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들
2009.12.17 05:22
어디에다 두었을까? 한참을 찾았다. 책상 서랍도 열어보고 옷장도 뒤져보고 옷 속주머니까지 다 열어보았다. 어디에도 없었다. 나이가 들어 이제 기억이 희미해진 탓일까 분명 어딘가에 잘 챙겨 두었을 터인데. 도대체 찾을 길이 막연하다.
나의 잃어버린 일 년의 세월이.
언제나 12월이 되면 마음이 착잡하다. 무언가 놓쳐버린 듯, 잃어버린 듯 아쉽고 허전하다. 연초에는 늘 올해는 예년과는 뭔가 다른 한 해를 만들어 가리라고 다짐도 하고 결심도 한다. 부푼 꿈으로 새해를 열어놓지만, 막상 닫을 때가 되면 또 언제나처럼 변함없다. 예년과 똑 같은 한해를 닫는다는 아쉬움과 허전함에 어쩔 줄 몰라 한다. 다 잃어버린 듯 다 놓쳐버린 듯 내 손에 쥐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는 듯하다.
이 한해도 결국은 이렇게 저물어간다. 마무리를 앞두고 돌아보니 아쉬움과 허전함이 있다. 눈물로 얼룩졌던 올해를 닫기가 뭔지 모를 아련함이 가득 묻어있다. 생각하면 다 묻어버리고 싶어 빨리 저물기를 바란다. 그러나 또 어찌 생각하면 그래도 내 생의 한 획을 긋는 한해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에 회한이 가득하다. 많은 세월이 흘러 내 삶의 책장을 넘겨볼 때 유난히도 얼룩이 가득할 올해의 책장을 그래도 마지막으로 넘기기 전 아름답게 마무리 하고 닫고 싶은 마음이다. 예쁘게 치장하고 색깔도 좀 더 부드러운 색으로 덧칠이라도 하고. 좀 희미한 태두리 선을 진하게 다시 그어보고…. 유치원 아이가 그려놓은 모자란 그림을 선생님의 몇 번의 손길로 아름답게 변하듯이 다듬고 고치고 마무리 하고 싶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에게 남아있는 지난날들의 기억들 속에 있는 아린 가슴의 후회스러움이나, 누구 때문에 놓쳐버린 것 같은 원망의 마음. 비록 작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보람을 느꼈던 그 한 때의 만족감등…. 어쩌면 그것과 동일한 마음의 연말이 아닌가 생각 한다. 나이가 든 사람들은 한 살 나이를 더 먹음으로 생기는 허전함도 더해가며 아릿하게 가슴에 찬바람이 일겠지. 나이가 좀 어린 사람들은 미래를 설계하는 일에 도움이 미흡하게, 혹은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한 듯 느껴 후회의 일 년 책장을 넘기고 있을 시간이다
그러함에도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 것은 내일이, 다시 시작할 내년이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 얼마나 감사하며 고마워해야 할 일인가. 올해를 흐릿하게 살아 부끄러운 사람도, 그런대로 잘 살았지만 더 잘 살아가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변함없이 누구에게나 똑 같은 내년이 주어져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내가 낭비한 오늘이, 어제 죽은 사람이 그토록 살고 싶어 한 내일’이었다는 말이 있듯. 그래도 우리에게는 완전한 끝이 아니라 다시 시작할 내일이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다. 후회보다는 진정한 뉘우침으로, 낙심보다는 새로운 용기로. 어제보다 더 나은 내일을 준비하는 그런 마음으로 이 연말을 맞이하고 싶다.
나의 생의 한 부분을 덮는 이 시점에서 나의 상념이 깊이를 더한다. 얼마나 아름답게 잘 마무리하며, 내년을 설계함에 더 신중을 기하여 준비할 것인가. 결국 이 한해를 닫기 전에 내년을 준비하고 미리 설계함이 이제 곧 맞이하게 될 새해에 대한 ‘예의’라는 생각이 머리에 가득하다.
내년에는 나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좀 더 챙겨주어야지, 나에게 주어진 일에 더 열심을 가지고 임해야지, 사랑의 생성체인 가정에 더 애정을 가지고 나의 모두를 쏟아야지. 더 많이 사랑해야지, 더 베풀어야지, 더 용서하고 더 이해하고 더 품으며 한해를 만들어 가야지….
그러나 치매환자처럼 금방 다짐하고도 돌아서면 잊어버린다. 내가 언제 그러한 결심을 한 적이 있기나 했나 며 내 마음대로 살아가는 나의 삶이지 않을까.
비 온 후에 땅이 굳는다. 그리고 사람의 뼈가 한번 부러져서 치료하여 붙은 자리는 다시 부러지지 않는다고 한다. 자연도, 인간의 몸도 그러할진대 인간이 한번 실패한 일을 다시 반복한다면 부끄러운 일이 아닐까. 아픔이 곧 더 나은 내일을 만드는 것이라면, 실패가 밝은 성공의 미래를 기약하는 것이라면, 결국 올해의 아픔도 실패도 우리에게 더 나은 희망찬 내년을 약속하는 것이 되겠지.
기지개 켜고 일어나 내일 다시 떠오를 ‘내일의 태양'을 기대하며 희망차게 시작해야지. 치매환자가 아닌 정상인으로 계획과 다짐을 꼭 기억하며 내년을 아름답게 만들어 가리라.
일 년 후, 내년 오늘은 기쁨과 감사의 글을 가득히 써서 올리리라.
올드랭사인 (Auld Lang Syne)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81 | 빛의 자녀 | 이영숙 | 2009.02.06 | 587 |
80 | 요요요요 | 이영숙 | 2009.02.17 | 581 |
79 | 마중물 | 이영숙 | 2011.06.22 | 577 |
78 | 봄맞이 | 이영숙 | 2012.06.04 | 568 |
77 | 콜로라도 강변에 서서 | 이영숙 | 2009.07.20 | 567 |
76 | 고난, 위장된 축복 | 이영숙 | 2009.02.22 | 566 |
75 | 이 한쪽 얼굴을 | 이영숙 | 2011.05.23 | 542 |
74 | 모진 책임 | 이영숙 | 2011.08.17 | 541 |
73 | 개 소리 | 이영숙 | 2011.11.04 | 536 |
72 |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 이영숙 | 2011.12.09 | 534 |
71 | 녹음기 | 이영숙 | 2012.06.25 | 529 |
70 | 나를 위한 선물 | 이영숙 | 2011.12.24 | 528 |
69 | 딱, 삼십 분만 | 이영숙 | 2011.06.09 | 525 |
68 | 억세게 운 없는 여자 | 이영숙 | 2008.10.07 | 525 |
67 | 빨간 신호등 | 이영숙 | 2008.11.21 | 524 |
66 | 못 자국 | 이영숙 | 2009.02.01 | 521 |
65 | 더디 가는 딸 | 이영숙 | 2012.08.17 | 520 |
64 | 홈리스 | 이영숙 | 2011.06.06 | 512 |
63 | 이름을 불러줄 때 | 이영숙 | 2011.07.01 | 512 |
62 | 1575년부터 | 이영숙 | 2011.09.05 | 5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