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진 책임
2011.08.17 01:13
초등학교 다니던 어느 여름
젖은 일요일
온 가족 교회 가고
아무 곳도 갈 수 없는 결핵환자 우리오빠
혼자 집을 지켰다
장마가 불려놓은
장독간의 축대 무너져 내릴 때
깡마른 갈비뼈는
자신보다 서너 배 더 큰 장독대 안고
더디 가는 시간 재촉하며
죽음 견디며
가족들의 그해 양식 땀과 함께 지켰다
맏이로 태어나
아비 없는 집안에 줄줄이 엮인 동생들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일이
그뿐인 듯하여
삼십여 년 짧은 생과 바꾼 그 장독
오빠 가고도
오랜
우리 가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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