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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동해, 푸른 희망의 등대를 걸다

2007.08.09 00:59

박정순 조회 수:361 추천:53

동해, 푸른 희망의 등대를 걸다 박정순 새소리에 눈을 뜨니 4시 50분이었다.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세수를 하고 인스턴트커피 한잔으로 졸린 눈을 깨웠다. 새소리가 맑게 지저귀는 밖을 보니 아마도 오늘의 날씨는 화창할 것 같았다. 오늘로서 울릉도에서 보내는 역사 탐방의 마지막 날인지라 혼자만의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아침 산책을 나섰다. 일출을 보기 위해 바닷가에 닿는 순간, 잔잔한 새벽 바다였다. 풍랑으로 가지 못했던 독도를 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자 가슴이 떨리기 시작했다. 이른 새벽이라 울릉도의 비경인 산책로는 텅 비어 있었지만 먼 그림자처럼 나보다 먼저 산책로를 걷는 부부가 있어 나도 뒤 따라 가 보기로 했다. 시퍼렇게 출렁이는 깊은 물살을 보는 순간 두려움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내 발자국은 일행들과는 멀리 동 떨어진 곳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삶이 혼자서 걸어가야 하는 것처럼 이 새벽 사유의 깊이를 묵상하고 싶었던 것 또한 내 안에서 휘몰아치는 바람을 잠재우고 싶었던 것이다. 검푸른 빛깔로 포효하는 파도는 금방이라도 나를 삼켜버릴 것만 같았다. 새벽은 솟아 오른 태양과 함께 순식간에 주위가 밝아지고 등대로 가는 길에서 한동안 바다를 응시했다. 불빛을 끄지 않은 오징어 배가 섬과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도 어디 선가부터 어긋나기 시작한 거리감은 시간이 지날수록 가까워지는 이가 있는가 하면 좁혀지기보다는 멀어져 간 사람들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직장 동료와 학교 친구들 그리고 아이를 키우면서 고민을 털어 놓았던 학부모들.... 내 무관심과 소홀함으로 실타래 술술 풀어지듯이 그렇게 마음과 마음의 거리도 멀어져 버린 것이다. 진실은 언젠가 드러나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쓸쓸한 외로움 낼 수 있었다. 그러나 꽃잎처럼 너울대는 파도를 바라보면 밀려오고 밀려가다 소멸하는 끝없는 순환구조의 우주 앞에서 나의 이러한 생각들이 하잘것없이 느껴진다. 넓은 바다만큼 막막했던 일을 놓고 결정을 건네주는 순간 길은 또 다른 길로 이어질 것이다. 한때 삶을 이룬 사람들의 흔적은 폐허로 남아 있는 망루 터와 너와집…… 그 흔적을 보면서 순간의 이익에 급급하기 보다는 멀리 볼 수 있는 안목을 키우라고 파도는 말하는 것 같았다. 점심을 먹고 드디어 독도를 향해 출발했다. 설렘과 알 수 없는 흥분된 느낌을 안으로 삭이며 내 연민의 행간을 채울 단어들을 머릿속에서 떠 올렸다. ‘뱃길 따라 삼백 리…… ‘웅얼 웅얼 노랫말을 되새기다 잠시 잠이 들었다. 동행했던 미경씨는 멀미로 인해 많이 힘들어 했다. 그녀는 멀미로 힘들어 하면서도 독도를 가겠다는 열망 하나로 배에 오른 다부진 그녀의 열정은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드디어 실루엣처럼 독도가 보이고 우리들은 환호의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우리들의 흥분과는 달리 아쉽게도 거센 파도로 인해 우리들은 독도에 입도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바라볼 수 있었다는 것, 그것 하나만으로도 감사했다. 정말, 독도까지의 뱃길은 머릿속으로만 그려놓았던 단순한 여정이 아니었다. 맞아, 사랑! 쉽게 할 수 없는 것처럼, "사랑, 한 번의 만남으로 이루어질 수 없지요."최교수님과 신목사님은 입도하지 못한 애석한 마음을 그렇게 표현했다. 멀미를 잘 하지 않는 나조차 속이 울렁거렸다. 눈앞에서 바라만 보고 돌아와야 했던 안타까운 마음은 심한 뱃멀미로 나타난 것 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내 짝사랑의 실체를 확인한 순간, 이제 내 시의 모습도 새롭게 태어나야 할 것 같았다. 우리들에게 독도는 하나의 작은 섬의 의미보다 푸른 희망을 등댓불에 걸어두는 것과 같다. 제일먼저 동해의 일출을 바라보며 눈부신 햇살을 한민족에게 비춰주는 반사경처럼 반짝 반짝 빛나는 싱그러운 새벽을 여는 곳, 바로 우리들의 삶의 터전을 시작하는 곳인 것이다. 섬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단절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내게 있어 바다는 늘 그리움의 대상이었다. 어린 시절 바닷가에서 보낸 유년의 기억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산처럼 밀려오는 태풍이 지나고 나면 호수처럼 잔잔하게 빛나는 금빛바다가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그래서 나는 산보다는 바다가 좋았다. 그렇게 역동적인 바다의 가늠할 길 없는 깊이를 닮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상상으로만 그려왔던 독도를 만나고 돌아오는 뱃길에서 이 멀고 먼 외딴 곳에 있는 섬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넋을 생각했다. 그들에게 이곳은 나라를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는 그러한 거창한 애국정신이 아니더라도 바로 이곳은 우리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내 삶의 터전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 일어서서 민병대를 만들어 일본의 침략으로부터 지켜낼 수 있지 않았을까? 내가 살고 있는 곳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런 까닭으로 사랑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몸소 실천하므로 그 행위로 인한 책임까지 합하여 질 때서야 비로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한번 이곳을 다녀간 사람은 다시 올 수밖에 없다고 누군가 말을 했다. 만나면 헤어짐을 염려하듯이 헤어질 때도 만남을 기약하는 이별처럼, 그를 향한 내 사랑도 저 푸른 바다처럼 영원할 것이라고 감히, 그렇게 영원을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