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 티켓 받은 날

2009.08.21 02:50

이영숙 조회 수:621 추천:177

  티켓을 받았다.  경찰에게 직접 티켓 받은 것이 미국 와서는 처음이다.  10년을 살면서 카메라에 한번 찍히고, 티켓 한번 받은 것이 전부이다.  한 2년 반쯤 전에 카메라에 찍힌 적이 있었다.  3월 첫 주일.  엘에이 마라톤 하는 날에 교회를 가야하는데 온 길을 다 막아놓아서 어디를 뚫고 가야할 지 알 수가 없었다.  안 그래도 유난히 길눈이 어두운 내가.  아는 집사님께 연락하여 함께 가기로 하고 그 차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어딘지도 모르는 낮선 길을 가는데 큰 사거리를 지나며 앞차가 노란불에 급히 지나갔다.  앞차를 놓칠세라 무리하게 따라갔다.  "어~ 이러면 안 되는데.  내가 가기에 너무 늦는데......”라고 혼자서 중얼거리며.  아니나 다를까.  번쩍 하는 요란한 플레쉬가 터지면서 카메라가 나를 찍었다.  
  무슨 대단한 연예인이 온 것처럼 길거리에서 플레쉬를 터트리며 요란스럽게 사진을 찍다니.  낮선 누군가가 나를 보고 플레쉬까지 터트리며 열심히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어깨가 으슥해지지 않을까.  조금 당황되기도 하겠지만.  하지만 그것은 그런 기분이 아님을.  순간 너무 기분이 나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했다.  이 주후에 날아온 티켓은 자그마치 400달러.  그리고 운전학교에 갔고, 그 값이 40달러.  등기해서 보낸 것까지 모두 합해 450달러를 넘기고 말았다.  

  이번에는 불법 유턴이란다.  윌셔길에 있는 어느 순두부집에서 아는 집사님을 만나기로 했다.  평소에 늘 나와 이런저런 대화를 하기 원하는 분인데 시간을 넉넉히 줄 수 없어 항상 잠깐의 대화로 끝나는 것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날은 내가 일부러 시간을 마련해서 넉넉히 들어줄 양으로 약속을 잡았다.  그 곳이 좌회전이 안 되는 곳인 줄 ‘예전엔 미처’ 몰랐다.  당당하게 좌회전하여 음식점에 들어갔다.  막 주차하고 차에서 내리려는데 뒤에서 ‘삐용 삐용’하는 소리.  나와는 전혀 관계없는 소리라 생각했는데 동양인으로 보이는 경찰이 내 차로 다가왔다.  나를 다시 차로 밀어 넣고는 “당신은 불법 유턴을 하였습니다.”고 말했다.  나는 지기 싫어서, “이곳은 유턴금지표가 없었다.”고 우겼다.  금지표가 없었다 하더라도 상가에서 두 줄의 노란선이 있는 곳에서는 유턴을 하면 안 되는 곳이라고 말하는 그를 이길 수가 있을까.
  운전면허증을 주고 말없이 차 안에서 그가 하는 대로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 후에 티켓을 한 장 주며 “불법 유턴이라 적었다”라고 말했다.  침울한 표정으로 그냥 알았다고 중얼거릴 수밖에.  3주후에 티켓은 날아왔고 202달러 벌금과 운전위반학교 가야하는 64달러.  즉시 보냈다.  나중에 학교에 가면 또 따로 40달러를 내야한다니.  이번에는 300달러를 훌쩍 넘기겠다.  요즘 같이 어려운 때에.  한 순간의 실수로 엄청난 돈이 날아가고 말았다.

  며칠 전 딸과 함께 가다가 노란신호에 무리하게 건넜다.  딸이 깜짝 놀라며  “엄마, 운 좋은 줄 아세요.  만약 경찰이 있었으면 걸렸어요.”라고 잔소리를 했다.  “정말 그랬지?”라고 말했다.  난 이제까지 내가 교통법규를 잘 지켜서 남들은 일 년에도 한두 번씩 받는 티켓을 10년 넘어 살면서 단 두 번밖에 받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었다.  생각해보니 나 역시 만약 내가 법규를 어길 때마다 경찰이 가까이에 있었으면 적잖게 티켓을 받았을 것이다.  그야말로 운이 좋아 지금까지 잘 지내온 것뿐이다.  
  노란신호에 무리하게 가는 모습.  빨간불에 우선멈춤 하지 않고 그냥 서행으로 하는 우회전.  건널목에 사람이 아직 다 건너지 않았는데 돌아가는 모습.  속도위반은 너무나 당연한 것.  거의 지켜지지 않는 정해진 속도.  그 모든 것들을 다 잡는다면 수도 없이 티켓을 받아야 했을 게다.  그동안 내가 티켓 받지 않은 것이 너무 감사하지.  십년에 겨우 두 번.  좀 힘들지만 감사하는 마음으로 벌금을 내야겠다.  앞으로는 내가 교통법규를 잘 지켜서 이제까지 티켓을 받지 않았다는 착각에서 벗어나 늘 조심하며 운전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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