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행복하고 싶은 날

2003.01.29 09:02

혜령 조회 수:266 추천:19

지난 일요일 주용일 데리고 미장원에 갔어요. 석달에 한번씩 머리 자를 때마다 사생결단 울고불고... 우리 모자가 둘 다 뻘겋게 달아서 땀과 눈물과 머리카락 범벅이 되는 무시무시한 일이기에 미루고 미루다가 남편을 앞세우고 갔지요. 애꿎은 남편부터 본보기로 머리를 자르게 하고 주용에게는 가위질 하는 시늉을 내 딴엔 갖은 아양을 섞어 해보이며 마음의 준비를 시켰지요. 그러고도 당연히 내가 끌어안고 잘라야 하는 줄 알고 가운을 입었지요. 그런데 이게 웬일, 주용은 생글생글 웃으며 시키는 대로 누워서 머리를 감더니, 의젓이 혼자 앉아 수건을 두르고 머리를 자르는 거예요. 상기된 얼굴로 거울 속의 제 모습을 조금은 쑥스러운 듯 바라보면서 말이지요. 순간 내 눈에 눈물이 핑 돌았지요. 대견하기도 하고, 끌어안으려고 긴장했던 두 팔이 허전하기도 하고. 그렇게 아이도 시간도 조금씩 내 품을 빠져나가겠지요.
나는 늘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영원히 행복할 수 없다>는 말을 기억하려고 해요. 그래도 가끔은 처녀 시절, 내 일에 맘껏 열중할 수 있었던 시간들이 무섭게 그리울 때가 있어요. 그때는 퇴근 후면 온통 읽고 쓸 수 있는 내 시간이었는데도 시간이 없다고 불평이 많았지요. 지금은 그런 불평을 늘어놓을 틈도 없이 바쁘지만 세월이 조금 더 지나면 지금 이 순간을 무섭게 그리워 하겠지요. 이 미친듯이 달려가는 세월의 흐름 속에서 문득 눈물없는(?) 주용의 역사적 이발광경을 그리며 무언가 끌어안을 것, 그 순간의 행복을 찾아 두리번거리겠지요. 그때 거울 속에서 나는 어떤 모습을 만날까요? 조금은 쑥스러운 얼굴일지라도 자신을 힘껏 안을 수 있는 여자였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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