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강아지의 미국 극복기

2009.03.27 06:47

이영숙 조회 수:1009 추천:256

“하룻강아지의 미국 극복기” [2008년 미주중앙일보 신춘문예 입상작] 낮선 땅에 디딘 첫발   1999년 8월 초.   '쿵'하는 굉음과 함께 심하게 흔들리는 비행기에서 LA공항 도착을 알리는 안내방송을 듣는 순간 내 눈에선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의 피부를 태우기라도 할 듯 이글거리는 저 태양도 한국에서 보던 그것과 같은 것일까.  영어는 어떻게 하는 것이며, 도로들은 어디로 나 있는 것일까?  앞으로 내가 만날 사람들은 또한 어떤 사람들일까?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이곳이 미국에서 두 번째 큰 도시인 로스 엔젤래스라는 것과, 여기서는 내가 가장 자신 없는 영어로 말해야 한다는 것, 그것뿐이었다.  나이 40이 넘어 공부하겠다고 돈도 없이, 아는 사람하나 없이, 남편마저 떠나서 7살짜리 딸의 손을 잡고 이민 가방에 옷가지 몇 벌과 책 몇 권만 달랑 가지고 도착한 미국은 앞으로 나에게 어떤 것을 줄 수 있을까?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이었다. 나의 가장 큰 무기, 내가 가진 유일한 방패.   '하나님, 허허벌판인 이곳에 나 혼자 두지 마십시오.  아브라함과 함께 하셨듯이 내가 가는 곳마다 함께 하여주십시오. 세월 흘러 많은 날들 후에 이 순간을 돌이켜 보며 딸에게나 나에게 이 순간이 얼마나 복되고 큰 영광의 첫 발걸음을 내 디딘 날인지 기억하게 하십시오.'   눈물로 첫 대면 한 로스 엔젤래스는 나에게 한 없이 낯설고 나를 움츠려 들게 하는 곳이었다.   의지가지없는 이곳에서 그래도 믿고 찾았던 사람이 전혀 믿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안 것은 미국에 살림살이를 펼치고 난 얼마 후였다.  미국 온지 4개월 만에 그 곳을 떠나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의 삶을 살아가리라 선언했다.   비웃었다, 그들은.   미국이 결코 나의 용기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랬기에 더욱 이를 악, 물고 살아보려 했다.  그래, 나의 무모한 용기와 하나님만이 나의 유일한 무기고 강한 방패다.  꼭 이겨내리라, 어떠한 상황에서도 성공하고 말리라.  손마디가 으스러지도록 두 주먹을 꼭, 쥐었다. 프리웨이에서   미국에 온지 아직 일 년도 되지 않았을 때였다.   뜨거운 한낮의 더위가 힘을 잃어가는 6월의 어느 토요일 오후 5시쯤.  엘에이에서 5번 프리웨이를 타고 벨 플라워에 있는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날따라 아련한 향수에 젖어 누가 듣든가 말든가 ‘가고파’를 목청껏 부르며 눈가뿐 아니라 마음까지 촉촉이 적시고 있었다.  65마일 정도로 달려가는데 갑자기 차가 흔들리는 것을 느끼고 이상하여 브레이크를 자주 밟으며 속도를 늦추는 순간 ‘뻥’ 하는 소리와 함께 차 뒤 타이어가 터져버렸다.  편도 5차선의 도로에서 내 차는 2차선에 있었다.  순간, 아무 생각 없었다.  그냥 머리가 하얗게 텅 빈 기분이었다.  비상등을 켜고 막연히 앉아 있는데 대형 컨테이너 트럭을 운전하는 멕시코사람이 내 차 뒤에 차를 세우고 나에게 다가와 “차가 움직일 수는 있느냐”고 묻고는 그렇다는 나의 말에 그 큰 컨테이너 트럭으로 서서히 오른쪽으로 차선을 바꾸자 달려오던 모든 차들이 멈추기 시작했다.  그 트럭이 세차선의 도로를 비스듬히 막아주며 나를 갓길로 나가게 도와주었다.   제대로 감사 인사 할 겨를도 없이 트럭은 유유히 사라졌다.  지금까지도 내 마음속에 아련한 미안함으로 남아있다.  언젠가 그를 찾을 날이 있을까?  감사를 전할 기회가 올까?   갓길에 나오긴 했지만 무엇을 어떻게 할 지 아무런 생각 없이 밖에 나와 차에 기대서서 막연히, 멍청한 눈빛으로 지나가는 차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서있는데 약간 누추한 차 한대가 와서 내 차 뒤에 서더니 자그마한 백인 남자 한 사람이 내렸다.  그는 내 차의 타이어를 보고는 스페어타이어가 있느냐고 물었다.  스페어타이어는 있지만 연장이 없다는 나의 말에 자기 차에서 연장을 가지고 와서 내 차의 트렁크를 열어 스페어타이어를 꺼내서 교체하기 시작했다.  그는 나를 보며 “한 번도 해 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한번 해 볼 거라”며 미소 띤 얼굴로 땀을 뻘뻘 흘리며 타이어 교체를 시작했다.  모든 것을 끝내고 일어서는 그에게 나는 무엇을 해 주어야 할지 막연하기만 했다.  지갑을 열어보니 내가 가진 돈은 20불.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어떻게 해 주었으면 좋겠느냐는 나의 말에, 무엇을 바라고 하지 않았고, 그저 돕고 싶었다고 대답했다.  아무런 이유 없이, 그냥 지나가다가 어려움 당한 한 사람을 돕기 위해 그는 길바닥에서 더러움도 무릅쓰고 어렵고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나의 미래도 저러한 모습이 되리라.  꼭 저들과 같이 나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리라.   