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1)

2003.01.08 02:40

김혜령 조회 수:414 추천:84

텅 빈 사막에
뱀 한 마리
기어가고 있다.

아니 그건
뱀이 아니라 허물,
허물이 아니라 부서진 글자,
글자가 아니라 다만
백지를 헤집으려는
마음이었는지 모른다.

아니 아니, 그저
지나가던 바람이 만든
모래무늬였는지 모른다.

뜨거운 모래 속의 허우적거림과
그 동작 속에 갇힌 팔다리와
팔다리 속에 갇힌 마음까지를 모두
하얗게 지워버리는

그저 스쳐 가는 시간의
밋밋한 숨결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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