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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순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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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잘못 들어 선 길

2008.08.10 03:15

박정순 조회 수:371 추천:28

막내 녀석이 자원봉사 프로그램일종인 하나로 캠프에 갔다. 불어학교를 보낸 까닭에 이번 봉사 프로그램에는 불어로 하는 것이라고 한다. 아이는 혼자 떠나는 여행에 행복해 했고 나는 사춘기에 접어든 딸아이의 순백의 마음에 행여, 상처라도 입을까 노파심이 생겼다. 아이가 있는 곳의 주소를 물어서 떠나오기 전 얼굴을 보기 위해 캠핑장소를 찾아가기로 했다. 큰아이는 천하태평이다. 느린 걸음이 아름답다고? 울 아들의 느릿느릿한 달팽이 걸음, 나의 불같은 성격과는 판이하게 다른 요즘, "내 아들 맞어? 유전자 검사 다시 하자." 울 아들, "울 엄마 맞어?" "병원에서 바뀐것 아닐까?" 등등. 어쨌든 녀석이 길을 아는 것 같아서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말을 많이 하면 노인네 취급하는 아들녀석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가끔 가끔 오락가락... 노인증세까지 일으키는 엄마이기 때문이다. 치밀한 남편과는 달리 덜렁대는 나를 닮은 아들을 보면 마치 나를 보는 것같아 속을 끓이게 된다. 어느새 자동차의 방향은 하이웨이 401과 409의 갈림길에 가까워졌다. "겔프는 401 웨스트로 가야지." 했더니 아이는 하이웨이 409 방향으로 방향으로 차선을 옮겼다. "409(공항가는 길) 타서 QW(토론토 시내와 나이야가라 가는 길)타고 가면 1시간이면 도착해요." "그래?" 아무래도 틀린 노선인것 같지만 내 기억력을 의심하면서 한번 말을 하기 위해서 열번 심호흡. 교통체증에다 도로공사까지.... 토론토 경기의 활성화를 보는 것 같았다. '옥빌도 걸리고... 마켓가서 교구도 사야하고...마음은 지금 쌩쌩 돌아다니고 있지만 어쩔꺼나. 길에서 황금같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내 마음과는 달리 아들녀석은 휘파람까지 휘휘 불고 있다. 딸아이가 알려준 주소는 켈프시 지도에 나타나 있지도 않고 전화번호도 없고 불안한 마음은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데.. '오돌방정을 떨면서도 말을 아꼈다. 그러니까 아들이 겔프시로 생각한 것은 나이야가라 가는 길에 본, 겔프라인이라고 씌어 있는 길을 겔프시로 생각한 것이다. 겔프라인까지 가는데에만 2시간이 지났다. 동으로 가자고 하면 서로가는 청개구리 처럼 주유소에 들러서 기름도 넣고 지도도 사고 그러자고 했더니 들은척 만척.... 무슨 심통으로 앞만 보고 달리는지... 도시 분위기를 벗어난 길은 구비 구비 이어진 시골길처럼, 한적해지기 시작했다. 편도 2차선으로 겔프시까지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지만 어쩌면 이렇게 아름다운가? 넓은 초원에 어우러진 집들...몇 에이커가 될 듯 싶은 정원과 아름다운 집의 풍경에 내 분노는 사라지고 말았다. 그래 이런 실수가 아니면 어떻게 다시 이렇게 아름다운 곳을 지나가랴 맑은 하늘에 흰구름과 푸른 초원, 그러니 사람들이 풍요로울수밖에 없지 않는가? 생의 언덕에서 내려다 볼 때, 나도 저리 푸르게 푸르게 넓디 넓게 보듬으며 살아야 하지 않았겠느냐고 말하지 않을까? 나누는데 인색해 질 수 없는 너그러움이란 바로 이 넓은 대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물질의 풍요로움, 자연의 풍요로움, 그 축복이야 말로 함부로 가질 수 없고 또 풍요로운 자연속으로 내가 푸르게 물들지 않고서야 어찌 넉넉함을 생각할 수 있으랴. 겔프시에 도착하여 딸아이가 가르쳐 준 생. 엔드류라는 도로를 찾아보니 지도에는 생. 앤드류라는 도로가 없었다. 도로명으로 찾아보니 갤프시 보다 훨씬 북쪽에 위치한 휴지시에 생.앤드류 이스트라는 도로가 있었다.(어느 길 하나를 축으로 하여 동과 서로 나누고 남과 북으로 나눠서 도로명을 표시함) 아이가 일러준 생.앤드류 이스트에 도착하니 3시 30분이며 아이가 가르쳐준 번지에는 캠핑장소는 더더욱 아닌 훼밀리 닥터, 미장원, 그리고 커뮤니티 센터였다. 잔뜩 긴장한 불안한 마음을 감추고 프로그램 담당자와 전화를 했다. 규칙상 아이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은 6시였지만 수영장 청소가 끝나면 바로 나에게 전화를 해 주겠다고 했다. 큰아이랑 이런 저런 수다를 떨며 1시간을 보내고 아이가 뭘 하는지 보기 위해서 슬쩍 올라갔더니, 울 아이들 규칙 위반이라고 둘다 방방 뛴다. ''''' 이렇게 무식한 엄마가 되어 버린 하루였지만 너희들 아니? 아줌마는 용감하다고. 엄마는 용감해. 그래서 딸아이와 함께 내려온 선생님과 인사하고 아이를 위해 몇 가지 관심을 부탁하고서.... 낯선땅에 내려 놓고 오는 엄마의 마음은 그래서 더욱 미안하고 미안했다. 아름다운 곳을 지나며 행복해하는 엄마를 위해 또 돌아가기를 바라는 아들녀석의 고운 마음이 파아란 하늘에 흰구름처럼 떠 있었다. 생의 정답은 없지만 너희들로 인해 천국과 지옥으로 수시로 넘나드는 엄마로서 책임감 없이 또 이렇게 훌쩍 떠나와야 함의 미안함, 그러나 한가지만 목표를 향해서 바른 걸음 걸어가 달라고 염치없는 부탁까지 덧붙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