그 사람의 주소를 받아 집에 돌아와 내가 가지고 있던 인삼과 한국 전통과자를 사서 소포로 그에게 보내 주었다.  엉터리 영어로 쓴 감사 편지와 함께.   그날 밤, 하나님이 보내주신 두 천사들로 통해 무사히 집에 도착 할 수 있었음을 눈물로 감사했다. 어이없는 교통 티켓   환한 아침의 햇살을 즐기며 아이를 등교시키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내 뒤를 경찰 오토바이가 따라오면서 멈추라고 하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난 잘못한 것이라고는 없는 것 같은데 무슨 일일까.  한쪽으로 차를 옮겨 서니, 경찰은 나에게 브레이크 등 하나가 들어오지 않는다며 티켓을 주는 것이었다.  처음으로 받아보는 교통위반 티켓이어서 얼마나 나올 거냐고 물어보니 ‘아마 조금일거라’고 대답하였고, 내 생각에도 그까짓 브레이크 등 세 개 중에서 하나 들어오지 않는 것이 얼마나 될까 라는 생각에 별 걱정 없이 있었다.  그러나 2주후에 날아온 벌금용지는 나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무려 250불.   말도 않되.   결코 순순히 수용할 수 없었으므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하였다.  아는 사람들에게 전화하니 미국에 산지 20-30년 된 사람도 ‘그것은 이미 발부된 것이니 벌금을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납할 수 없어 운전학원으로 전화를 하며 이리저리 알아보았다.  운전학원에서도 이미 발부된 고지서면 벌금을 내야 한다는 말을 하는 곳이 많았다.  여러 곳에 전화하여 이러저러한 모든 정보를 수집하여 혼자서 결론을 짓고는 일단 고쳐서 코트에 갔다.  가니 인스팩션  받아오라고 하였다.  어딘지 물어물어 찾아다니며 한참을 돌고 또 돌아 인스펙션 받는 곳에서 확인하고 다시 코트에 가서 내가 낸 벌금은 단돈 ‘10불’이었다.  수용할 수 없는 것이라 알아보고, 발품 팔고 하여 240불이라는 거금의 지출을 막았다. 일자리를 찾아서   원래 음악을 공부하였기에, 미국에서 계속하여 음악을 공부할 기회가 주어질까 하여 백방으로 알아보았다.  영어가 되지도 않지만 미국에 있는 학교들의 학비가 너무 막대하여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상상을 초월했다.  그래서 우선 신학을 공부하기로 마음먹고 시작했다.  하지만, 영어공부에도 열심을 내었다.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은 어덜터 스쿨에 가서 영어공부하고, 집에서도 학교 공부보다 영어책을 펴는 시간이 더 많았다.  분명 열심을 내었는데도 기초도 부족한데다 나이라는 것을 무시할 수 없으니  내 뜻대로 공부가 잘 될 리 없었다.  그저 마음만 열심이었다.  공부하는 동안 딸과 나의 생활비는, 아파트 세를 포함하여 한 달 구백달러로 정도로 살아갔다.   기독교 교육학 석사를 마치고 논문을 마무리 한 다음 피아노 학원에서 일을 시작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 부원장 자리에까지 올라가는 기쁨을 얻었다.  그러나 학원에서 학생들에게 받는 액수보다 교사들에게 주는 금액은 터무니없이 적었다.  그 수입으로는 생활하기 부족하여 차라리 혼자 독립하기로 마음먹었다.  신문에 광고 내어 학생들의 집에 가서, 혹은 우리 집으로 오는 아이들을 받으며 가르쳤다.  그러나 그 또한 여의치 않았고 경제적 어려움은 여전히 내 앞에 있었다.   이민보따리를 처음 푼 벨 플라워에 있는 아파트의 매니저가 한국에서 유학 온 목사님 가정이었다.  목사님은 공부하고 사모님이 주로 아파트를 돌보는데 시간적으로도 상당히 여유가 있어 보여 처음 미국을 보는 나에게 괜찮은 직업으로 느껴졌다.  더구나 나는 피아노를 가르치면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아닌가 생각했기에 기회가 된다면 아파트 매니저를 해 보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며 잠깐 잊고 있었는데, 어떠한 일이 좋을까 생각하며 찾던 중 문득 신문에 아파트 매니저를 구한다는 내용을 읽게 되었고, 즉시 전화 했다.  한번 만나보자는 말에 큰 기대를 가지고 찾아 갔더니, 멕시코 사람인 관리자는 “경험이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아니요, 처음입니다”     “그러면 남편은 무엇을 하는 사람입니까?”     “저......남편은...... 한국에......”   경험도 없고 남편도 함께 있지 않는 나의 입장에서 매니저 자리 구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알았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여 신문에 날 때 마다 전화하며 내가 일을 잘 할 것이라고 나를 채용해 줄 것을 호소했다.  대 여섯 번 거절당한 후 한 곳에서 나를 쓰겠다는 반갑고도 고마운 연락이 와서 기쁨으로 가보았다. ‘정글 속’의 집으로 이사 하다   한인 타운을 벗어난, 헐리웃 쪽에 있는 아파트였다.     헐리웃이 아니고, ‘헐리웃 쪽’에 있는 그 아파트는 모두 멕시코 사람들만 살고 있는 아주 낡은 18유닛의 작고 오래된 보잘것없는 아파트였다.  -이사하여 살면서 누군가가 집이 어디냐고 물으면 ‘헐리웃 쪽’이라고 대답을 하고, 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누구라도 잊지 않고 하는 말이“좋은 동네 사시는군요.”이다.  잘 모르는 사람이면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하여 긍정도 부정도 아닌 애매한 표현을 짓고 말지만 잘 아는 사람이면 “주위만 좋아요.”라고 말하고는 함께 웃는다. -  특히 매니저 방이라고 일러주는 곳은 오랫동안 비어 있던 방으로 아파트에 붙어 있기는 하지만 출입구가 밖으로 나와 있어서 길거리에 그냥 방치된 것 같은, 길과 방 사이에 잡초가 우거져 들어가는 출입구가 보이지도 아니하는 그러한 곳이었다.  5학년인 딸이 학교를 파하고 돌아 왔을 때 “엄마가 일을 찾았어. 아파트 매니저 일이야.”라고 자랑하자 딸이 그곳을 보고 싶어 하여 함께 갔다.  우리가 이사 갈 집이라며 보여주자 아무 말 없이 보고만 있던 딸은 집에 돌아 와 저녁을 먹다가, “엄마, 우리 거기 이사 가지 말고 그냥 여기서 살아요.  난 거기 가기 싫어요.  꼭 정글 속에 들어가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주인이 집 앞의 잡초를 모두 제거 해주며 펜스와 게이트도 따로 달아 주기로 했다며 열심히 마음을 달래 주었는데도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던 딸은 저녁을 다 먹고 난 후, “엄마, 나 울어도 괜찮아요?”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 울어라, 괜찮아.  울고 싶은 만큼 울어.”라며 꼭 안아주자 내 품에 안겨서 딸은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갈갈이 찢어 질 것 같은 내 가슴이 종이로 만들어지지 않음을 감사하게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아무리 딸이 가기 싫다고, 그냥 이곳에 살자고 호소하여도 딸을 향한 아린 가슴은 한쪽으로 잠시 밀어두고 내가 매니저 직업을 얻었다는 기쁨과 감사함으로 ‘정글속의 집’으로 이사를 했다. 새로운 삶, 아파트 매니저 생활   미국 온지 3년 반쯤 되는 이른 봄이었다.     추위를 떨치고 화사하게 봄을 맞이할 개나리, 진달래,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목련이 만개할 봄이 나에게 찾아온 것이었다.  이사한 후 방문을 이중 철제문으로 달고 방 앞의 잡초를 제거하고 시멘트로 반듯하게 방으로 들어오는 길을 만든 것은 한 달 안에 다 되었지만, 펜스를 만들고 게이트를 달며 잔디를 심어 작은 정원이 만들어 지기까지는 거의 일 년 가까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때가 막 주인이 바뀐 시점이었다.   새 주인은 작고 큰 아파트 30여체를 가지고 부동산 사업을 하는 덴마크 사람이었다.  처음 인터뷰 할 때 영어를 얼마나 할 수 있느냐는 말에 잘 할 수 있다고 거짓말을 더하여 당당히(?) 대답했다.  그곳은 입주자 모두가 멕시코 사람들이며, 주인을 비롯하여 핸디맨과 그 아파트와 관련된 사람들은 모두 다른 나라 사람들이다.  단 한사람, 슈퍼바이저만 빼고.  영어는 억지로 의사소통만 하는 정도인 나는 그렇게 큰 소리치고 약간의 두려움 속에서 기도하며 일을 시작했다.   우선 집안 구석구석의 이름들을 알아야만 한다.  문제가 생기면 일하는 사람들에게 전화하여 무엇이 어떻게 안 되는지 설명 해 주어야 하니까 집안 구석구석의 명칭들과 그 잘못된 상태를 어떻게 말하는가가 중요하다.  그러한 책이 마침 서점에 있어서 그것을 사서 집에서 열심히 공부하며 익혔다. 나를 힘들게 한 그랄리아   3호에 살고 있는 그랄리아라는, 그때 5살 난 아들과 둘이서 사는 뚱뚱한 여자는 미국에서 학교를 다녔다며 발음이 거의 완벽한 영어를 구사했다.  자신도 아파트 매니저를 5년 동안 한 적이 있다고 말하는 그녀는 사소한 일로 나를 무시하며 아주 힘들게 만들었다.  그녀는 정서적으로 아주 불안정한 사람이었다.  그녀의 말은 도대체가  믿을 수 없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 가스렌지가 작동 하지 않는다, 수도에 이상이 있다, 등을 전화하여 가보면 아무런 일도 없고 멀쩡한 모습을 보게 된다.  어이없어하는 나에게 전혀 엉뚱한 다른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이다.   새벽이고 밤이고 전화하여 불러대고 못살게 굴어서 딸이 말하기를 “엄마, 저 한사람이 우리 아파트 전체 사람들 보다 더 엄마를 힘들게 하내요”라고 할 정도였다.  옆집에서 조금만 시끄럽게 해도 나에게 전화하여 그들을 조용히 시키라하고, 수시로 경찰과 911에 전화하여, 경찰과 911 구급차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우리 아파트에 자주 드나들었다.     그 뿐만 아니라 전화할 때는 항상 자신이 매니저라고 말했다.  언젠가 밤에, 한참을 자고 있는데 전화가 와서 일어나니 경찰이 왔다고 나오라고 했다.  일 한지 오래지 않은 때라 무슨 일인지 두려운 마음으로 나갔다.  경찰이 ‘안내하라’고 말 할 때, 아직 잠결에 있는 나는 무슨 말인지 몰라 멍청하게 서있는데 ‘네가 전화하여 우리가 온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그때 그랄리아가 문을 열고나오며 13호가 시끄럽게 떠들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때서야 사건의 전모를 눈치 채고 경찰을 13호로 안내했다.  