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기적'을 본 후

2009.05.12 02:36

이영숙 조회 수:896 추천:211

기적

  20대에 영화 한 편을 보았다.  그 후, 한 10년 쯤 후에 다시 한 번 보았던 영화가 있다.
  ‘기적’
  감독은 어빙래퍼, 남자 주인공은 로저무어, 여자 주인공은 캐럴베이커, 프랭크 버틀러가 썼다.  간단히 소개하자면,
  *1백 년 전, 나폴레옹의 군사들은 스페인을 영국군의 침공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마드리드에 도착한다. 부대의 총대장 마이클(Capt. Michael Stuart: 로저 무어 분)은 전투 중 부상을 당해 인근 수녀원에서 치료를 받게 된다. 테레사(Teresa: 캐롤 베이커 분) 수녀는 마이클의 간호를 맡게 되고 마침내 둘은 사랑에 빠진다. 테레사 수녀는 결국 수녀로서의 금기사항을 어기게 되고 그로 인해 갈등을 느낀다. 얼마 후 마이클은 완쾌되어 다시 전투에 참가하게 된다. 떠나기 전날 테레사는 마음의 증표로 시계를 건네준다. 그러나 마이클이 떠나자 테레사는 그리움을 잊을 수 없게 되고 수녀원을 빠져나와 마이클을 찾아 나선다. 그러나 테레사가 수녀원을 떠난 이후 수녀원에서는 마리아상이 사라지는 불길한 징조가 일어난다. 한편 수녀원을 빠져나온 테레사는 집시의 마을에서 자신이 증표로 준 시계를 발견하고 마이클이 죽었다고 생각한다. 실의에 빠진 테레사는 집시생활을 시작한다. 하지만 죽은 줄만 알았던 마이클은 극적으로 살아남아 수녀원으로 테레사를 찾아가지만 테레사는 이미 수녀원을 떠난 뒤였다. 스페인의 마드리드를 여행하던 테레사 수녀는 스페인의 한 귀족 청년을 만나 사랑을 나눈다. 그러나 투우경기 중 예기치 않은 사고로 그는 죽음을 당하고 테레사는 자신과 사랑에 빠지는 남자는 모두 죽는다는 과거의 악몽에 다시금 사로잡힌다.

난 원래 TV나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내가 본 영화는 손으로 꼽을 만큼 몇 되지 않는다.  그저 보지 않으면 바보가 될 법한 좋은 영화라고 소문이 자자한(?) 영화들만 보았다.  바보 되지 않으려고.  내가 본 영화중 잊지 못할 영화가 몇 있는데 어렸을 때 본 ‘기적’ 역시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 있는 영화다.  20대와 30대 초, 한 10년의 시간을 두고 두 번 보았는데도 언제라도 기회가 된다면 또 다시 보고 싶은 영화이다.
  명화는 볼 때마다 느낌이 다르다.  이 영화도 20대에 본 것과 30대에 본 것이 느낌이 다르다.  나이가 들어서 이해하는 정도가 달라서 인지, 아니면 두 번째 보는 것이어서 첫 번째 보지 못한 부분을 끄집어내어 보게 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처음  20대에 본 느낌은 사랑하는 사람을 따라 모든 것을 포기하고 떠난 테레사 수녀의 모습에 마음이 많이 갔다.  어릴 때부터 좀 소극적인 내 성격에 그 부분이 조금은 충격적이었다.  그녀의 용기가 참 부러웠다.  늘 현실을 벗어난 생각을 하지 못하고, 처해있는 자리에 안주하는 모습.  변화를 꿈꾸기 두려워하는 소심한 나 자신에게 부끄러움을 느꼈다.  가끔 나도 벗어나고 싶은 현실.  과감하게 뛰쳐나가고 싶은 모든 주위환경을 둘러보며 그러지 못한 자신이 원망스럽기까지 하며 테레사에게 박수를 보냈다.  사랑을 따라 자신의 자리를 박차고 일어설 수 있는 용기가 부럽기도 하고.  흉내라도 내 보고 싶은 마음이 설핏 비치다가도 두려움과 염려로 그냥 주저앉는 내 모습이었다.  수녀원 문을 나설 때 그 두려움이 얼마나 컸을까.  모태와 같은 곳을 떠나 낮선 곳으로 가야하는 두려움.  그러나 사랑의 힘은 정말 놀랍다.  그 모든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으니.  “사랑은 힘을 만들지만, 멈추지 못하게 한다.”라고 말하는 그녀는 사랑을 위해 어떤 것도 멈추지 않았다.  사랑을 찾아 떠난 테레사.  거룩한 수녀의 몸을 벗은 그녀는 춤추는 집시의 삶을 선택해야 했다.  고이 수녀원에서 지내던 그녀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많은 문제들이 있었다.  그러나 사랑을 찾는 그녀의 마음을 어떠한 힘든 역경도 멈추지 못했다.  자신의 사랑이 죽은 것이라 알고는 다른 이를 사랑해야 했었고.  그러나 그것이 그녀의 사랑이 아니었음을 그가 죽고 난 다음에 알게 된다.  모든 방황의 끝은 결국 다시 수녀원으로 돌아오는 방법이었다.  

