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잇길

2003.03.05 06:13

김혜령 조회 수:339 추천:59

오래 그 길을 가지 못했다.
시간의 두꺼운 껍질 한복판에
균열처럼 가늘게 그어진 길
누군가의 유년에선 듯
끄덕끄덕 소가 내려오던 길

그 길목 어디쯤 나뭇잎 사이로
낡은 기억마냥
귀퉁이 부서진 나무팻말이 붙어 있었다.
'니에트로 앤 선스'

봄이면 파랗게 깨어나는 나무들 사이로
여름이면 술렁이는 잎새들의 날갯짓 너머로
가을이면 꿈을 떨구는 숲 속으로
나는 무엇을 찾고 있었다.

한번도 만난 일 없는,
어쩌면 이 세상에 없을 니에트로나
그 아들, 또는 그 아들의 어깨에
활활 타오르는 노을이었을까.
무엇을 말할 듯 벙긋거리는 입. 아니면 그냥
마모된 꿈처럼 둥근 시선이었을까.

다시 그 길을 생각하는 지금
저승같이 고요한 겨울을 지나
또 한 마리 소가 내려온다.

누군가의 유년에선 듯
우물우물 세월을 되씹으며
끄덕끄덕 고개를 흔들며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71 대화 김혜령 2003.03.28 315
70 벼룩과 과학자 김혜령 2003.01.29 329
» 사잇길 김혜령 2003.03.05 339
68 새벽 김혜령 2003.04.14 343
67 줄 위에서 김혜령 2003.01.29 345
66 비의 음계 김혜령 2003.04.14 346
65 봄꽃 질 때 김혜령 2003.04.14 350
64 공사장을 지나며 김혜령 2003.01.29 351
63 산다는 것은 김혜령 2003.04.14 351
62 산보하는 개 김혜령 2003.04.14 353
61 Imaginary Friends 김혜령 2003.04.15 364
60 우산 김혜령 2003.03.28 365
59 편지(2) 김혜령 2003.01.08 369
58 약도 김혜령 2003.01.08 411
57 편지(1) 김혜령 2003.01.08 414
56 김혜령 2003.04.16 459
55 음계연습 김혜령 2003.03.28 462
54 피로 김혜령 2003.04.22 468
53 나비가 지나는 교차로 김혜령 2003.01.03 489
52 오후의 소묘 김혜령 2003.03.28 494

회원:
1
새 글:
0
등록일:
2015.06.19

오늘:
0
어제:
0
전체:
22,5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