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고 싶은 날

2003.01.29 08:00

꽃미 조회 수:239 추천:27

지난 크리마스 무렵 우리 옆집 새댁이 아기를 낳았어요.
벌써부터 초음파 검사로 아들인 것을 알았다며 좋아라 하던 새댁은 처녀 때 농구선수였답니다.
나는 마치 오래 묵은 어른처럼 삼칠일을 지키마고 말해놓고 새 애기가 어찌 생겼는지 궁금했습니다.
내 딴엔 신생아의 면역성과 산모의 피곤함을 배려한다며 21일 동안 침묵했지요.
드디어 그 긴 21일이 지나고 하기스 한 꾸러미와 장미 한 송이를 사들고 옆집으로 갔어요.
우-아! 정말 조그맣고 예쁜 아기,
내 아이도 저렇고 작고 예뻤었나 싶고, 나도 저렇게 신기하게 오물거렸나 싶고….
생명의 신비에 하마터면 눈물이 날 뻔했답니다.

그리고 어제 다시 아기를 보러 갔어요.
이제는 스타일 다 구긴 농구선수 엄마가 퉁퉁 불은 젖을 내놓고 아기에게 먹이고 있더군요.
그 사이 또 몰라보게 자란 아기는 젖을 빨다가 배내짓인지 싱긋 한번 미소를 짓더군요.
그 순간 처음보다 더 진하게 느껴지던 생명의 오묘함.

문득 내가 이미 가임기가 지난 여성이란 것이 생각났어요.
생물학적으론 아직 가임기가 끝나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사회적으론 분명 난 폐물여성.
그런데 그것이 불과 얼마전까지는 사회적으로도 하자가 없었다는 생각에 정말 짧은 인생을 실감했습니다.

아이를 키울 때는 절대로 멋을 내지 않았습니다.
아기볼에 스킨쉽을 하기 위해 분도 바르지 않았고, 라면머리에 허리가 굵어져도 행복하기만 했던 기억…
여성의 이름 중에 가장 행복한 이름은 아내도 작가도 그 무엇도 아닌 ‘엄마’가 아닐까.
나 문득 행복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이제 난 이런 아기 다시 못낳겠네
무심히 중얼거린 내 말에 아기 엄마 새댁왈
아이구! 5년만 기다리시면 손주 보실텐데요!

정말 인생은 짧은 건가요. 빠른 건가요.
‘엄마’란 이름 그거 참 좋은 거예요.
그대가 조주용 군의 우주인 지금 그 행복 만끽하세요.
지금 나는 내 아이의 부분, 앞으로는 거추장스런 폐품될지도 모르는 일…

행복하고 싶은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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