하여서 라도 한국말로 대답 할 수는 없지 않겠나, 그래서 “sure”라고 능청을 떨었다. 그러면서 얼마나 속으로 웃음이 나는지... 이러한 이야기를 하려면 너무 많아 다 적을 수는 없지만, 한 가지만 더 이야기 하려한다. 한번은 가주마켙 앞에서 어느 할머니 한분이 전도지를 돌리고 계시다가 내가 나오자 나를 보시더니 전도지를 내어 밀다가 주춤하시며 “...you...korean...?"이라며 어설픈 영어로 내가 한국 사람인가를 물어보시는 것이었다. 거의 한국 사람들만 찾아오는 한국마켙이지만 왠지 나는 한국사람 같이 보이지가 않는가 보았다. 그런데 그 할머니가 영어로 물어보니 순간 나도 아무런 생각이 없이 "yes"라고 영어로 대답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그 할머니는 ”no..."하시며 나에게 전해 주던 그 전도지를 빼앗아버렸다. 한국말로 ‘네’라고 대답하지 않고 영어로 “yes"라고 대답하니 분명히 한국 사람이 아니다 라고 생각하셨나 보았다. 전도지를 빼앗기고 너무나 우스워 큰 소리로 내가 막 웃으니까 할머니도 그냥 따라 웃으셨다. 참나, 내가 설사 한국 사람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이왕 준 것이면 그냥 두실 것이지 뭐 그리 대단한 것이라고 다시 빼앗아 가실까... 그러자니 식당이나 마켓에서 늘 케쉬어들의 인사는 “Hi...”다. 다른 사람에게는 “안녕하세요”라고 하면서. 한국에서부터 들은 말이어서 미국에서 듣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집에서 남편에게 물어보았다. “여보, 나 한국 사람같이 안 보여요?” “아니, 아주 한국토종같이 보이는데”라는 남편의 말이 더 우습다. 딸에게 물어본다. “얘, 엄마가 한국 사람으로 보이지 않니?” “내 눈에는 완전히 한국 사람으로 보이는 대요” 내 가족들은 나를 한국 사람으로 보아주는데 왜 다른 사람들은 나를 한국 사람으로 보아주지 않을까? 딸이 나에게 계속하여 피아노를 배우다가 나이가 들어가니 이제는 나에게 배우기를 싫어하고 나 역시 다 큰 아이 때려가며 가르치는 것이 어렵게 되어 다른 사람에게 보내기로 하였다. 아는 사람의 소개를 받아 독일계 선생님께 맡길량으로 찾아갔다. 아주 할머니인 그 선생님은 나를 보고 한국 사람이냐고 물으며 “당신은 한국사람 같이 생기지 않았다. 참 예쁘다”라고 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 할머니선생님의 눈에 꽁깍지가 씌어서 그런지, 아니면 내가 그날 유난히 다듬고 바르고 치장을, 아니 분장을 하였었는지는 모르지만 나를 예쁘게 봐주는 것은 결코 싫은 것이 아니다. 하지만, 한 순간의 괜찮았던 기분이 그 다음 말로 엉망으로 되어버렸다. “그런데 너의 딸은 한국 사람같이 생겼다”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무슨 말인가? 나는 한국 사람같이 생기지 않아서 예쁘고 내 딸은 한국 사람같이 생겨서 못났다...? 이 할머니선생님이 진짜 예쁜 한국 사람을 못 만났고 못 생긴 한국 사람만 만나 보았나보다고 생각하면서도 솔직히 그것 때문에 기분이 나쁜 것보다 더 기분이 나쁜 것은 따로 있었다. 여자의 마음은 옆의 사람을 비교하여 나보다 더 예쁘다고 말을 할 때에 기분이 좋은 사람이 아무도 없다. 내가 그렇다고 인정을 하는 사람이어도 남에게 듣는 말은 좀 불편한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남보다 내가 더 예쁘다는 말이 휠씬 기분이 좋고 기쁘다. 그러나 단 한 사람, 자신의 딸이 자신보다 더 예쁘다는 말은 누구나 행복해 하고 기뻐한다. 세상에 어느 엄마가 자신의 딸이 자신보다 덜 예쁘다는 말을 듣고 기뻐할까. 일단 갔으니까 한 달은 배우고 바로 그 다음 달로 그 할머니선생님께 가는 것을 그만두었다. 요즘 등산을 하면서 한국 사람들을 만날 때 인사를 한다. 예외 없이 그들도 대부분이 나에게 “Hi”, “Good morning”이라고 인사를 하고, 난 웃으며“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한다. 그러면 “아니, 한국분이세요?”라는 늘 들어오던 말을 듣는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는 그 말이 유난히 마음에 많이 걸렸다. 성경말씀에 ‘너희는 빛의 자녀들이니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고 하셨는데 혹시 내가 한국 사람이면서 한국 사람으로 보이지 않듯이 빛의 자녀이면서 빛의 자녀처럼 보이지 않는 것을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치듯 순간적으로 내 속을 파고 들어왔다. 누군가가 나를 보고“어머, 빛의 자녀였어요? 난 아닌 줄 알았어요.”라고 말하지는 않을까? 내가 특별히 행동하지 않아도, 유난히 다듬지 않아도, 그저 내 있는 모습 그대로를 보고도 나를 빛의 자녀로 보아준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내 남편은, 내 아이는, 우리 교회식구들은 “빛의 자녀이지 당연히...”라는 말 하는데, 낮선 사람은, 나를 처음 만난 사람은 나를 향하여 “그랬어요? 몰랐어요.”라고 한다면. 평소의 내 모습에서, 언제나 한결같은 나의 말에서, 오늘도 변함없는 나의 행동에서, 길을 걸어가는 내 자세에서, 편안히 행동하는 나의 몸가짐에서 누군가 모르는 사람이 나를 보고 “저...혹시... 빛의 자녀이세요? 왠지 그런 것 같아서...”라고 말 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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