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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백년 찻집에서 천년 숨결을 느끼며

2009.02.08 09:02

박정순 조회 수:338 추천:34

추억의 길이다. 외갓집에 가던 길에 반해버린 풍경, 고 박정희대통령도 헬기를 타고 경주에서 감포가는 길의 아름다움을 훼손하지 말고 그대로 살리라고 하여 터널을 만들지 않았다고 하는 가네동재(추령재)에 위치한 백년 찻집에서 산새소리를 들었다. 그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는 곳에 아버지의 유해를 뿌려 드렸고(그렇게 해야 한다고 해서) 휴개소가 있던 곳에는 아름다움이 듬뿍 담긴 한옥, 찻집이라기에는 가당치 않을 것 같아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곳이었다. 주인은 누굴까? 작가? 도예? 미술? 소설가? 등등.... 내게 이러한 별장채같은 작업을실을 이 외진 곳에서 사용하라고 하면 낮에는 오케이. 그러나 밤은 아무래도 도망가야 할 것 같은 곳에 위치한 찻집이다. 어젯밤 10시 조금 넘어 경주에 도착하였다. 어두운 길을 더듬어 가면서 어느곳에서 하룻밤을 묵을까 이참에 대왕암까지 건너가서 새벽녁 해 돋이를 바라볼까? 아님 보문단지내 호텔을 갈까? 에스오 에스를 치고 사촌오빠네로 갈까? 선택을 하기 위해 길을 돌다 보니 힐톤 앞이었다 운전하느라 지친 탓으로 아침까지 편안하게 잠속으로 빠져든 뒤 새벽 해 돋이는 놓쳐 버렸다. 그럼에도 슬금 슬금 나선 길은 호젓하면서 운치가 있다. 급하게 달려가야 할 이유도 없고 이른 시간이라 시장에 들러 과일을 사지도 못한 채 그냥 막걸리 한병만 달랑 슈퍼마켓에서 샀다. 간밤의 꿈엔 아버지를 봤다. 아마도 나 오기를 기다리셨는지도 모르겠다. 산새소리에 깊은 계곡에 마음을 빼앗기며 여유있게 올라간 추령재 찻집을 노크한 것이다.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차를 다리는 청년은(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름) 11시에 문을 연다고 밖에서 기다리란다. 해발 310m. 저 멀리 동해바다가 가물거리는 곳, 아버지는 이곳에서 시도 읊어시고 그리고 친구들과 장기도 두시고 그러실 것 같다. 딱 아버지가 노시는, 좋아하시는 풍경이다. 식구들끼리 아버지는 정말 멋진 한량이다고 말하면서 웃지만.... 주인 이양모 사장님은 서울에서 온 내 차의 보고, 차를 다리는 이에게 음악을 틀라고 했다. 그리고 좀 더 일찍 문을 열으라고 시킨 탓에, 아~~~~~~ 음악이 한동안 시간을 빼앗아버릴 것 같았다. 백년 찻집에서 이생진 시인의 성산포의 시가 흘러 나왔다. 산에 와서 바다의 시를 듣다니... 바다에 술에 취하는 노시인을 생각하면서 나는 지금 산해에 취하고 음악과 찻집의 고즈녁한 아름다움 그리고 우리것들을 너무나 잘 조화시킨 멋에 취해 있었다. 추억이 있다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구절양장 굽은길의 연속인 이 길의 아름다움.... 보이는 건 산과 나무, 풀, 그리고 이름모를 꽃뿐인것을.... 숲터널을 지나는 것 같은 길에서 오래토록 앉아서 편지를 쓰고 싶었다. 그러나 오늘은 양가집 산소를 모두 다니기로 마음 먹었으니 감상에 코 빠뜨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천천히 달리면서 신선한 공기에 온 마음을 맡기며 이 드라이브 코스 주변에는 신라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많다. 고개 넘어 좌회전해 함월산 쪽으로 들어가면 기림사와 골굴암이 있고, 반대편 토함산 쪽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장항리 폐사지의 고즈넉한 정취가 나온다. 똑바로 가면 감포바다다. 내 문학의 보고인 경주. 시상이 떠오르지 않으면, 뭔가 생각을 정리해야 할 때가 있으면 나는 경주를 간다. 경주 불국사에서 천년 숨결을 느끼며 천년전의 그 깊고 깊었던 사랑들을 만질 수 있는 곳, 내 사랑도 그러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