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을 든 사람들

2009.05.23 11:02

이영숙 조회 수:981 추천:258

돌을 든 사람들

  예수님 시대에 사람들이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은 여인을 예수님 앞으로 끌고 온 이야기는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이야기이다(요8:1-11).
  사람들을 그 여인을 끌고 나와 예수님께 ‘법’을 이야기하였다.  성경에 의하면 ‘예수를 시험하여...’라고 말한다.  늘 ‘사랑’을 강조하는 예수님이 ‘법’과의 조화를 얼마나 잘 이룰 것인지가 그들의 의문이었나 보다.  ‘법이요’라는 말에 법을 무시할 수가 결코 없는 것은 너무나 분명한 사실이다.  법이 깨어지면 세상의 질서도 깨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법을 지키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다.
  예수님의 지혜는 역시 놀랍다.  ‘법’도 ‘사랑’도 모두를 완성하셨다는 것은 과연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피조물인 인간은 결코 흉내도 낼 수 없음이 사실이다.

  만약 이 세상에서 그러한 일이 벌어진다면 사람들(지도자들)은 어떻게 처리할까?  법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사랑을 주장할 것인가가 몹시 어려울 것 같다.  피조물인 인간에게서 창조주 하나님의 지혜를 찾기가 어디 그리 쉬운가 말이다.

  그러나 나는 이 성경을 읽을 때나, 이 본문으로 설교를 들을 때는 또 다른 면을 늘 생각을 한다.  간음한 여인을 잡아온 무리들에게 많은 관심을 두고 생각한다.  물론 이러한 생각이 어제, 오늘의 생각이 아니고 벌써 오래전부터 늘 생각해 오던 부분이다.  그들이 간음한 여인을 잡아 왔다는데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 다음에 그들의 행동에 관심을 가진다.
  예수님이‘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라고 말씀을 하시자 그들은 어른에서 젊은이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자리를 떠나고 예수님과 여인만 남았다(요 8:9).  ‘죄 없는 자’라는 말에 그들은 양심의 소리를 들은 것이다.  성경은 그들이 ‘이(예수님의)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받아...’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들은 도저히 돌을 들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내가 비록 간음죄를 지은 적은 없다 하드라도 나도 죄인인데...’라는 양심이 그들에게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의 마음을 찡하니 울리게 하고 있지 않는가.  그들은 양심이 있는 사람이었다, 양심의 소리를 들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는 말이다.  그 시대의 사람들은 그래도 순수한 모습을 지니고 살고 있었나보다.  지금의 시대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 아닌가?

  만약 지금 이 땅에 예수님이 오셔서 모인 무리들에게‘죄 없는 자가 먼저...’라는 말씀을 하셨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무리가 50명이면 50개의 돌이, 만약에 100명이면 100개의 돌이 한꺼번에, 서로 앞 다투어 날아오지 않았을까?  ‘내가 가장 먼저 돌을 던지리라’생각하면서.
자신의 죄를 가리고 싶은 마음에 ‘죄 없는 자’의 자리에 가장 먼저 서고 싶어 할 것이다.

  우리는 종종 남을 향하여 돌을 든다.  남을 정죄한다.  때로는 ‘그것은 법이야’  ‘이 여인은 모세의 법을 어기고 간음을 하였기에 죽어야한다’라며 무섭게 돌을 든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이건 징계감이야’라고 죽이기 위하여 돌을 들 때도 있다‘.  ‘너는 이러한 죄를 지었지? 그렇지?’  ‘내 말이 맞지?’ 다그친다.
  때로는 사실보다 훨씬 과장하여서도 말을 하기도 한다.  남의 말만 들은 상태여서 자세히 알지 못하였다 하드라도 말이다.  그런가하면 어떤 때는 별 의식 없이 무심코 돌을 든다.  그리고 아무런 생각 없이 그 돌을 던질 때도 있다.

미국 속담에‘아이들이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라는 말이 있다.  아무 생각 없이 무심코 던져버린 돌에 애꿎은 개구리가 맞아 죽는다면 그것은 누구의 잘못일까?  던진 사람은 죽일 생각이 없이, 아무런 의식 없이 가벼운(?)마음으로 던졌으니까 죄가 없는 것일까?   그러면 멍청히 돌이 떨어지는 곳에 머리를 들이대고 있던 바보 같은 개구리의 잘못일까?
정말 혼란스럽다진다.  이 엄청난 일은 결코 간단하게 넘어 갈 수는 없을 것이 아닌가, 한 생명이 달린 일인 것을.
  우리는 살아가면서 참으로 자주 악의 없이(?) 남을 향하여 돌을 들 때가 많다.  ‘직분이 ...인 사람이 그럴 수가 있어?’  ‘나는 이러한 직분으로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렇게 살아, 그런데 저 사람은 왜 자기의 직분을 다 못하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등 나름대로의 돌을 들고 타인을 향한다.  
  그 돌로 인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아니면 최소한 얼마나 많은 상처를 입을까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냥 아무런 의식 없이 던져버린다.  그 가벼운 마음으로 던진 돌에 다른 어떤 사람이 맞아 죽거나 상처를 받아 씻을 수 없는 고통에 힘들어하고 있음을 왜 우리는 느끼지 못할까?

  그러나 예수님께서 오셔서‘죄 없는 자가 먼저...’라고 말씀하신다면 과연 누가 돌을 들 수 있을까?  ‘나는 간음죄를 지은 적이 없어요.’하며 당당히 돌을 들사람이 누가 있을까? ‘저건 정말 잘못한 일이야‘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지?‘라며 돌을 던질 담대한 사람이 과연 누가 있을까?  
  예수님은 지금도 말씀하신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롬 3:10)’고.
  내가 든 돌을 다시 한 번 점검해보아야 하겠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죄 없는 자가 먼저...’라는 그 말씀에 비추어서.
  때로는 내가 돌을 든 사람이기도 하고, 때로는 내가 그 돌에 맞아 아파하며 고통하기도 한다.

[나의 첫 글]

12, 29,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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