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용서

2008.07.02 01:30

신영 조회 수:350 추천:71




아름다운 용서 /신 영



며칠 전 한국식품점에서 비디오 테잎을 빌려다 보게되었다. 내용은 오래 전 헤어졌던 사람들의 얘기와 더불어 사람을 찾아주는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냥 헤어졌다 보고싶어서 그리워서 만나는 일이 아니고 원망과 분노 미움이 뒤범벅이 된 관계들을 화해와 사랑으로 승화시켜주는 가교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보고싶지만 찾을 수 없는 사연의 사람들, 찾았지만 차마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의 얘기는 가슴의 아림을 남겨 주었다.

한 여자는 어린 나이에 한 남자를 만났다. 그리고 사랑하는 한 남자를 따라가 결혼을 하게되고 한 가족이 되었다. 따뜻한 사랑으로 대해주시는 시어머니의 그 사랑은 오랜 헤어짐의 시간이 흘렀어도 남아있을 만큼 그녀에게 큰 은혜의 사람으로 남았다. 시댁에서 신혼살림을 차리게 되었고 결혼 생활을 이어가면서 남편의 불성실함이 이내 드러나고 말았다. 그리고 첫 아이(딸)를 출산하게 이르렀다. 외롭고 무서움이 밀려오는 첫 출산의 시간에도 남편은 곁에 있어주질 못했다. 늘 그런 식의 태도에 실망이 커지고 아이들을 바라보며 자신을 책망하고 타이르며 또 세월을 보내고 있을 무렵 밖에 잠깐 외출하고 집에 돌아오니 딸아이와 아들 녀석이 연탄가스에 중독이 된 상태였다. 너무도 당황하고 막막한 나머지 남편을 기다리던 여인은 결국 남편이 밖에서 늘 바쁘다는 핑계로 삼았던 놀음판(화투판)장을 찾아간다. 그리고 이내 남편과의 이별을 선언한다.

따뜻한 사랑으로 안아주셨던 시어머님을 뒤로하고 두 아이들을 데리고 여인은 집을 나선다. 낯선 곳에서의 일자리를 구하기는 하늘에 별 따기였다. 한 달을 그렇게 일자리를 찾다 결국 찾지 못하고 시어머님이 계신 곳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간 것이다. 반가이 맞아주시는 시어머님께 용서의 말과 부탁의 말씀을 남기며 곧 아이들을 찾으러 오겠노라고 떠나온 것이다. 그렇게 떠났던 시간은 금방 찾으러 오겠노라고 약속했던 그 약속을 20여 년이 되도록 지키지 못하고 살아왔던 한(恨)많은 한 여인의 실화의 얘기였다.

방송사에서의 만남을 주선해 주는 이 프로그램이 눈물겹도록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평생을 가슴앓이로 살아왔던 한 여인의 아픔을 고통을 덜어줄 수 있다는 것이 말이다. 그리고 할머니의 보살핌으로 커왔을 아이들이 자라면서 제 키보다 웃자라있을 아픔과 슬픔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원망이 그네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로 남아있었을까. 이렇게 생각하니 이 방송을 보면서 더 없는 감사로 눈물이 고여오고 있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나와서 기다리는 장면과 어른이 된 딸과의 대화만이 오가고 있었다. 얼굴 없는 모녀간의 천륜이 파장을 내며 가슴을 울리고 있었다. 20여 년 동안 서로의 가슴에 남았던 슬픔과 고통 그리고 원망이 하나 둘, 툭툭 쏟아지고 있는 것이었다.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한 어머니와 딸에게서 속울음을 내며 흐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맑고 밝게 잘 자라온 딸의 모습을 보며 손녀와 손자를 보살핀 할머니의 정성이 곧 전해지고 있었다. 말씨와 함께 한 마디, 한 마디 물음에 대답하는 딸은 참 곱게 잘 자랐구나! 하고 어머니의 가슴에도 남을 만큼 보는 내게도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얼마 후 가슴에 한(恨)을 담고 살아 온 어머니와 원망으로 살아왔을 딸이 한 자리에 마주하는 시간이었다.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천륜의 이어진 끄나풀은 모녀를 하나로 만들어 놓았다. 부둥켜 않은 모녀의 오랜 가슴아픈 정이 흐르고 있었다. 얼마나 그리움으로 있었을까. 또한 얼마나 긴 기다림으로 살아왔을까. 헤어짐은 슬픔이고 고통이고 원망일 수 밖에 없으리라. 가슴에 담아 둔 긴 사연들이 그 슬픔과 고통과 원망의 뭉침들을 풀어주었으면 하고 마음으로 빌었다.

얼마 후 시어머님(할머니)과 아들(손자)이 한 자리에 마주하는 시간이 마련되었다. 용서를 비는 며느리와 여전히 사랑의 마음으로 대하는 시어머니의 모습은 아름다움이었다. "어머니, 용서해 주십시오! 고맙습니다, 아이들을 예쁘게 키워주셔서 고맙습니다." 인사를 하는 며느리의 간절한 시어머님께 드리는 용서의 간청이었다. 또한 "아니다, 아니야! 네가 잘 못이 무에 있어! 내 아들녀석이 잘못인 것을..." 하시며 여전히 며느리를 따뜻하게 안아주시는 시어머님은 진정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가 될 만큼 귀중한 만남이었다. 이들 한 가정의 이별과 슬픔 그리고 원망이 또 다른 만남을 통해 따뜻한 위로와 '아름다운 용서'의 장이 된 것을 보며 우리의 삶 가운데 작지만 늘 일어나는 한 부분이구나! 하고 깊은 생각을 갖게 하는 날이었다.

때로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쉽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는 것이다. 가족들이 모이는 명절을 앞두고 가족간의 보이지 않는 실랑이들이 또한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화목해야 할 가족들의 모임이 모이기도 전에 삐그덕 거리는 모습은 아마도 이민생활이 그만큼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일 게다. 서로가 바쁘게 살아가는 생활이 때로는 지치게 하기에 그럴 것이리라. 또한 겉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듯 보이지만 골이 더욱 깊어지는 경우도 있다. 누구에게나 각자의 처한 입장과 이유는 다 있는 것이리라. 다만 내 입장만 이해해 주길 바라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일 게다. 상대방의 입장에 잠깐이라도 설 수 있다면 아마도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리라. 오래 된 앙금의 감정이 남아 있다면 자존심을 내려놓고 찾아가 용서를 빌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리란 생각이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이처럼 용기를 내어 찾아가는 일일 것이다. 또한 그 용서를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은 진정 '아름다운 사람'일 게다. 서로가 서로에게 줄 수 있는 진정한 이 세상에서의 누림은 바로 '아름다운 용서'인 것이다. '아름다운 용서'는 바로 배려이고 사랑인 것이다.



11/24/2006.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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