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자라는 양파

2010.03.20 02:42

이영숙 조회 수:982 추천:239

  인터넷 중독을 어떻게 예방 할 것인가를 강의하는 시간이 있었다.  한국에서 그 분야 최고의 전문가가 하는 강의였다.  여러 가지 상식을 많이 들었다.  우리 아이들이 인터넷에 얼마나 빠져있는지 가슴 저리게 알게 된 시간이었다.  컴퓨터 때문에 자녀와 부모가 멀어진다.  그 사이에 끼인 컴퓨터를 제어하지 못해 생기는 일이다.  부모와의 대화가 없어지고, 그들의 상대자는 오직 컴퓨터가 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 정도를 넘어서 아이들이 하는 게임은 살인을 모방하는 것이 많다.  화면을 보며 끔찍하게 느껴졌다.  내 아이는 아니겠지.  언제나 믿고 있지만, 사실 누구라 장담할 수 있을까.     옛날 우리들 시대는 엄마가 없으면 쓸쓸하고, 기다리던 엄마가 돌아오면 반갑고 좋아 뛰어나가 엄마를 맞았다.  엄마가 계시지 않은 시간을 가장 슬퍼했는데.  어느 친구의 이야기다.  그 친구는 어릴 때 학교에서 돌아와 엄마가 집에 계시지 않으면 아예 집에 들어가지 않고 대문 밖에서 엄마가 올 때까지 기다렸단다.  대문 앞에서 책을 펴고 숙제를 하며 엄마를 기다리다 엄마가 오시면 그 때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고 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엄마가 나가고 없는 시간을 좋아한단다.  이유가 바로 컴퓨터와 더 가까이, 더 오래 있으려고.  아이들에게 무서운 그림을 그리라고 했더니 컴퓨터를 하고 있는 중에 문을 열고 들어오는 엄마를 그렸단다.  우리 시대의 아이들은 귀신 그림을 그렸다.  캄캄한 밤에 혼자서 무덤으로 가는 그림을 그렸다.  엄마가 들어오는 그림이 요즘 아이들에게 가장 무서운 그림이라니.  이 얼마나 기막힌 일인가.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가 아니고 이제는 사람과 컴퓨터가 대화하고 관계하며 살아가는 세월이 우리 아이들에게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이 두렵고 무섭다.     컴퓨터 게임이 나쁜 이유가 너무 난폭하기 때문이다.  많은 욕설과 무자비하게 사람을 죽이는 장면들.  컴퓨터 때문에 난폭해지는 아이들에 대해서도 들었다.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고, 폭력을 휘두르고, 말이 거칠어지고, 욕을 하게 된다.  소름이 끼친다.  그렇게까지 변해가다니.  컴퓨터 게임은 폭력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게다.   폭력적인 컴퓨터 게임이 아이들의 성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한 실험을 통해 보여주었다.  많은 양파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었다.  똑같은 환경, 같은 온도, 같은 양의 물.  모든 것을 전혀 다름없이 똑 같이 하고 한쪽에는 ‘그린음악’을 틀어주고, 한쪽에는 욕설이 가득한 테이프를 틀어주었다.  시간이 지나 놀라운 일이 생겼다. 그렇게도 똑 같은 환경이었지만 좋은 음악을 들은 양파들은 모두가 고르게 잘 자랐다.  욕설을 들은 양파들은 간혹 자란 것들도 있지만, 많은 양파들이 반쯤 자라다 말았다.  개중에는 아예 싹도 트지 않은 것들도 있었다.  어떤 말을 듣고 자라느냐에 따라 이렇게 바뀔 수 있다니.  정말 똑같은 환경이었을까 의심이 갈 정도였다.  그러나 매스컴에서 실험하여 보여주는 것이니 거짓말을 분명 아닐 게다.     딸과 함께 집에 와서 그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말 놀랍다고.  그런 이야기 끝에 나는 좀 다른 차원에서 딸과 대화했다.  그 나쁜 소리를 듣고 자란 양파들.  늘 욕설만 듣고 자란 그들.  많은 양파들이 바로 자라지 못했다.  아니면 아예 싹도 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중에도 정상적으로 자란 양파가 있었다는 것에 초점을 두고 이야기했다.  환경이 어떻든 주위에서 누가 뭐라고 하던 자라는 양파들은 여전히 자란다.  사람들의 관심은 주로 나쁜 환경에서 자라지 않는 양파에 초점을 맞춘다.  환경이 나쁘니 그럴 수도 있지 라며 이해심도 많게.  그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여전히 잘 자라고 있는 양파는 뒷전에 두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시선이 그 속에서도 자라는 몇 안 되는 양파를 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바다에 바람이 불고 있다.  한 방향으로 바람은 불어온다.  파도가 일고 있다.  똑 같은 모습으로 파도가 친다.  두 대의 배가 나란히 있는데 한 대는 뭍을 향해 들어오고 다른 한 대는 바다를 향해 나아간다.   배의 키가 어디로 향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모든 양파가 다 자라지 못하는 어려운 상황에도 자라는 양파는 자란다.  똑같은 바람과 같은 파도위에서도 뭍으로 들어오는 배가 있고, 바다를 향해 나가는 배가 있다.  어디에서건 자신의 방향은 자신이 결정한다.  어떠한 환경에서도 결정권은 늘 자기에게 있다.  남들은 자라지 못하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그래도 자라는 양파처럼. 가곡 "저 구름 흘러가는 곳"
남택상 (연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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