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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순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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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늦은 깨달음

2008.07.18 08:56

박정순 조회 수:335 추천:32

늦은 깨달음 박정순(캐나다 쌩쌩 영어어학원장) 현대생활에서 방송은 우리 생활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내가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프로그램은 뉴스이거나 외화 정도다. 그러다 보니 연애인들의 이름을 아는 것은 더더욱 쉽지 않다. 지난해 모 설문지 기관에서 미혼 여성들에게 “한국에서 제일 결혼하고 싶어하는 MC로 추천되었다는 박수홍씨”. 그가 대학원 원우가 되어 있는 관계로 어떤 행사가 있을 때면 그를 오라고 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그의 유명세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기에 ‘방송 일을 하는 원우.’ 정도로 이해했다. 얼마 전 강의실에 도착하니 [박수홍씨의 웃음의 미학]이라는 강의가 있다고 했다. 나로서는 처음 만나는 원우인지라 인사를 나누며 예의상 던진 질문, “어느 방송사에서 일하세요?” 하고 물었다. 나의 이 우매한 질문은 그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고 고백했다. 아직도 자신을 모르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자신에게 어떤 계기를 마련한 셈이라고. 그의 말에 나도 충격을 먹었다. 자신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다는 것. 캐나다 쌩쌩 영어를 모른다는 그 자체가 충격이라고 할 만큼 나도 유명학원을 만들고 싶은 욕심 같은 것 말이다. 유학을 가지 않아도 유학을 간 것만큼 영어를 잘 할 수 있는 어학원. 그런 자부심을 갖지 못한 내 능력에 대한 강한 충격이었다. 한국 교육의 좋은점과 북미 교육과 프랑스 교육의 좋은 점을 접목하여 한국 사회에 환원하고자 했던 내 의도는 가끔 엉뚱한 사건들로 이어진다. 얼마 전리 유치부 프로그램에 가입한 꼬맹이들이 생각났다. 예전엔 미운 일곱 살이라고 했는데 요즘은 두세 살만 되면 미운 짓을 시작한다는 엄마들의 하소연을 자주 듣는다. 유치원생인 재용이와 재훈이는 정말 똑똑한 녀석들이었다. 쌍둥이 같은 이녀석들의 손을 잡고 나가면 사람들은 내 아이들인 줄 알고, “아이고 예쁘게 키우셨네요.” 그렇게 엉뚱한 칭찬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렇게 예쁘고 똑똑한 재용이가 가끔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신하게 될 때 내 고민은 시작됐다. 녀석은 하나를 가르쳐주면 10개를 깨우쳐 영재 프로그램으로 접근하기 위해 아이의 언어 습관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녀석의 언어 습관은 선생님에게 명령어를 사용하거나 자신의 의견이 전달이 안될 때는 욕설을 한다는 것이다. 선생님들이 전해주는 말을 들을 때 매 순간마다 아이들에게 화를 낼 수도 없는 상황이고 그렇다고 아이들이 아무것도 모르고 사용하는 말투대로 교사가 아이에게 끌려 다녀서는 안될 것 같아서 고민을 했다. 아이들은 부모의 말투를 흉내 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아빠가 엄마에게 사용하는 말투를 닮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조심스럽게 어머니께 물었다. 아이의 습관을 고쳐주는 것은 아이와 유치원과 부모님과의 네트웍이 우선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었다.(명령어를 습관을 고쳐주기 위해서) 내가 학원아이들에게 적응을 잘하지 못하는 제일 큰 문제는 언어다. 아이들이 사용하는 언어 폭력의 대부분은 욕을 영어로 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나는 여러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아이들에게 고급 영어, 고급스런 표현을 사용해야 하는 이유를 자연스럽게 설명해준다. 하지만 개구쟁이 녀석들은 잘 따라오는 듯 하다가도 수시로 엉뚱한 방향으로 달아난다. 지난 주 일요일 오후 혼자서 남한산성으로 산책을 나갔다. 숲을 따라 난 산책길에는 젊은 부부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걷고 있을 때 맞은 편에서 걸어오고 있는 어린 아이와 아빠의 웃음소리가 조용한 숲길을 환하게 흔들었다. 아빠가 아이에게 뭐라고 말을 했는지 아이는 대뜸, “됐거든” 하고 말했다. 그러자 아빠도 아이를 보며 “됐거든” 하고 응수를 하는 것이었다. 둘이서 깔깔대며 ‘됐거든. 됐거든’하는 모습을 보는 순간, 재용이가 나에게 “됐거든요” 했던 모습이 떠 올랐다. 순간 나는 망치로 맞은 것처럼 멍해졌다. 문화란 이런 것이다. 특히 언어란 그 생활 속으로 파고 들어갔을 때 이렇게 다른 것을…. 그 녀석은 내게 친밀감을 강조하기 위해 툭툭 던진 말을 난 심각하게 그 언어의 모양새를 놓고 고민했던 것이다. 그 녀석이 사용했던 ‘됐거든’ 이 말은 텔레비전 방송의 개그 프로그램 영향이었고 나는 그 말의 진원지를 알지 못했던 것이다. 한국문화에도 북미 문화에도 접목하지 못한 내 자신을 다시 한번 발견한 것이다. 나는 재용이가 수시로 사용하는 그 언어로 인해 고민에 고민을 더했던 것을 ……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내 가슴이 말하는 것에 더 자주 귀 기울였으리라. 더 즐겁게 살고, 덜 고민했으리라……” 라는 ‘킴벌리 커버거’의 싯귀가 떠올랐다. 조금만 더 마음을 열면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데… 기다려주지 못하고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고 돌아서는 것이다. 그때 알았더라면 내 아이들에게 더 너그러울 수 있었는데, 좀더 훌륭한 생각을 심어줄 수 있었는데 아쉬움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요즘 내가 어린 아이들을 보며 갖게 되는 마음처럼. 나는 재용이에게 “됐거든요.” 하고 그렇게 대꾸해 주지 못했음에 미안했다. 초롱한 녀석의 눈망울과 학원노래를 스스로 만들어, “CAEA 좋아요, 정말 좋아요. 영어 배워 좋아요, 재미 있어요. 아싸~ “하며 불러주던 모습이 나뭇잎에 반사되는 환한 햇살 같은 모습으로 달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