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딸, '사추기'엄마

2009.04.02 06:09

이영숙 조회 수:958 추천:263


  딸이 사춘기를 맞았다.  나는 사추기에 들었다.  그래서 서로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보통 아이들이 사춘기에 접어들면 엄마와 대화가 단절되고 자기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기 위하여 가족들과 담을 쌓고 사는 경우가 많다.  다행히 나의 딸은 그렇지가 않다.
  하나님의 은혜로 딸은 언제나 엄마와 대화하기를 원하고 엄마와 마주 앉아서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장 즐거워한다.  시간만 나면 엄마 곁에 와서 소곤거리기는 것을 좋아한다.  학교 이야기며, 장래문제와, 성적에 관한 문제를 비롯하여 친구들 간의 문제며, 이성에 관한 궁금함도 늘 물어오고 이야기하고 나의 의견을 듣고자 한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것이 정말 감사하고 고마운 일인 줄 잘 안다.  그러나 나는 이상하게도 그게 귀찮을 때가 많다.  시간만 나면 나에게 다가와 시도 때도 없이 대화를 요구하는 딸이 정말 힘들 때가 있다.  
  책이라도 읽을라치면 곁에 와서 뭐라고 중얼중얼..., 잠시 쉬고 싶어서 눈을 감으려도 다가와서 “엄마....있잖아요....”  컴퓨터를 만질 일이 있어서 컴퓨터 앞에 앉아있을 때도 언제 내 옆에 와서는 “이렇고....저렇고....”
  도대체가 쉴 시간을 주지를 않는다.  힘들고 귀찮을 때가 있음이 사실이다.  그래서 딸이 학교에 가고 없을 때가 편안하고 쉼을 누리는 시간이 됐다.  그것이 분명히 나의 잘못인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나도 힘들다.  나에게도 안식이 필요하고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다.  답답하고 힘들어 나도 쉬고 싶은데.  딸이 자기의 모든 고민되는 문제와 모든 힘든 일을 이야기하면 정말 피곤 할 때가 많다.
  그러나 물론 잘 들어준다.  겉으로는 언제나 좋은 엄마로써 나의 모습을 갖추려고 최선을 다한다.  단 한 번도 거절하거나 근성으로 이야기를 들은 적은 없다.  늘 열심히 최선을 다하여 듣고 문제를 이야기하고 풀고 함께 노력한다.  그래서 더 힘든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항상 아침을 잘 먹는다.  하루 세끼 중 아침을 가장 잘 먹는다.  그래서 아침시간이 나에게 늘 바쁘고 힘들다. 그러나 그것은 행복이다.  남편이나 아이가 아침을 가장 잘 먹어 준다는 것만으로도.
  오늘 아침도 고기까지 구워서 먹고 있는데  딸이 질문을 했다.
“엄마는 죽는 것이 두려워요?”
  순간 섬뜩한 생각이 들었지만“음....조금은 두렵다고 할 수 있지...”라고 얼버무리듯 말했다.
“근데...엄마, 나는 아프지 않게 죽는다면 두렵지 않을 것 같아요.  아플까봐 두렵지 그렇지 않다면 죽는 것은 문제 될 것이 없을 거예요”
  심장이 떨어진다는 말이 이러한 경우에 생겨난 말인가 보았다.  순간 심장이 멎는 듯했다.  그러나 내가 놀라고 호들갑을 떨면 말한 아이가 무안하고 말이 이어질 것 같지가 않다.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가슴을 억누르고 숨 한번 크게 쉬고 태연히“엄마 아빠 친구들 보고 싶어서 어떻게?”라고 물었다.
“천국에서 만날 텐데 뭘....”
  도대체 얘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무슨 말을 어떻게 이어야 할지 몰라 태연히 밥을 먹으며 전전긍긍하고 있는데“그래도 아직 죽고 싶지는 않아요, 나 이제 14살인데....”
  후유.

  그 동안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딸도 잘 알고 있다.  물론 남편도 나의 모든 일을 다 알고 함께 해결해 주지 못함이 못내 안타까워 늘 말로 위로했다.  딸은, 말없이 그냥 지켜보며 온 가족이 숨을 크게 쉬지도 못하고 내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만약 남편이 그때 미국에 같이 있지 않았다면 굳이 알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나 혼자 해결하다 못하면 할 수 없더라도.  그러나 그 무렵에 불행인지 다행인지 남편이 함께 있어서 같이 생각하고 함께 걱정하며 위로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남편까지 함께 힘들게 하는 것이 내 맘에는 불편했다.  물론 그것은 나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온 가족의 문제이기는 하다.  하지만, 결국은 내가 해결하고 내가 가장 힘들어야하는 그러한 일이다.  
  그렇게 힘들다는 이유로 내가 딸에게 너무 나의 아픈 면만 보이지는 않았을까?  내가 너무 힘들어하는 모습에서 딸이 삶의 기력을 잃었던 것은 아닐까?
  그것과 맞물려 찾아온 나의 ‘사추기’.  중년의 힘들고 쓸쓸함이 추가되어, 내 삶의 무게가 나에게 너무 힘겨워 딸에게 너무 등한하지는 않았을까?
  그래도 힘들고 어려울 때는 언제나 엄마를 찾아서 이야기하기를 원하는, 사춘기에 보기 힘든 착한 딸을 내가 너무 등한하지 않았을까?
  이것저것 힘든 가운데서 사추기를 맞은 엄마와 사춘기의 중간 시기에 접어들어 힘들고 어려워 대화의 상대, 상담자를 찾는 딸.  잘 풀어나가야 할 텐데.  

  이럴 때는 괜히 남편이 원망스럽기도 하다.  모든 것 다 내게 맡겨놓고 혼자 편안히 있는 것 같아서.
기도로 잘 해결해야지.  나중에 남편에게 떳떳이 말할 수 있도록.  

6/10/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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