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금숙의 문학서재






오늘:
0
어제:
0
전체:
16,423

이달의 작가

무엇을 자식들에게 남겨줄 것인가

2007.01.23 00:47

윤금숙 조회 수:631 추천:120

“어머니는 건강하시니?”

  “말도 마라. 요즘 우리 어머니 전화만 받으면 스트레스가 쌓인다.”

  서울에서 걸려 온 친구의 짜증난 목소리였다. 그녀는 딸 넷에 아들이 하나 있는 집안의 맏이다. 맏이답게 항상 마음의 여유가 있고 성격이 부드러워 친구들은 다 그녀를 좋아하는 편이다.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유산문제가 남겨졌다. 남겨진 그 많은 재산을 전부 아들한테 주겠다는 어머니의 뜻에 따라 딸들은 말 한마디 못하고 고스란히 포기각서에 도장을 찍어야 했다.  

  아들의 사업이 실패할 경우에 어머니는 어떻게 살 것인가. 포기각서에 도장을 찍지 말고 딸도 엄연히 법적으로 상속권이 있으니 악착같이 몫을 받아야 된다. 어머니와 의가 상하더라도 자기 몫을 받아 꼭 쥐고 있다가 나중에 필요할 때 드리면 더 효녀가 되는 것 아니냐. 그래도 어머니가 원하는 일이니 그 뜻에 따르는 것이 도리다.

  얼마동안 친지들은 이렇게 의견들이 분분했었다. 친구도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흔들려 며칠씩 잠을 못 자곤 했었다. 지금 불효를 했다가 나중에 더 효녀가 되는 상상도 해 보았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자주 변하기 때문에 그 방법도 믿을 만 하지가 않았다. 특히 큰딸이기 때문에 여동생들은 언니의 처사에 따르겠다고 하니 얼마나 책임이 막중한가.

  얼마를 고민하다 친구는 나중에 어떻게 되던 평생 아버지가 번돈이니 어머니 마음대로 하게 하는 것이 자식된 도리라는 결정을 했다. 동생들을 잘 이해시켜 포기각서에 도장을 찍게 했었다. 평생 딸이 좋다던 어머니는 어쩐 일인지 유산문제에 닥쳐서는 철저하게 아들편으로 백팔십도 바뀌어 버렸다. 딸들은 어머니께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배신감 느낀다고 얘기를 했을 뿐 섭섭함을 노골적으로 표현하지를 못했었다.

  끝에 두 동생들은 박봉에 허덕이며 사는데 언니의 의견을 따르자니 억울했을 것이다. 그래도 그렇게 결정을 하고 나서 딸들끼리 서로들 잘한 일이라고 다독거렸었다. 돈 때문에 부모형제간에 의가 상해서야 되겠는가.  

  그 당시의 이런 저런 상황을 친구는 내게 의논 겸 털어 놓곤 했었다. 나는 친구를 칭찬했고 속으로 감탄도 했었다. “정말 잘한 일이야. 너를 친구로 두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노력해서 번 돈이어야 가치가 있지 불로소득으로 얻은 돈은 아무런 의미가 없지 않겠냐고 위로도 했었다.

  사실 객관적인 입장에서 말하기는 얼마나 쉬운가. 그러나 나에게도 그런 일이 실제로 닥쳤다면 미련없이 포기할 수 있었을까? 똑 같은 자식으로 태어나 아들 딸을 편견해서 공평치 못하게 일 처리를 한다는 것에 아마도 반기를 들지 않았을까싶다.

  그로부터 육년이 지난 후 친구는 어머니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 것이다. 남동생은 워낙 헤픈데다 목돈이 들어왔으니 빌딩에 외제차를 사고, 해외 여행도 뻔질나게 다니며 몇 년동안 호화롭게 살았다. 꽂감꽂이 빼먹듯 빌딩 전세돈을 야금야금 집어쓰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다 IMF가 예기치 않게 들이닥쳐 빌딩값은 뚝 떨어지고 세는 들어오지 않아 급기야는 빌딩을 팔아도 빚을 못 갚을 정도가 되었다. 그러니 용돈마저 궁하게 돼버린 어머니는 자연히 만만한 큰딸한테 하소연을 한다는 것이었다.

  돈 한푼 받지 않았던 딸들은 그동안 열심히 저축하고 알뜰하게 살아왔는데 이제와서 어머니의 용돈을 거둬야 될 형편이 되었으니, 자연 딸들의 불평이 모두 아들한테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희한한 일은 친구의 어머니다. 딸들한테 죽는 소리를 하면서도 아들에 대한 불평 한마디 안 하는 것을 친구는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아들한테 모든 것을 준 기쁨을 가슴에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는 것일까? 똑똑하고 현명했던 친구의 어머니는 지금도 과연 아들을 위해서 잘한 일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며칠 전 샌호세에 사는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그 친구부부는 육십 년도에 유학생으로 돈 한푼없이 미국에 와서 밥을 굶으면서 공부를 했었다. 평생 그때의 일을 못 잊어 쌀 한톨을 아끼는 친구네는 비지니스에 성공해 많은 재산을 모았다.

  그녀는 담담하게 속마음을 털어 놓았다. “자식들을 바보 만들고 싶지 않다고 결정을 내렸어. 돈이란, 세상에서 사는 동안 우리에게 잠시 맡겨진 것이지 결코 내 소유는 아니야” 하며 오래 전부터 계획했던 자선사업을 남편과 구체적으로 의논 중이라고 했다.

  나는 무슨 말인가를 해야된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맴돌뿐 말이 되어 나오지를 않았다.

  전화를 끊고 가만히 창문을 열었다. 창밖으로 막 지는 노을을 바라본다.

  황혼이 이처럼 내 마음에 아름답게 다가오기는 실로 오랜만인 것 같았다.  






  2월 15일 2002


  한국일보 문인광장에 실림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 무엇을 자식들에게 남겨줄 것인가 윤금숙 2007.01.23 631
15 만남 윤금숙 2007.02.04 602
14 머사니 윤금숙 2011.12.28 574
13 창밖엔 백일홍이 윤금숙 2012.08.14 551
12 살아 있는 것은 모두 사랑을 원한다 윤금숙 2011.12.28 503
11 할미꽃 간호사 윤금숙 2011.12.28 462
10 단풍은 다시 물 들지만 윤금숙 2011.12.28 458
9 보이지 않는 끈 윤금숙 2007.01.23 389
8 대박의 꿈 윤금숙 2007.01.23 382
7 프리지어 간호사 윤금숙 2007.01.22 360
6 외로운 외침 윤금숙 2007.01.22 360
5 단비 윤금숙 2007.01.22 341
4 그때 그 시절 윤금숙 2012.08.14 335
3 우리들을 위해 걷는다 윤금숙 2012.08.14 292
2 드라마 작가인 친구에게 윤금숙 2012.04.20 286
1 빈자리 윤금숙 2007.01.22 2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