경찰은 13호 주인을 보자 대뜸 손을 뒤로 돌리더니 수갑을 채우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머리를 벽 쪽으로 향하게 하고 그의 주머니에 손을 넣어 신분증을 꺼내 확인한 후 수갑을 풀어주었다.  그러한 모습을 처음 보는 내 가슴은 얼마나 뛰었는지 모른다.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그들을 적극 변호하리라 마음먹었다.  그들은 착한 사람들이다.  다행히 나의 두려움 보다 빨리 문제는 해결되었고, 지금 즉시 조용히 하겠다는 약속아래 모든 일은 쉽게 마무리 되었다.   그러한 그녀는 같은 멕시코 사람들이지만 아파트 주민들 중에서도 늘 따돌림을 받고 미움을 받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가능하면 웃음으로 친절하게 대하려고 늘 노력하며 지냈다.  돌아서서는 화가 나서 씩씩대면서도 앞에서는 웃음으로 그녀를 대하고 문제를 해결해 주려 노력하는 나는, 두 얼굴을 가진 여자였다.  그것이 이중인격의 나쁜 모습인지, 아니면 잘 참는 아름다운 모습인지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일한지 일 년이 훨씬 지난 어느 날, 아들이 유리에 찔렸다고 전화하여 약이나 밴드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집에 있는 한국에서 가져온 약과 밴드를 가지고 가서 발라주니 좋아했다.   그 후, 방문이 열리지 않는다고 빨리 오라고 전화해서 가보니 정말 문이 열리지 않았다.  문손잡이가 오래되어 녹이 쓴 상태여서 겉돌아가고 문은 열리지 않았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당황하였지만, 우선 문을 열어야 하니 집에서 드라이버를 가지고 와서 문손잡이를 다 뜯어내고 문을 열었다.  그 다음 분해해 놓은 손잡이에 WD-40을 뿌려서 녹을 닦아 내고 다시 맞추어 넣었다.  기술자가 했으면 10분이면 끝났을 일을 생전 보지도, 듣지도 못한 일을 느낌만으로 하다 보니 한 시간이상 걸려서 일을 끝내야만 했다.  풀 때는 별 문제 없이 잘 풀었는데 막상 끼워 넣으려니 쉽지 않았다.  이리 끼워 맞추어 보고 저리 끼워 맞추어 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 일들 후 그녀는 나를 대하는 행동이 조금은 달라졌다. 무서운 칼로스   7호에 살고 있는 칼로스는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인데 자신이 메케닉이라 하며 아파트 주차장에서 차 수리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온 몸에 문신을 한 그는 체격이 아주 좋은 건장한 남자였다.  우리 슈퍼바이저가 그에게 아파트 주차장에서 차 수리하지 못하도록 말 하라고 하여, 두려운 마음으로 아주 조심스럽게 슈퍼바이저의 말을 전하자 인상을 쓰면서 ‘네가 무슨 상관이냐’고 대꾸 하는 것이었다.  건장한 체구에 문신을 보면 인상 한번만 써도 무서워 더 이상 말 붙이기 두려운 그런 사람이었다.   일 한지 한 달 남짓 되었을 때 주인이 와서 아파트를 시찰하는 중, 그 사람이 지나 가는 것을 보고 주인에게 저 사람이 주차장에서 차를 고치는 사람이라고 일러주자 불러 달라고 했다.  그때 주인과 슈퍼바이저와 나, 이렇게 세 사람이 함께 있었다.   “칼로스 잠시 여기 좀 와 봐요, 당신을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어서...”라고 말 하자.  “무슨 말인지 해요”라며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뻣뻣하게 서서 앞만 보고 대답했다.   “칼로스, 이 사람이 주인이에요”라는 나의 말에, “주인? 무슨 주인?”이라며 역시 돌아보지도 않고 퉁명하게 말 하더니 “이 아파트 주인......”이라고 말하자 흠칫 놀라 돌아보는 것이었다.   그는 한국 사람인 아파트 슈퍼바이저가 주인인줄 알고 아주 무시하다가 주인이 백인인 것을 알고는 순간 깜짝 놀라더니 갑자기 공손해 지는 것이었다.  주인이 “아파트에 불편함은 없느냐?”고 묻고 난 후 주차장에서 차 수리하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옳다고 하자 그는 금방 그러지 않겠다고 말했다.    어떻게 저렇게 달라질 수 있을까?  한국 사람과 백인 사이에 저렇게도 큰 차이가 있는 것일까   그는 그 후에도 여전히 주차장에서 차 수리하고, 주인이 오면 전혀 그러한 일이 없었다고 거짓말 했다.   쓰레기와의 전쟁   쓰레기장이 문을 열기만 하면 바로 거기인데 문 열고 들어가는 것이 귀찮아서인지 어떤 이들은 문 앞에 쓰레기를 놓고 그냥 간다.  어떤 때는 쓰레기 봉지를 너무나 크게 하여 무거워서 높은 쓰레기통에 넣지 못해 그냥 그 곁에 두고 가버리곤 한다.  결국은 그 모든 것이 나의 일이 되고 만다.  하지만 나 역시 그렇게 큰 쓰레기봉지를 들어 올릴 수 없으니 큰 쓰레기 봉지를 뜯어서 하나씩, 조금씩 나누어서 쓰레기통에 넣어야만 한다.  그런가 하면 유난히도 많이 나온 쓰레기가 일주일에 두 번 오는 쓰레기차가 올 날이 안 되었는데도 차고 넘쳐나서 쓰레기통 주위에 가득할 때는, 답답한 마음이 그 곳에 넘쳐나는 쓰레기만큼이나 가득 하다.  