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죽을 준비가 되었습니까?”

2009.09.21 14:04

이영숙 조회 수:807 추천:236



  수영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지난 5월에 집 가까이에 있는 어느 gym에서 세일을 했다.  일 년 회원권을 200달러에 내 놓았다.  집에서 가까워 걸어서 10분 남짓이면 갈 수 있는 길이어서 여러 가지로 좋아 일 년 회원권을 끊었다.  여러 가지 운동기구가 있지만 난 수영만 하려고 생각했다.  한 시간 정도 수영을 하고 왕복 걸어서 20여분.  운동으로 적당하다는 생각이다.  그날도 수영을 마치고 후줄그래한 모습으로 힘이 쭉 빠져 터덜터덜 걸어오고 있는 중이었다.  중간쯤 왔을 때 내 맞은편에서 한 백인 청년이 걸어 왔다.  나를 향해 뭔지 모를 불안 한 듯한 모습으로.  오른쪽 손에는 검은 가방을 들고, 그 왼손에는 얇은 책이 여러 권 들려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나 또한 퍽 이상했다.  
  한 사 년쯤 전인가.  바로 집 앞길에서 삼십대쯤으로 보이는 어느 청년이 차를 몰고 가다 뉴욕에서 왔다며 나에게 길을 물었다.  내가 이렇게 저렇게 가라고 열심히 가르쳐주었다.  그 청년은 나에게 “너 결혼 했느냐”고 말하며 자기는 미혼이라고 했다.  웃으며 물론 결혼했다고 하자 “그러냐. 네가 예뻐 보였다”라며 지나갔다.  웃으며 “Thank you"라 말하고 난 다음 주위를 둘러보았다.  혹시 누가 보면 나이 50을 내일모래로 두고 있으면서 주책이라 할까 염려되었다.  괜히 지나간 차 뒤꽁무니에 대로 눈을 흘기며 ‘별 미친.....’ 이라 중얼거렸다.  얼른 집에 들어와서는 거울 앞에서 혼자 다시 헤헤~ 웃었던, 결코 기분 나쁘지 않았던 느낌이 아직도 남아있다.  ‘제 눈에 안경’이라 하더라도.  이 청년도 그럴까?  하지만 그런 착각을 하기에는 이 청년은 너무 어리고 그의 표정은 지나치게 심각하고 불안함까지 깃들여 있었다.

  혹시 총을 가진 것을 아닐까?  돈을 달래면 어떻게 하지?  지금 내가 가진 것이라고는 수영복밖에 없는데.  짧은 시간이었지만 온갖 생각을 하며 서로가 불안한 마음으로 점점 다가가고 있었다.  서로 막 스쳐지나가는 순간 그 청년을 뭐라고 말을 하려고 하는데 입에서 말이 잘 나오지 않는 듯 “으으응.....”거리며 나에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나 역시 약간의 두려움으로 얼른 받고 지나쳐 왔다.  어느 이단 종교에서 나온 전도자라고 안 것은 책을 펼쳐 보고 난 다음이었다.  아마 처음으로 전도훈련 나왔나보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 책을 나에게 전하기까지.  주며 뭐라고 말을 해야 한다고 훈련을 받았을 터인데 차마 말이 나오지 않아 그냥 웅얼거리며 책만 전해주었나 보다.  처음이어서 떨리겠지만 결단한 그 용기가 가상하여 가는 길을 뒤돌아보았다.  그 청년은 나에게 책 한 권 전해준 것으로 일단 한 발 전진한 자신을 발견하고 기뻐했겠지?  그리고 또 다른 대상자를 물색하러 다닐 게다.  

  아주 오래전 설교 시간에 어느 목사님을 통해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처음 예수를 믿게 된 한 이발사가 있었다.  예수를 믿고 은혜를 받은 이발사는 어떻게 하면 자기가 하나님의 일을 할 것인지 목사님께 여쭈어보았다.  예수님을 전하는 것이 가장 큰 일이라고 하자 이발사는 자기도 전도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이발사는 퍽이나 부끄럼도 많고 말을 잘 하지 못해 전도하는 것이 그리 용이하지 않았다.  목사님을 찾은 이발사는 어떻게 말을 해서 전도를 할 것인지를 물었다.  목사님은 처음 시작할 때 “손님, 죽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라고 이야기를 시작하라고 일러주셨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에 대해 생각을 하고 또 그 문제를 가장 진지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그러고 난 다음에 천국과 지옥을 이야기하며 나아가라고 가르쳐주셨다.  
  마음에 굳게 결심한 이발사는 손님이 들어올 때마다 전도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기회를 보지만 그게 쉽지 않았다.  말문을 열려면 우선 떨려서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꾸 손님을 그냥 보낸 이발사는 기도하고 또 마음을 다졌다.  
  이번에 오는 손님은 절대로 그냥 보내지 않고 꼭 전도하리라.  한 손님이 들어왔다.  꼭 전도하기로 결심한 이발사는 몹시 떨리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손님은 그 이발사의 행동이 참 이상하게 느껴졌다.  평소와는 너무 다른 표정과 그 모습이었다.  사람이 불안해하면 곁에 있는 사람도 느끼게 된다.  내가 그랬듯이.  이발을 하며 지금 이야기를 시작해야 하는데...  하는 떨림에 가위를 떨어트리기도 하고.  손님은 그의 행동이 너무 이상하여 주의 깊게 관찰하고 있었다.  
  이발사는 이번에는 꼭 놓치지 않고 전도하리라 마음을 먹었는데도 머리를 다 자를 때까지 아직 말을 꺼내지 못했다.  면도를 하려고 거품을 턱에 다 묻혔다.  이제 면도만 하면 손님은 나갈 것이다.  몹시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면도를 시작하기 전에 말을 꺼내야 한다.  그래야 면도가 끝날 때까지 천국과 지옥까지 이야기 할 시간이 되기 때문이다.  속으로 기도했다.  잘 하게 해 달라고.  그 후 떨리는 이발사는 면도칼을 갈다가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깊은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손님, 죽을 준비가 되었습니까?”
  안 그래도 불안했던 손님은 이발사가 칼을 갈며 하는 그 한마디에 턱에 거품을 묻힌 채 그냥 이발관을 뛰어나가 버렸단다.

  웃으며 들은 이야기지만 그 사람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꼭 해야 하는 일.  그런데 도대체 용기가 나지 않는 자신의 모습.  우리가 살아가며 한번쯤은 겪을 수 있는 일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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