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첫 출근

2009.07.08 05:40

이영숙 조회 수:653 추천:167


  기어이 딸을 내몰았다.  도대체가 세상을 모르고 살아가는 아이에게 세상을 가르치고 싶은 마음이다.  돈을 벌기도 하고 세상도 배우라고.  엉덩이를 한껏 빼는 아이를 눈을 부라려가며 기어이 내몰고 말았다.  딸이 엉덩이를 빼는 이유가 일을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두려움 때문인 것을 잘 알고 있기에,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 이제는 세상을 알아야 한다는 이유에서 더욱 그랬다.  지금 열일곱 살.  두 달 후에 열여덟 살이 되는 아이.  그러나 마음은 아직도 어린아이 같은 내 딸.

  어찌된 일인지 딸은 너무 마음이 여리다.  아이를 임신했을 때 남들처럼 태동을 느껴보지 못하고 아이를 낳아야 했다.  태아들이 뱃속에서 축구도 하고 배구도 한다는데, 내 아이는 움직임이 거의 없었다.  하도 움직이지 않아 병원에 가서 아이가 살아있는지 검사를 했을 정도였다.  아주 건강하게 잘 자라니 조금도 염려하지 말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도 마음에 찜찜한 것이 과연 그 말이 맞을까 의심이 날 정도였다.  
  낳기 얼마 전 손인지 발인지를 아주아주 조심스럽게 살짝, 가만히 내밀어 보는데 너무 신기하고 기뻤다.  나 역시 혹시 아이가 놀랄까봐 조심해서 가만히 손으로 만져보려 하자 내 손이 완전하게 닫기도 전에 깜짝 놀라 쏙 집어넣어버려 아쉬움만 안았을 정도였다.  어쩌면 뱃속에서부터 그렇게도 조심성이 많고 두려움도 많았는지.

  그랬던 아이는 한 달 미리, 구 개월 만에 2.3kg의 미숙아로 세상에 나왔다.  아이는 태어나서도 울지도 않았고, 밤에는 잠도 잘 자 엄마에게 효도(?)하여 힘들지 않고 쉽게 키울 수 있었다.  
  돌이 지나 두 살도 되지 않았을 무렵부터 “이건 만지면 안 돼.”라는 한마디면 어디에서 무엇을 만지다가도 멈춰 손을 떼버리는 아이.  해야 하는 것이면 어떤 것이든 해야 하고, 하지 말라고 한마디만 하면 두 번 다시 손대지 않는 기가 여린 아이.  주위의 사람들은 신기하다고 하지만 엄마인 나는 너무 기가여린 아이가 늘 걱정이었다.

  중학교 다닐 때, 플루트 경연대회가 있어서 나갔다.  벨리에 있는 어느 UC 캠퍼스에서 열렸는데 기다리는 시간에 건물 밖 잔디에서 연습하는 학생들이 띄엄띄엄 보여서 너도 한번 연습해보고 들어가면 좋겠다고 말을 했다.
  “여기서 연습해도 된다고 안내서에 나와 있었어요?”라고 물었다.
  “아니, 안내서에는 없지만 그래도 괜찮을 거야.  보통 이런데서 연습하고 그래.”라고 말하는 나에게 “엄마, 난 하지 말라는 것은 절대로 안 하고, 해도 되는지 안 되는지 모를 때도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라는 것이 아닌가.  정말 못 말리는 아이라고 내가 포기했다.

  그런 아이는 지금까지 ‘이것은 지켜야 하는 룰이다’라고 하면 꼭 지키는 아이로 자랐다.  두려움도 많고, 마음이 소심한 아이여서 고생도 좀 시켜야 하고 세상도 좀 배워야 하기에 이번 여름방학을 맞아서 아르바이트를 시키려고 마음먹었다.  
  내 마음 같았으면 처음부터 진창 고생하는 곳으로 보내 세상이 어떤지를 알게 하고 싶다.  그러다 저 여린 마음에 세상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생기면 더 힘들어질 것 같아 좀 쉬운 쪽을 알아보았다.  
  요즘 불경기여서 그런지 여기저기 알아보았는데도 일자리가 쉬 나타나지 않았다.  어쩌나 연락이 닿았다가도 아르바이트 학생이라고 마다하는 곳도 많고.  마침 사무실에서 전화나 인터넷으로 물건 주문하거나 주문받는 간단한 일이 나왔다.  영어가 완벽해야 한다는 이유에서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았던지 학생이라는 말에도 오라고 했다.  아침에 두려움 때문인지 신경이 날카로워져 이리저리 움츠리는 아이를 억지로 몰고 나갔다.  일하는 시간도 짧고 보수도 적었지만 그래도 사회를 처음 경험하는 것이니 좀 쉽게 하라고 잘 된 일이라 생각했다.

  막상 데려다 놓고 와서는 마음에 걱정이 된다.  잘 할까?  착하기만 해서 자기의 몫도 잘 챙겨먹지 못하는 어리석은 아이가 되지나 않을까?  이런저런 걱정에 마음이 편하지 않다.  
  매주 토요일에 발란티오 나가는 맹인센터에서 처음에 하도 말없이 시키는 일만 꾸역꾸역 해서 조금 모자라는 아인 줄 알았단다.  나중에 격어보고 난 다음 그 말을 해 함께 웃었던 그런 아이다.  

  세상은 착함과 악함이 공존함을 배워야하고, 험한 일도 있음을 알아야 함에 부모의 마음은 늘 염려로 가득하다.  잘 배워라, 이 세상을.  지금까지는 부모의 그늘아래 있었지만 이제 앞으로 세상을 나가야 하니 어떤 것이 세상인지 잘 배워서 나가려무나.  세상을 이기기 위해서는 험한 일에도 부딪쳐 나가는 법을 알아야 하니까.  가득한 염려로 두 손을 모은다.


6/29/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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