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금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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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단비

2007.01.22 12:05

윤금숙 조회 수:341 추천:76

  그녀는 시골에서 알려진 재원이었기에 가족과 동네사람들의 꿈과 희망을 안고 K시로 대학 진학을 했었다. 자취를 하면서 열심히 공부를 하는 착실한 여대생인 그녀는 대학생활이 점점 익숙해져 갈 무렵 미팅에서 만난 같은 학년의 남학생과 사랑에 빠졌다. 방학 때, 그들은 학교 공부를 핑계 삼아 시골로 돌아가지 않고 동거를 시작했다.
  어느 날 임신한 것을 알고 남자는 군대를 핑계로 꼭꼭 숨어버렸다. 어떻게 할 것인가. 그녀는 평생을 혼자 아기를 키우며 살아 볼 생각도 해보았지만 능력부족과 앞으로의 인생에 자신이 없었다. 평화로운 집안을 평지풍파로 몰아부치고 싶지 않았고, 동네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싶지 않았다.  
  생각다 못해 두어 번 진찰을 받았던 산부인과 여의사와 터놓고 의논을 하기로 결심했다. 여의사는 마침 좋은 집안으로 부터 부탁을 받은 일이 있으니 아기를 낳아 그 집에 입양을 시키자는 제의를 했다.
  그녀는 아기를 낳았지만 얼굴 한번도 못 본채 떠나 보내야만 했다. 여의사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았으나 마음은 온통 보지도 않은 아기의 모습으로 산란해졌다. 그러나 텅빈 마음을 다잡고 그곳을 떠났다.  
  이런 사연을 가진 아기는 임신을 할 수 없는 내 절친한 친구의 집에 입양이 되었다. 친구는 본인이 아기를 낳은 것처럼 하기위해 아무도 모르는 먼 동네로 이사를 갔다.
  이러한 일은 비밀리에 이루어졌고 그 아이는 아무것도 모른 채 온 집안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자라고 있다.
  친구는 이 아이로 인해 새로운 삶을 살게 되어 무척 행복해 했다. 그래서 아이의 이름을 “단비” 라고 지었다. 하지만 불안한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딸의 혈액형까지도 마음을 졸이게 했다 그러던 중 어느날 학교에서 혈액검사를 했는데, 천만다행으로 딸은 그들 부부 사이에서 나올 수 있는 혈액형을 가진 것이었다.
  친구는 그 기쁜 소식에, 단비는 정말 내 딸이라는 다짐을 마음속에 다시한번 했다. 언젠가 단비가 철이 들어 모든 것을 이해할 나이가 되었을 때, 낳은 정보다 기른정이 크다는 것을 알 나이에, 옛날 얘기하듯 모든 것을 말해주리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 사실을 무덤까지 꽁꽁 싸매서 가져 가고도 싶었다.
  마음을 다스리는데도 여전히 개운치 않은 불안이 안개처럼 자욱하게 깔려 있는 것이다.  
  친구는 자신을 위해서 또 딸을 위해서 분명 보람있는 삶을 살고 있는데 왜 그토록 불안한 마음일까?
  아직도 한국사회가 입양아를 바른 눈으로 봐주지 않기 때문일까? 결혼할 때 문제가 되기 쉽고 앞길에 지장을 가져오는 사회풍조 때문일까?
  미국같이 처음부터 사실을 밝히고 떳떳하게 입양을 해서, 그들을 당당한 사회인으로 자신있게 키워낼 수는 없을까?
  나는 친구집엘 갈때마다 혹시라도 무슨일이 생기지 않았나하고 그 집안 분위기를 눈치껏 살피곤 했다.
  나 자신부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오랜 인습에 젖어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내 가족, 내 핏줄을 중요시 하며 섞이지 않으려는 우리의 관습 때문에 그들은 사실을 밝히지 못하고 비밀에 붙이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티없이 자라는 친구의 딸을 보고 나는 오랫동안 쌓여 있는 편견을 조금씩 털어버려야 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분명 그 딸은 과거가 알려진다해도 모든것을 이겨내고 긍정적인 삶을 살것이다. 친자식이상으로 사랑을 하는 엄마가 있기때문에.
  지난 한 해 국내에서만 입양된 아이가 1천7백여명, 해외입양은 2쳔4백여명이라 한다. 해외입양이 국내 입양보다 많다는 것은 분명 우리 모두의 수치이다.
  며칠 전, 동네 한국식당에 갔었다. 마침 미국인가족이 대 여섯살쯤 돼 보이는 한국아이 둘을 데리고 들어와 옆자리에 앉았다. 한산한 식당에는 그들과 우리 가족밖에 없었다. 그들은 몇번 눈인사를 보내더니 가까이 와 말을 건넸다. 한국에 대한 많은 것을 알아야 두 아이들을 키우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 한국에 대한 소식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한국인이라는 아이덴티를 지켜주기 위해 자주 코리아타운에 나와 한국사람들을 만나게 해준다고도 했다.  
  오늘도 입양한 두 아이를 위해 한국식당을 찾았다고 했다. 한국음식은 먹을 수록 인이 박힌다며 김치를 사라다 먹듯 한다. 김치 담그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붙임성있게 묻기도 했다.
  이렇게 대화를 하는 그들에게 나는 따뜻한 정을 느끼게 되었다. 특히 그분들은 좋은 인상과 교양을 갖춘 사람들로 보여 안심이 되기도 했지만 나는 잘 먹던 저녁이 가슴에 꽉 걸렸다.
  그 아이들을 떠나보낸 나라의 한 국민으로서 부끄러움을 견디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했다. 우리들의 편견과 편협한 마음이 입양을 외면시 하는 것이 아닌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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