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개의 눈
2010.06.16 07:48
그녀는
밥상을 차려 놓으면 열 개의 눈으로 음미한다
이것은 밥, 이것은 국, 이것은 김치, 이것은 고기……
끈을 사리기 위해 열 개의 눈을 사용한다
얼마만큼의 길인가 가늠해보고
내 인생보다는 훨씬 짧구나
고개를 끄덕이고 나면
지금까지 살아온 그녀의 삶을 차곡차곡 사린다
생의 순간순간을 점점이 이어놓은 책을 펼친다
가만히 짚어가며 읽는
흑암 속 걸어온 서른 번의 태양돌이
피아노 앞에서
건반을 정확히 본다
악보는 마음으로 읽는다
새소리, 바람소리, 물소리,
미세한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
꽃향기, 웃음, 눈물까지
심장의 소리 따라 움직이는 건반들
어둠 속에 잠겨있는 그녀
불 켜줄까? 묻는 내게
보내오는 미소가 밝아
전등이 필요 없음을 알아차린다
딱 두 번 만났을 뿐인데
목소리 알아듣고 반가워하는 그녀
가만가만 걸어가는 발소리에도
속삭이는 음성에도
내 심장의 빈자리를
내 삶의 무게를 알아내는
신기한 그녀
두 개의 눈으로 보는 명백한 사실 앞에
열 개의 눈으로 더듬는 불분명한 실체가
때로는 더 명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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