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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닥터 지바고를 만나는듯한

2004.01.26 23:10

박정순 조회 수:587 추천:52

겨울 여행.2

졸립다. 피곤하고 힘겨운 육체와 정신은 잠에서 깨어나기를 주저하고 있었다. 바지런한 남편은 먼저 샤워를 끝내고 짐 정리를 하고 있었다. 늘 그랬다. 잠보인 아내를 위해 남편은 때론 아버지처럼 혼자서 아무말없이 모든 일을 마무리해 놓는다. 몸은 소금 가마니처럼 축 쳐진듯 무거웠지만 힘들게 일어나 샤워를 했다. 뜨거운 물이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말초 신경을 하나씩 흔들어 깨웠다. 아이들까지 샤워를 시키고 난 7시에 까까워오는 시계 바늘을 보며 모텔을 떠났다. 주인 아주머니께 인사도 남기지 않고서…

토론토의 아침 7시는 여명으로 훤해질 시간인데 아직도 이곳은 어둠에서 깨어나지를 않았다. 산이 깊어서 그런가? 언제쯤 해가 뜰것인지… 그저 눈덮힌 산과 어둠속의 도로를 따라 한없이 앞만 보고 달려가야 했다. 벤프가 가까움을 알리는 표지판이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30분을 더 달려서야 벤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벤프는 아직도 어둠속이었다. 아침 식사를 하는 식당을 찾기 위해 한바퀴를 돌았다. 어둠속의 불빛을 더듬어 맥도날드 식당앞에서 발길을 멈췄다. 드문 드문 사람의 흔적이 비치는 곳이라고는 그곳 뿐이었다. 환한 불빛을 뒤로 하고 하루정도 이곳을 돌아보고 싶은데… 남편의 마음은 딴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속으로 불평 한바구니 내려 놓을까? 하다 고만 두기로 했다. 언제 다시 겨울 여행을 할것이라고…아마도 비행기값 외에 더한 여행 경비가 남편의 움직임을 제한하고 있는지도 모를터. 이만큼에서 만족하기로 말이다.

자동차가 벤프를 벗어나 바위산들 사이로 난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동안 우리 앞에 나타나기 시작하는 비경에 소리를 지를 수 없었다. 창공을 찌를 듯한 거대한 산의 모습을 마주하면서 온갖 산신들이 긴 흰수염을 휘날리며 서 있는듯한 환영…. 록키산의 판도라 상자를 가슴에 안은 듯 자연만이 줄 수 있는 거대한 경이의 기쁨이 몰려왔다. 록키의 아름다움을 이렇게 수박 겉 핥기식으로 지나가는 눈요기로 어떻게 말 할 수 있으랴. 하지만 우리는 흔히 산을 오르면서 인생을 이야기 하고 길을 걸으면서 인생을 말한다. 나 또한 물을 마시듯 어쩌면 너무 쉽게 인생을 표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록키와의 첫 만남은 마치 우람한 남자의 거대한 힘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것이었다.

푸른 힘줄이 드러나 보이는 듯한 강인한 힘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록키산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여행가들은 알프스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한 내게, “록키를 가 보지 않았거든 알프스의 아름다움을 말하지 말라.고 했다. 아직 휘 둘러보기에는 몇 달이 걸릴 것 같은 이곳이지만 서투른 초행자의 느낌은 알프스 산들이 여성적 아름다움을 드러낸 것이라면 록키는 강인한 남성적인 힘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니, 아직 판도라의 상자를 열지 못하였기 때문에 에메랄드빛 호수며 그 무궁 무진한 아름다움을 마주하지 못했지만 우린 그 상자의 뚜껑을 열지 않기로 했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많은 질문들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환상과 신화를 넘나들도록 그렇게 남겨 두기로 말이다.

산다는 것에 대한 스스로의 조율을 통제하기 위해 그저 바라만 보아도 눈 덮힌 산야의 비경, 아니 그랬다. 닥터 지바고의 촬영지… 여기 어디쯤이라고 했던가? 캘거리에서 벤쿠버로 넘어가는 기찻길… 눈덮힌 산야를 바라보며 기차를 타고 달리던 지바고의 모습과 눈을 덮어 쓴 사철 나무사이로 금빛 햇살이 비쳤던 곳들… 바로 여기였을 것이라며 영화와 눈 앞에 펼쳐진 자연과의 마주침을 비교하고 있었던 것이다.

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