  기적은 여기서 이루어진다.  테레사가 떠난 후부터 그 수녀원이 있는 마을에 비가 내리지 않았다.  극심한 가뭄은 모든 논바닥을 갈라 터지게 했고, 식물이 못 자라는 정도를 떠나서 마실 물이 모자라는, 온 마을 사람들의 삶을 위협하는 기경까지 갔다.  
  수녀원의 모든 수녀들을 비롯해 그 온 동네 사람들은 그 이유가 바로 마리아상이 없어진 때문임을 알고 있다.  마리아 상은 테레사 수녀가 떠나는 날 함께 사라졌다.  테레사가 돌아온 날 마리아상은 다시 회복되었다.  테레사가 마리아상 앞에 엎드려 눈물로 기도할 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온 마을은 기쁨과 감사에 들 떠있었고, 다시 돌아온 마리아상과, 가뭄에서 회복된 기쁨으로 수녀원과 마을은 축제분위기였다.  그러나 그들은 알지 못했다.  왜 마리아상이 사라졌는지, 왜 다시 나타났는지.  

  30대에 본 느낌은 테레사의 용기나 사랑의 중요성에 초점이 맞추어지지 않았다.  테레사가 사라지고 난 다음 사라진 마리아상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그 마리아상은 테레사수녀로 변해 테레사수녀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테레사수녀가 돌아와 자신의 자리에 갔을 때 마리아상은 자기의 자리로 돌아갔다.  
  수녀원에서는 갑자기 사라진 마리아상에 놀랐고, 그 이후 비가 오지 않아 온 마을이 가뭄에 허덕일 때 빨리 마리아상이 나타나기를 바랐지만, 그가 테레사수녀였다는 것을 아무도 몰랐다.  테레사수녀가 비운 자리를 마리아상이 내려와 메운 것이다.  

  자기의 자리를 지킨다는 것.  때로는 어려울 때도 많다.  나의 이기와 모든 욕망을 포기하고 지켜야 하는 내 자리.  그냥 팽개치고 떠나고 싶을 때가 많은 그 나의 자리.  그러나 내가 떠나면 누군가가 내 자리를 지켜야 하기에, 그럼으로 다른 이들이 당해야 하는 많은 아픈 일들.  마리아상이 사라지고 나타난 가뭄현상처럼.  
  “자기에게 주어진 기도를 못 하면 그분이 대신 그 짐을 지시고 기도 하시”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결국 힘들어도 아파도 내 자리는 내가 지켜 나가야한다.
   자신의 자리를 이탈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좇아갔던 테레사수녀.  그러나 “참 사랑을 자기 손에 꼭꼭 쥐고 있는 것이 아니고 그 분에게 돌려 드리는 것으로 자기 자리를 지키면 위로부터 은총의 비가 내린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깨닫게 되었다.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어느 것이 옳은 사랑인지 알게 되었다.
  땅에 내리는 비는 모든 마을사람들을 행복하게 했고, 테레사수녀의 마음에 내린 은총의 비는 방황하며 찢기고 힘든 테레사의 마음에 평안을 주었다.

  그러나 우리는 연약한 인간이기에,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의 길을 잘 걷기 위해 특별한 기적을 체험”해야만 온전히 알 수 있을 때가 있다.  왠지 아직은 아닌 것 같고, 이 길이 아닌 저 길이 내 길인 것 같다.  하나님이 허락한 기적을 체험하고 나서야 자신의 사명을 알게 되기도 한다.
  
  오늘도 내 자리에 충실하고 있는지 생각하는 하루가 되었다.

4/22/2009

회원:
0
새 글:
0
등록일:
2015.06.19

오늘:
0
어제:
0
전체:
40,5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