쓰레기를 치우는 사람들은 통 속에 들어 있지 않는 것은 손대지 않음을 누구에게 하소연 하겠는가.  가득히 흘러진 쓰레기를 그냥 두고 통속의 것만 가지고 가고 나면 그때부터 내 일이 시작된다.  쓰레기통 가에 수북이 쌓여있는 쓰레기를 하나하나 집어서 쓰레기통에 집어넣는 일은 참으로 한심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고 쓰레기 냄새가 역하여 코를 쥐고 가만히 그 곁에 서있었다.   그러나 결국은 그것이 나의 할 일임을 생각했다.  바로 내가 해야 하는 일이다.  지저분하다, 더럽다 할 상황이 아니니 꾸역꾸역 맡은 일에 열심히 하는 것 밖에 도리가 없었다.  그러고 난 후 집에 와서 입은 옷을 모두 벗어내고 샤워하며 ‘내가 꼭 이런 일까지 해야 하나......’하는 의문에 깊이 빠져 나 자신이 너무나 초라해지고 비참해지기도 했다.   한국 있을 때는 우리 집에서 나온 쓰레기 봉지를 잡을 때도 다른 손가락들은 잔득 오므리고 엄지와 검지만 길게 늘여서 손가락 끝으로 대롱대롱 매달리도록 만졌던 나였다.   쌩땍쥐베리의 ‘어린왕자’에 나오는 여우의 말처럼 모든 것이 길들여지는 것인가 보았다.  맞다, 그렇다.  나, 역시 그랬다.  시간이 지나며 습관이 되니 그것도 더럽다는 생각 없이 그저 거기에 길들여지고 있었다. 억울한 누명   매니저 일을 시작하고 두, 세 달쯤 되었을까.   하루는 슈퍼바이저가 급하게 오더니 9호의 렌트비가 들어오지 않았다고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묻는 것이었다.  그럴리가 없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장부를 보니 분명히 낸 것으로 되어있었다.  그러나 주인에게 입금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모두 들어왔는데 오직 9호만 빠져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내가 빼 먹었거나 은행에서 잃어버린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9호는 그때 체크로 렌트비를 낸 상태였다.  은행에 가니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은행에서는 현금만 확인 하지 체크는 확인하지 않고 내가 계산하여 모두 얼마라고 써 준대로 그냥 입금시킨다는 것이었다.     너무 난감하였다.  어떻게 해야 하나......   돈은 얼마 되지 않지만 나의 정직성에 문제가 생긴 것이 견딜 수 없었다.   은행 직원에게 “이것은 돈의 문제가 아니라 내 정직성의 문제이며, 내 직장의 문제이기에 아주 중요한 일이니 힘들더라도 잘 좀 살펴 주세요.”라고 간절히 부탁 했다.  그 다음날 은행에서 연락이 왔다.  입금은 분명히 되었는데 며칠 전 9호 것 하나만 어떤 사람이 빼갔다는 것이었다.  그 사람의 이름을 자세히 물어보고 말의 내용을 그대로 기록하여 그것을 슈퍼바이저에게  주었다.  다음날 슈퍼바이저와 함께 온 주인을 만나 이야기하니 그는 주인의 동업자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인은 알았다며 웃기만 했다.     약자인 나는 그냥 넘어가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무단침입자   한 밤중, 아마 1시가 휠씬 넘었을 쯤에 전화벨이 울렸다.  10호에 사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이가 계단에 홈리스가 자고 있다고 빨리 와서 깨워서 내 보내라고 했다.  가보니 어떤 남자가 술에 취했는지 마약에 취했는지 자고 있었다.  게이트가 늘 잠겨 있는데 그 침입자는 언제, 어떻게 아파트 안까지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소리 질러도 듣지 못하였고, 밤늦은 시간에 두렵기도 하여 집에 와서 경찰에 전화하여 도움을 청했다.     ‘어느 나라 사람이냐, 나이가 얼마나 되어 보이나, 키가 얼마나 커 보이냐, 체중은 얼마나 될 것 같으냐,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나, 술을 먹은 것 같으냐, 마약을 한 것 같으냐......’등, 도대체 내가 대답하기 막연한 질문을 한참하고, 약 20분쯤 후에 해결해 주었다.  그제야 막연함이 시원함으로 바뀌었다. 나는 플럼머   일한지 약 5-6개월쯤 되었을 때 아파트 게이트에 인터콤 설치하는 일이 있었다.  원래는 인터콤도 없는 아파트였다.  인터콤 설치한다기에 그 사람들이 모든 것을 다 해 줄로 알고 있었다.  그랬는데 설치가 다 끝나자 그들은 나에게 두꺼운 책을 하나 주며 “이 책 속에 모든 설명서가 들어있으니 각 호수별로 전화번호를 저장하여 세팅하라”는 것이었다.   처음, 너무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다.   내가 어떻게 그 일을 한단 말인가.  난, 기계라는 것을 단 한 번도 만져본 적이 없는 ‘여자’다.  그러나 그들은 ‘여자’인 나에게 그 책을 주고는 아무런 말도 없이 가버렸다.  떨리는 마음으로 책자를 펴 보니 이해하기 힘든 영어만 가득히 적혀있었다.  넋을 놓고 있다가, ‘이래서는 안 되지, 어떻게든 한번 시도해보자.’ 생각하고는 천천히 읽어본 후 책을 들고 게이트에 가서 다시 한자씩 읽으며 우리 집 번호부터 인터콤에 넣기를 시도했다. 됐다.  했다.  내가 해냈다.  