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2009.06.25 03:48

이영숙 조회 수:721 추천:191

  남편과 함께 아침에 그리피스팍에 운동하러 갔다.  아침에 시간이 있을 가끔 혼자서 등산하던 곳이다.  이번에 남편이 와서 함께 갔다.  산은 늘 좋지만 특히 아침 산은 더 좋다.  맑은 공기가 이민생활에서 느낀 답답한 모든 것들을 개운하게 만들어준다.  풀냄새가 좋다.  지절대는 새소리도 마음을 한껏 상쾌하게 만들어 준다.  때로 그들의 노랫소리는 마리아 칼라스 목소리보다 더 아름답게 들린다.  
  헐떡거리며 오른 산의 정상에서 시원한 바람으로 모든 땀을 다 씻어 내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중턱을 지나 내려오던 중이었다.  맞은편에서 올라오던 개가 바로 우리 앞에 갑자기 멈추더니 납작 엎드렸다.  영문을 모르는 나는 의아하게 멈춰 개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보고 남편은 웃으며 “괜찮아 그냥 와.  난 무서운 사람이 아니야.  그냥 일어나서 이리 와”라고 농담을 하며 가는데 개는 여전히 엎드린 상태로 있었다.  계속해서 꼬리를 흔들며.  정말 이상한 느낌이었다.  저 개가 왜 우리를 보자 저렇게 엎드리지?  의문을 가지고 지나가다 문득 뒤 돌아보니 바로 우리 뒤에 마주 오는 개가 한 마리 있었다.  엎드렸던 개는 우리에게 꼬리를 흔드는 것이 아니었다.  영문을 모르는 우리는 한없는 착각에 빠졌던 것이다.  그 개는 마주 오는 개에게 다가가더니 함께 반가움을 나누며 서로 얼굴을 맞대고 비비며 반가와 하는 모습을 보였다.
  나와 마주오던 그 개는 올라오다 맞은편에 개가 오는 것을 보고 관심을 가지고 사귀고 싶었었나보았다.  그래서 ‘난 너와 사귀고 싶어’라는 의미로 그 개 앞에서 바로 납작 엎드린 것이었다.  그 주인들의 대화를 들어 봤을 때 그들은 아는 사이가 아니었다.  그 자리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이었다.  한참을 그들의 대화도 들어보고 함께 기뻐하며 서로 얼굴을 부비며 좋아하는 개들을 바라보고 서있었다.  정말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처음 만남이지만 그들은 반가움과 기쁨을 함께 나누는 듯했다.  

  산행을 하면서 자주 개들을 만난다.  많은 사람들이 개들과 함께 운동을 나온다.  그들이 운동하기 위하여 개를 데리고 오는지, 개들을 운동시키기 위하여 오는지 정말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런데 개들이 만나면 대체로 짖고 싸우곤 한다.  으르렁 거리며 사납게 굴면 마주 오던 개도 함께 짖고 으르렁 거려 주위를 어지럽힌다.  그럴 때에는 겁이 많은 나는 무서워 어쩔 줄 몰라 쩔쩔맬 때도 있다.
  오늘 본 그 개는 마주 오는 개가 참 마음에 들었나 보았다.  얼른 땅에 납작 엎드려서 자신의 관심을 표현하는 것을 보면.  그러니 마주 오던 개도 짖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 개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함께 얼굴을 마주하며 반가움을 나누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였다.

  사람들도 낮선 사람들과 만나서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인정해 주면 많은 사람들을 사귈 수 있지 않을까.  어떤 사람들은 누군가를 처음 만날 때 자신을 나타내기를 좋아한다.  명함에는 자신의 직업이나 하는 일 등을 자세히 적어서 가지고 다닌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며 자신은 이러한 사람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어떤 때 나는 그 같은 명함을 받으면서 상당히 주눅이 든다.  도데체가 내 놓을 것이라고는 없는 내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어떤 대우를 해줘야 하는지 얼른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은 상대보다 자신이 얼마나 더 높은가, 얼마만큼 위대한가를 보여주고 싶어 하는 모습이다.  그러한 것들에 주눅이 든 사람들은 그 사람을 쉽게 사귈 수가 없을 것이다.  차라리 좀 자신을 낮추어서, 그저 이름 석 자만 내 보일 수 있다면 상대방이 더 편안히 다가 올 수 있지 않을까.
  유난히 내게만 그런지 모르겠다.  내가 가진 것은 부모님께로부터 물려받은 이름 세 글자가 전부인데 ‘...회장’ ‘...준비위원장’ ‘...고문’ ‘...단체장’...등 이름 석 자 앞에 붙은 화려한 수식어들이 처음 대하는 그에게 다가가기 어렵게 만든다.  가까이 가기도 어렵고 대화가 부담스러워 가능하면 얼른 자리를 피해버리고 싶다.  
  내가 좀 촌스러운 탓인지 모르겠다.  내가“이 아무게 입니다.”라고 했을 때, 상대방도 가볍게 “김 아무게 입니다.”라고 한다면 그 다음 이야기는 편안하게 이어진다.  웃으면서 날씨도 이야기 하고, 취미도 서로 알려주며, 오늘을 가볍게 나누며 다가갈 수 있다.

  언제나 자신을 높이는 사람들은 가까이에 많은 사람들을 두지 못하지 않을까.  자신을 좀 낮추어 보면 어떨까?  납작 엎드려 자기를 낮추고 남은 높여주면 많은 친구가 생길 것인데.

  나는 누구인가 하는 것은 이름 앞에 붙은 수식어가 아니라 내 삶의 모습이고, 자신도 모르게 풍겨나는 은은한 향기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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