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관찰력

2012.01.05 12:11

이영숙 조회 수:333 추천:103


한심하기 그지없다.  나는 어찌 그렇게도 눈썰미가 없는지 모르겠다.  평범한 사람들은 그저 한두 번 본 것에 대해 기억을 잘도 하던데, 나는 몇 번을 보아도 자세히 기억하는 것이 어렵다.  처녀 때 중매라도 들어와서 나갔다 오면 온 가족이 관심이 집중되어 이것저것 물어본다.  “그 사람 어떻게 생겼든?” “키는 크더니?” “옷을 어떤 것을 입고 나왔었니?” 날씬하던?  뚱뚱하던? 온통 질문이 쏟아지지만 내 대답은 언제나 똑같았다.  “잘 모르겠는데.......”  뚱뚱했던가?  날씬했던가?  안경을 꼈던가?  키가 크던가?  얼굴이 어떻게 생겼더라?  어떤 옷을 입고 나왔었지......?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답답한 가족들은 앞으로는 절대로 혼자서 맞선보러 가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저 그 사람과 나눈 대화뿐이었다.  더하여 그 사람의 인품과 느껴지는 이미지밖에는 없었다.  

  길을 찾는 것도 다를 것이 전혀 없다.  한국에서 처음 운전을 배우고 차를 몰고 다니는데, 한번 간 길을 기억하는 것은 나에게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지난번에 간 그곳에 다녀오라는 남편의 말에 “거기가 어딘지 몰라요.”라는 대답 외에는 할 말이 없었다.  언제나 남편에게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운전의 첫 번째가 길을 잘 익혀야 하는 거야.”  날더러 어쩌란 말인가?  나는 도저히 한두 번 다녀온 길을 익히는 것은 불가능한 것을.  그 주위가 얼마나 아름다웠는가를 물으면 대답할 수 있다.  나무들이, 꽃들이 얼마나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말해줄 수 있다.  그 뿐이다.

  몇 번 본 사람의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고, 몇 번 다녀온 길도 내 머리에 기록되어있지 않다.  그 정도면 그래도 괜찮겠다.  그 이상이다.  어떠한 모임에서 꽤 오랫동안 봐온 사람을 누군가가“그 사람 안경 꼈지?”라고 묻는데 “글쎄......”라고 머뭇거리고는 한참을 생각해본다.  열심히 머리를 굴리며 그 얼굴을 떠올려본다.  불행하게도 나는 그 모습이 정확하게 떠오르지 않는다.  맞아, 안경을 꼈던 것 같아.  아니 참,  안 끼고 있었지 아마......? 그 사람의 얼굴에 안경을 끼웠다, 벗겼다 혼자서 열심히 그려보아도 뭔가 맞지 않음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 사람의 외모에 대해서는 내 기억에 아무것도 없다.  나의 뇌리에는 그저 그 사람의 됨됨이와 그의 성격만 남아있을 뿐이다.  그러니 실수도 많이 한다.  몇 번 보았는데도 기억하지 못해서 인사를 해야 하는 순간을 놓치기 일쑤다.  나중에 변명을 하지만 그 사람에게는 정말 ‘변명’으로만 들릴 것을 생각하면 나 자신이 한심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어떤 범죄현장에서 피해자나 그 곁에 있었던 사람들에 의해 범인의 몽타주가 작성되는 것이 나에게는 진짜 신기한 일이다.  어떻게 한번 본 사람을, 그 두렵고 무서운 순간에서도 그 얼굴을 기억해서 몽타주를 그리도록 자세히 신상을 말할 수 있을까?  참 기이하다.  만약 나에게 그런 일이 생겨 몽타주 작성을 위해 질문을 한다면 나의 대답은 시종일관 “모르겠어요.” 뿐일 게다.  눈이요?  몰라요.  키가 얼마나 컸냐구요?  모르겠어요.  얼굴형이요......? 전혀 모르겠는데요.  몇 살쯤이요?  아무것도 기억에 없어요.  유일한 대답, ‘모르겠어요.’  아마 요즘 와서 이러한 나 자신을 발견했다면 이제 치매가 오는가보다고 한탄을 했을 게다.  요즘은 치매환자의 연령이 자꾸 낮아져 50대의 치매환자를 어렵지 않게 만난다고 하니.  이렇게 기억을 하지 못한다면 그건 분명 치매환자임에 틀림이 없다고 판단해도 할 말이 없을 게다.  하지만 이러한 증상은 어려서부터 계속되어 온 것이니 치매라 하기는 좀 아닌 듯하다.  몇 차례를 만나고,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의 인상착의를 자세히 표현하지 못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믿지 않을 터이다.  나도 내가 왜 이런지 모르겠다.  

   얼마 전의 일이다.  발란티오 나가는 시각장애인센터에서다.  아주 총명하고 배우기도 많이 한 여자 시각장애인이 한번은 나에게 질문을 했다.  센터 문을 열고 서서는 “이 위에 뭐가 있나요?”라고 물었다.  “뭐가요?  아무것도 없어요.”  단호하게 잘라 대답하는 내 말에 그래도 미심쩍은지 “이 위에 뭔가 새로운 것이 생기지 않았나요?  뭔가가 다르게 느껴져요.”  “생긴 것 아무것도 없어요.”  변함없이 나의 대답은 분명했다.  “내게 그렇게 느껴지는데....... 전에 없던 뭔가가 생긴 것 같아요.  그래서 손을 뻗어보지만 만져지지가 않아요. 혹시 없던 지붕 같은 게 만들어진 건 아닌지......?”  내심 궁금해 하며 내 말을 믿지 못하고 뻗은 그녀의 손을 따라 눈을 들어보니, 아니 이럴 수가!  그랬다.  그 곳에는 깔끔하고 깨끗한 처마가 새로 만들어 져있었다.  한 달여가 지났는데도 난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전에 없었던 것도 느끼지 못했고, 더하여 새로 생겼다는 것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모든 것이 너무 깨끗하고 새것이어서 새로 만든 줄 안 것이 전부였다.  시각장애인의 느낌이 나의 보는 것보다 정확했다.  정말 어이없는 상황이었다.  이리저리 나름대로 변명을 해 보지만 어색하다.  사물에 대한 나의 관찰력이 엄청 부족하다는 솔직한 고백 외에는 따로 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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