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금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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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대박의 꿈

2007.01.23 00:40

윤금숙 조회 수:382 추천:79

한국에서 온 친구부부를 위해서라는 핑계로 네 가족이 라스베가스를 갔었다.

  그곳을 간다하니 주위의 친구들이 오 불씩 주면서 자기네들 몫으로 슬럿머신을 땡겨 보라고 했다. 모두가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있음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엄청난 돈이 복권이나 잭펏에서 터졌다는 뉴스를 들을 적마다 지레 겁이난다. 만약에 내가 그런 돈이 생긴다면, 그 돈으로 인해 닥쳐올 새로운 인생이 엄청나서 아예 사지도 않는다고 했더니 친구들은 꿈도 야무지다고 빈정댄다.

  친구돈 오 불을 가지고 일 불짜리 슬럿머신에 넣을까 아니면 이십 오쎈트짜리에 넣을까 잠시 고민하는 사이에 나는 문득 혹시 잭펏이 터진다면 과연 친구의 돈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제발 아무것도 나오지 말기를 빌면서 버튼을 눌렀더니 주는데로 꿀떡꿀떡 잘도 들어간다.

  그곳에 사는 한국식당 주인말이 슬럿머신에서 나오는 80% 수입으로 라스베가스가 유지된다고 한다. 넣는데로 꿀떡하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도박이 뭔지도 모르는 나같은 사람도 그런 마음이 드는데 중박을 경험한 꾼들은 어찌 “대박의 꿈” 을 바라지 않겠는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퉁퉁 떨어지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다 건너편에서 룰렛을 하고 있는 동양남자를 보게 되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발길이 그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서로의 눈길이 마주치는 순간 한국사람이라는 눈빛을 감지했었다.

  도박에는 너무나 문외한인 나는 얼마짜리 칩을 가지고 베팅을 하는 지 조차 몰랐다. 하지만 그가 베팅하는 것이 심상치 않다는 것은 구경하는 주위사람들의 시선으로 눈치챌 수 있었고 그 남자 앞에 쌓여 있는 칩으로도 알 수 있었다. 칩은 천 불짜리에서 부터 이십 오불짜리까지 있었다. 그 남자는 삼십육 번까지 있는 자리에 거의 반 이상을 백 불짜리 칩으로 채우고 있었다. 그는 번번이 싹쓸이 당하고 있었다. 조금 있으니 매내저가 나타나 반갑게 악수를 하고 껴안는 것으로 봐서 분명히 큰 단골인 것 같았다.

  종이에 싸인을 하면 천 불짜리 칩을 한 뼘이 되게 준다. 그는 그것을 백불 짜리로 바꿔서 순식간에 이삼천 불을 휙 싹쓸이 당한다. 병냉수를 들이키는 손가락에 결혼 반지가 슬프게 번쩍하고 내 눈에 들어온다. 만불, 이만불이 순식간에 없어진다. 그리고 또 칩을 바꾸고 또...

  그러다가 한번 맞으니 순식간에 팔천 불어치 칩이 앞에 쌓였다. 주위의 시선이 모두 그 사람한테로 집중된다. 그는 표정하나 바꾸지 않고 냉수를 들이키고 다시 칩을 서른 여섯자 숫자중 여기저기 깔아 놓았지만 주사위는 번번히 빗나갔다. 그는 갑짜기 정신없이 어디론가 뛰어간다. 나는 그가 뛰어 가는 곳이 어딘가 싶어 그의 뒤를 따랐더니 화장실로 들어간다. 그는 곧 뛰어 나와 가쁜 숨을 돌릴 틈도  없이 또 베팅을 한다.

  나는 남자를 무려 두 시간 동안을 바라보며 온갖 생각을 머리 속에 그리고 있었다. 결혼 반지가 있으니 아내가 있을 것이고 삼십 중반쯤 돼보이니 아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가족들은 지금 어디에 있으며, 그는 이렇게 많은 돈을 물 뿌리듯 해도 되는 것일까. 궁금한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닌 채 나는 이 젊은이를 눈에서 떼지를 못하고 지키고 있는 것이다.  

  며칠 전 신문에 난 기사가 바로 여기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경마에 빠져 2억여원이라는 전재산을 날린 뒤 이혼까지 당하고 갈 곳없이 길을 헤매고 있는 전직 회사원, 택시운전을 하다가 경륜에 손대 택시 면허증까지 날리고 막노동을 하면서도 주말이면 경륜장 주변을 배회하며 여전히 “대박의 꿈” 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어느 기사의 이야기.

  도박은 대부분이 처음에는 심심풀이로 베팅을 시작했다가 한번 고액을 맞히게 되면 이를 평생 못잊어 그 환상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고 한다.

  요즘 한국에는 내국인 출입이 가능한 카지노가 여기저기 세워지고 있다 한다. 세 사람만 모이면 화투장을 잡는다는 투기성이 강한 국민성향에 정부와 지자체 공공기관들마저 도박산업에 뛰어드는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얼마 전 이곳 방송에서 들은 얘기다. 가디나 시에 있는 카지노 도박장에 친구 좇아 우연히 처음 간 사람이 장난으로 도박을 한 것이 “대박” 이 터진 것이다. 그는 그날의 꿈에 사로 잡혀 아내 몰래 또 말려도 한 밤중에 도망해 카지노에 빠지게 되었다. 남편을 구해 달라는 아내의 소리였다.

  몇 년만에 가본 라스베가스는 파리를 연상하는 도시, 베니시안, 피라밋 모형의 호텔 등, 도박으로만 이루어진 거대한 대도시로 무한정 발전하고 있었다. 갈수록 커지기만 하는 도시를 보며 나는 가슴이 답답해졌다. 이곳에 와서 과연 몇 사람이나 횡재를 하고 가며 그 사람들이 과연 이곳을 다시 찾지 않을 수 있을까 의문이 되었다.

  일행인 친구는 삼 년전에 슬럿머신이 텨져 만 불을 땃는데 결국은 더 큰 것이 터질 것 같은 예감에 일 년만에 몇 번을 와서 그 이상을  잃고 자중했다고 경험담을 말한다.

  도박을 하다 결국에는 패가망신하는 사람이 한 두사람인가. 한탕하겠다는 과욕이 낳는 결과이다. 과욕은 불행을 불러오고 죽음까지도 가져올 수 있다.

  물질만능 시대라지만 우리의 가치관을 어디에 두고 살아야 하는 가를 생각해 볼 때이기도 하다. 물질은 우리를 조금 편리하게 해 줄뿐 그것이 우리의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라는 깨달음이 온다.

  하루하루 충실하게 자기 할 일을 하며 작은 것에서 행복의 의미를 부여하는 삶을 산다면 성공한 삶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