환호하며 나머지 17집의 번호를 모두 넣었다.  슈퍼바이저의 칭찬이 아니라도, 나 스스로의 감격과, 해냈다는 가슴 벅찬 뿌듯함과, 내가 앞으로 훌륭한 매니저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에 넘쳐 행복했다.   전기나 가스, 혹은 수도 등의 수리를 위해 사람들이 오면 요구하는 금액이 만만치 않다.  할 수만 있다면 주인의 돈을 아껴줘야 한다는 순수한 생각에 기술자들이 와서 수리할 때 늘 유심히 본다.  특별한 장비나 기술을 요하는 문제가 아니면 즉시 그 자리에서 배워 그 다음부터 비슷한 문제가 발생하면 내가 일단 고치기를 시도해 보았다.  그리고 나의 그 시도함은 웬만하면 다 맞아 들어가서 고쳐졌다.   8호에는 친구들로 구성된 남자들만 가득히 사는 곳인데 전기가 갑자기 들어오지 않는다며 당장 사람을 불러 오라고 닦달했다.  우선 내가 보고 사람을 불러야 할 만하면 부를 것이라고 말 한 후 가서 전기 퓨즈 있는 곳을 만지니 그들은, “그 부분은 당신이 오기 전에 우리가 벌써 다 해보았기 때문에 지금 당신이 만져도 되지 않을 것이다”며 비웃었다.  하긴 남자인 그들이 만졌는데도 들어오지 않은 전기가 뭘 아는 것도 없는 아낙네가 가서 만지작  거리는 것이 그들에게 웃음거리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완전히 무시당하면서도 아무소리 없이 만지자 순간 전기가 번쩍 하며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럴 때 퓨즈는 그냥 만져서 되는 것이 아니라 요령이 필요하다.  그들은 놀라며 나를 쳐다보고 아무 말도 없었다.  나 역시 무슨 말을 한 것은 아니지만, 입가에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너희들, 나를 우습게 봤지?  내가 이런 사람이야......’라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 후, 7호 칼로스 집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났고, 1호에서도 같은 문제가 발생하였지만, 그들이 요구하는 기술자를 부르지 않고 내가 해결 하였으며, 칼로스는 그 일 후로 나를 더 기분 나쁘게 보았다.  자기가 해결 못하는 것을 해결한 나에게 남자의, 그리고 매케닉의 자존심이 엄청나게 구겨지는 상황이었던 것이었다.   1호에 살던 사람이 이사 나가자 그곳을 수리하려 완전히 뜯어 고치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곳이 바로 가스실의 뒤쪽이어서 벽을 부수어 다시 고치는 작업 중에 망치로 두드리자 그 울림이 가스실에 전달되었나 보았다.  5호에서 갑자기 가스가 들어오지 않는다고 연락이 왔는데 가서 아무리 뒤져보고 살펴보아도 내 능력으로는 알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가스회사에 연락하여 사람을 불렀다.  가스회사 직원이 와서 가스실에서 무엇인가 잠깐 만지더니 다 되었다며 확인하고 67불인가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난 궁금증이 발동하여 물었다.  무엇이 문제였었는지.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큰 충격이 있었던 것 같다.  가스는 지진에 대비하여 충격이 가해지면 자동 차단 되도록 만들어져 있어서 어떤 충격에 의하여 닫혀버린 거였다”라고 설명 하고는 그 비싼 돈을 받아가지고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유유히 사라졌다.  너무 비싸게 받는 다는 마음으로 그가 가고 난 다음 가스실에 들어가서 도대체 그가 뭘 만졌을까 여기저기 살펴보았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reset' 이라는 글과 화살표가 그려져 있었다.   ‘아, 1호의 수리로 인하여 가스실에 충격이 가해졌을 것이고, 그래서 닫쳐진 가스라인을 리셋하고 간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사가 좀 길어 졌기에 여기저기서 가스가 차단되었음을 알리는 연락이 왔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당당히 가스 라인을 리셋 시켜서 가스를 연결 해 주었고, 그들은 나를 여자이지만 일을 아주 잘 하는 사람으로 인정해 주었다.   인종차별   1호의 수리가 끝나자 세를 놓아야 하겠기에 한국 신문에 계속 광고했다.  그러나 좀처럼 사람이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은 이곳에도 한국 사람들이 좀 있지만 바로 몇 년 전, 그때만 해도 한국 사람들이 여기에서 살기 원하지 않았다.  한국 신문에 계속 내다가 아무런 연락이 없자, 엘에이 타임즈에 내라는 슈퍼바이저의 요구가 있었다.  얼마가 지나서 젊은 여자 한 사람이 찾아와서 방을 보고 아주 마음에 든다고 좋아 했다.  슈퍼바이저에게 이제 곧 사람이 들어올 것이라 이야기했고, 슈퍼바이저도 오랫동안 비어있었던 방이라 잘 된 일이라며 기뻐했다.  계약금을 지불하는 과정에서, 내가 무슨 이야기 끝에 그들의 얼굴색깔을 이야기하자 슈퍼바이저가 펄쩍뛰면서 큰일이라고, 주인이 알면 절대로 안 된다며 당장 해약하라고 했다.  난 처음부터 그들의 피부색깔을 말하지 않았다.