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금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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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빈자리

2007.01.22 08:40

윤금숙 조회 수:270 추천:60

  노을을 머금고 있는 구름은 황홀한 색깔을 눈부시게 뿜어내고 있었다. 비행기는 그 사이를 헤치며 유유히 날고 있다. 비행기 안에서 밖을 내다보는 경치는 참으로 아름다웠다. 나는 오랜만에 뉴욕에 사는 친구를 보러 가는 길이라 약간 들뜬 기분이다.
  비행기 여행을 할때, 나는 항상 창쪽보다는 통로쪽에 앉기를 원한다. 쉽게 일어날 수 있고 덜 답답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분명히 통로쪽을 부탁했는데 창쪽의 자리가 된 것이다. 하지만 여유로운 마음으로 비행기 안에서 밖을 내다보는 경치를 즐기리라 생각했다.  
  이 친구랑 같이 기차여행을 하며 있었던 지나간 일들이 지금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눈앞에 아른거린다.
  그 때는 로맨틱한 상상을 하며 옆자리에 누가 올  것인가를 기다리곤 했었다. 이제는 그런 감정도 세월 속에 다 묻히고, 혹시 운이 좋아 3명이 앉는 자리를 혼자 앉아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기대 속에 앞에서 걸어 들어오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300파운드는 족히 나갈만한 중년의 남자가 들어오고 있다. 설마 하는 사이에 그 사람은 내 옆자리의 번호를 확인하더니 콤파트먼트에 가방을 올려놓는다. 갑자기 앞에 태산이 가로놓인듯 답답하다. 창쪽에 앉아있는 나는 졸지에 창밖으로 튀어나갈 것만 같았다.
  책을 읽는 척했지만 나는 승무원을 불러 자리를 옮겨야 되나 하는 생각으로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만약에 승무원한테 부탁하는 것을 눈치채거나, 빈자리가 없어 옮기지 못하고 그냥 있게 된다면 무슨 망신이란 말인가.
  비만증 사람들을 보면서 한번도 저 사람들이 의자에는 어떻게 앉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무척 힘들어 하는 모습이 측은하다.
  기류까지 좋지 않아 비행기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며칠 전 신문에 났던 기사가 생각났다. 부부가 싸우다 뚱뚱한 남편의 무게에 눌려 부인이 죽었다는 것이었다. 그 때는 “아니 그럴 수가” 하며 무심히 지나쳤는데, 비행기가 자꾸 내쪽으로 기우듬하니 아차 하면 비행기 사고를 당하기 전에 압사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 특별한 자리를 만들어 놓을 수는 없을까? 실제로 한 비만증 여성이 비만의 이유로 두 사람 분의 항공료 지불을 요구받자 굴욕감을 느껴 소송을 제기했다는 뉴스도 있지 않는가.
  나는 입맛을 잃어 음식을 먹을 수가 없는데도 이 사람은 주는데로 다 받아 먹을 뿐더러 더 주문을 해 먹는다. 구부리기가 만만치 않으니 선반 위에 올려 놓은 가방에서 주섬주섬 초코렛까지 꺼내 쉴사이없이 먹어댄다. 나는 보기만 해도 먹는 것에 질력이 난다. 하기야 이미 늘려 놓은 체중을 유지하려면 어쩔 수가 없을 것이다.
  이런 상태로 5시간 동안을 참고 견딜 자신이 없다. 마침 승무원이 오고 있어 용기를 내어 말을 하려고 했지만 말은 입안에서만 맴돌았다. 그 순간 그가 먼저 무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자  그는 겨우 의자에서 빠져나와 미안한 듯 눈인사를 나에게 보내고 승무원을 따라 뒤뚱대며 뒷자리로 옮겨갔다. 그가 움직이는 대로 온통 주위가 출렁거리는 것 같았다.
  아마도 그는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얼마나 다행인가.
  휴우 하고 숨을 토해 내는 순간 머리속에 스치는 양심의 소리를 들었다.
  내가 먼저 승무원을 불러 자리를 옮겨달라고 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찔한 생각이 든다. 그는 나의 행동으로 인해 얼마나 큰 상처를 입었을까? 그도 좁은 자리에 끼어 옆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숨쉬는 것조차 조심했을 것이다.
  혹시 그는 내가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을 눈치 채지 않았을까. 분명 본인 자신보다도 나를 위해서 자리를 옮겼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내 속마음을 들켜버린 것 같아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오래 전, 병상에 계신 아버지께 전화로 불효를 변명 했을 때, 멀리 있는 사람보다는 가까이 있는 사람한테 먼저 잘 하라고 유언처럼 말씀하셨다. 그 때는 그 말이 내 가슴에 깊이 새겨졌었지만 그 동안 까맣게 잊고 살았다.
  이제는 빈자리를 내 욕심으로 채우지 말고, 누군가 나의 도움이 필요한 자리로 비워두는 훈련을 해야 되겠다. 편하려고만 하지 말고 어려움을 견디면서 사랑의 온기로 빈자리를 채워보자. 오늘 일도 옆 사람한테 좀더 친절하게 대했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그는 자리를 결코 옮기지 않았을 것이다.
  가장 가까운 옆자리, 가족 그리고 이웃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하는데 인색하지 말자.
  잠시 앞이 가려 캄캄하더니 서서히 한 줄기의 가는 빛이 빈자리를 비추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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