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누구든 우리가 요구하는 돈을 지불하고 들어오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많은 우여곡절 끝에 그들은 해약 되었다.  그 여인이 나에게 “너희들, 우리 얼굴색깔 때문에 거절하는 것, 내가 다 안다.”고 말했을 때 내 마음은 아릿함과 미안함으로 버무려졌다.   미국이란 곳, 이런 곳이구나.  피부색깔 때문에 당당히 돈을 내고도 자기가 원하는 아파트에 살지  못하는구나.  이제 더 이상 피부색깔 때문에 아파하고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없는 그러한 세상이 되었으면 정말 좋겠다.   ‘인종차별’이라는 가슴 아픈 단어를 내 온 몸으로 실감한 뼈아픈 일이었다. 성차별   우리 아파트 주차장은 밖으로 나와 있고, 아무런 울타리도 없이 그냥 길가에 놓여있다.  나의 고유 공간이라는 것, 그래서 언제든지 내가 주차할 수 있다는 것 외에는 스트릿 파킹이나 다를 것이 하나도 없는 곳이다.  그래서 자주 홈리스들이 와서 자고 가곤 한다.  특히 비가 오거나 추운 날씨에는 홈리스들에게는 더 없이 좋은 잠자리이다.  위가 덮여져 있고, 삼면이 벽으로 되어 있으며 앞으로는 터져있지만 차들이 막고 있는 아늑하기 그지없는 곳이다.     어느 날, 술에 취했는지 마약에 취했는지 비틀거리며 주차장에서 누웠다 일어났다 하는 홈리스를, 혹시라도 내 차 앞에 더러운 배설물이라도 흘리면 어쩌나 염려되어 다른 곳으로 가라고 말했다.  계속하여 알았다, 곧 갈 것이라고 말은 하면서도 꿈쩍도 하지 않고 그냥 있는 것이 아닌가.  아무리 말하여도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마침 그 때 남편이 미국에 와 있던 때였기에 남편이 가까이 다가와 “무슨 일이냐”고 묻자 그 소리를 듣더니 눈을 감고 있던 사람이 남자 목소리만 듣고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서 ‘염려하지 마라. 나 지금 간다.’고 말하며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나갔다.   여자의 목소리에는 미동도 않던 그가 남자의 음성이라는 것을 느끼는 순간, 무슨 말인지 모르면서도 일어서 가는 것이었다.  성차별이란 것이 이런 것이란 말인가. 내가 도울 수 있는 사람들   하지만 마약하는 사람이나 술에 취한 사람이 아닌 정말 가여운 홈리스는 늘 그곳에서 잠을 자게 한다.  주인이 보면 아파트가 지저분해지며 값이 떨어진다고 당장 내어 쫓으라지만 난 주인이 보지 못하는 밤에, 늘 눈감아 준다.  가끔 내 바로 옆에 주차하는 입주자가 빨리 내보내지 않는다고 성화를 부릴 때는, 비가 오니, 또는 날씨가 너무 추우니 오늘 하루만 봐주자며 달래기도 했다.  어떤 때는 그가 직접 경찰에 전화하여 경찰이 와서 홈리스들을 쫓아내기도 했다. 그러면 내 마음이 참으로 아프고 안타까웠다.  가끔 아침에 그들에게 한두 푼의 돈을 쥐어주며 따뜻한 아침을 먹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기도 했다.   우리 아파트 주민들은 가난하지만 대체적으로 렌트비를 잘 내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가끔씩 어려운 사람들이 렌트비를 늦게 내는 경우가 있다.  내가 은행에 입금해야 하는 날짜가 매월 4일이니 매월 3일 오후 6시가 넘으면 25불을 벌금으로 받도록 계약서에 명시되어 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 전날 와서 내일 아침까지 기다려 달라고 사정을 하고 가기도 한다.  그들에게 25불은 결코 작은 돈이 아니다.  가능한 시간까지 기다려 주지만 나도 주인과의 약속이니 기다리는 시간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내가 은행에 가기 전까지만 가져 오면 과태료를 물리지 않겠다고 말했다.  때로는 30-40불정도 모자라게 가지고 와서 조금 보태주면 이틀 후, 아니면 다음날에 갚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그렇게 도와주었고 그들이 약속한 날짜에 돈을 가지고 와서 고맙다고 말하며 밝게 웃을 때 내 기분도 좋았다. 어이없는 해고   늘 나를 힘들게 하며 뻣뻣하게 대하던 칼로스는 결국 나에게 치명타를 날렸다.   아파트 슈퍼바이저는 칼로스에게 주차장에서 차 고치는 일을 하지 못하게 하라고 나에게 말하면서도 자신의 차를 가지고 와서 자주 고치곤 했었다.  너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불법이면 우선 자신부터 하지 말았어야 하는 것인데 어찌 그런 일이 벌어지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러니 자기는 말하지 못하고 언제나 나 보고 이야기하라고 하는가 보았다.  칼로스는 슈퍼바이저의 차를 싸게도 고쳐주고 가끔은 무료로 고쳐주기도 하면서 함께 식사도 하고 자주 같이 지내는 시간들이 늘어났다.   일한지 3년 반이 지나 아파트매니저 일이 적당히 익은 감처럼  몸에 배어가는 그해 가을, 단풍 닮은 노을이 유난히 빨갛던 그날 저녁 무렵, 주인과 슈퍼바이저가 나를 찾아 와서는 그 단풍잎처럼, 노을처럼 빨간 카드를 내밀었다.     해고.   뚜렷한 이유는 없었다.  그저 바꾸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칼로스가 아파트 매니저가 되었다.   칼로스를 매니저로 쓰면 주인에게 당장 300불의 이득이 있는 것이다.  이 아파트는 오래된 아파트여서 이미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렌트비를 1년에 3%만 인상이 가능하다(지금은 5%로 바뀌었다).  하지만 새로 들어오는 사람에게는 주인 마음대로 받을 수 있다.  나는 이제부터 아파트 세를 내야 하는데 새로 들어온 사람의 가격이 적용되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칼로스에게서 받던 것보다 300불 이상이 더 생기니 주인입장에서는 이득이었고, 슈퍼바이저는 칼로스와의 관계를 그저 상상만 할 따름이다.  그것은 슈퍼바이저의 계획이었다.  주인은 슈퍼바이저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있는 상태였으므로.   아파트 매니저가 칼로스로 바뀌고 약 1년쯤 후에 아파트가 다시 다른 사람에게 팔렸다.  새 주인이 이번에는 유태인이다.  아파트가 팔리기 직전, 슈퍼바이저가 나를 찾아왔다.  자기의 잘못을 용서하라고, 잘못된 판단으로 그렇게 해서 미안하다며 나에게 사과했다.  “괜찮습니다.  다 지난 일인걸요.  건강하게 잘 지내세요.”라고 웃어주었다.     조각가가 나무를 다듬을 때 칼과 끌과 각종 장비들로 나무를 자르고, 파고, 뚫고, 쪼갠다.  나무는 때때로 그 끌들이, 칼들이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그것은 조각가의 지시에 의하여 움직이는 수동적인 모습인 것을 어찌 그들을 원망하겠는가.  그러한 후에야 작품이 나오게 되는 것을. 위장된 축복, 고난   인간의 강인함을 생각하는 시간들이었다.  아파트매니저, 여자 혼자 감당하기는 거친 일이다.  결혼하여 살면서 못질하나 하지 않고 지냈었다.  작은 못하나 치는 것도 남편이 다 해주어서 망치를 어떻게 잡는지도 몰랐던 내가 수도, 전기, 가스, 페인트까지 플럼머가 할 일들을 거의 다 해냈다.  무슨 일이든 당하기만 하면 감당할 자신이 생긴 것은 이렇게 남편마저 떨어져 가진 것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이 광야 같은 미국에서 혼자 살아가는 나에게 큰 자산이 아닐 수 없다.   일자리를 잃어버리고 나자 경제적 어려움이 당장 나에게 다가오기는 했지만, 동시에 시간적인 여유가 함께 왔다.  그러자 그 동안 잊고 있었던 공부에 다시 초점을 맞추고 진행해 나가기로 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지만, 내가 고통을 잊고 힘든 이민생활에 한 위안을 얻을 수 있는 길로 그 것을 선택했다.  거기에 더하여 그것은 내가 미국 온 목표였으니.  경제적 안정으로 인해 잊었던 것을 하나님은 나를 한층 더 높여 주시려고 어려움을 주시고 고통 속에서 나의 원래의 목표를 생각나게 하신 것이다.  사람이란 경제적으로 안정을 얻으면 그냥 안주하고 싶은 마음이 대부분의 생각일 것이다.  하나님은 그것을 깨뜨려 주셨다.  새롭게 시작한 음악공부는 처음 생각과 같이 나에게 엄청난 기쁨과 희망과 위로를 주었다.  그러나 이 공부가 언제까지 계속 될지는 나 자신도 모른다. 난, 하룻강아지   비행기를 타본 적도 없고, ‘해외’는 책이나 매스컴을 통하여만 알고 있던 나였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내가 살고 있던 대구를 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알고 살아왔었다.  더구나 이 넓고 넓은 미국 전국을 다 헤쳐 찾아보아도 남들에게는 그 흔한‘사돈의 팔촌’도 나에게는 없다.  그러한 나에게 이민생활의 아픔이 어디 그뿐이었으랴.  내가 상상조차도 할 수 없는 아픔들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을.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나는, 미국이 어떻게 생긴 나라인지 알지도 못하며 괴나리봇짐 하나 달랑 들고 과감히 도전했다가 여기저기서 너무 많이 맞아 온통 만신창이가 되었다.  그러나 상처 어루만지며 지친 몸, 또 다시 일으킨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나에게도 떠오르겠지.   끊임없는 기대 속에, 오늘도 동쪽하늘에서 붉게 떠오르는 여명에 눈이 부시다.
<embed height="300" type="application/download" align="center" width="500" src="http://home.naver.net/brown444/swish/s22-m.swf" wmode="transparent" allowscriptaccess="never" invokeurls="false" />
<embed style="filter: alpha(opacity=100)gray();" height="25" width="540" src="http://www.radiokorea.com/cafe_new/C0020/13nBleuMusic.asx" showtracker="0" volume="0" playcount="1" invokeurls="false" allowscriptaccess="never" autostart="true" enablecontextmenu="true" />

회원:
0
새 글:
0
등록일:
2015.06.19

오늘:
0
어제:
0
전체:
40,5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