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계연습
2003.03.28 02:46
구부러진 골목길 보이지 않는 창안에서
누군가 우울한 반음계를 타고 있다
두 손의 어눌한 합창이
억새풀 휘청이는 붓에 묻어
회색 하늘에 비틀린 산이 솟고 무너진다
보통빠르기로, 조금 느리게, 느리게
왼손은 오른손보다
삼십이분의 일 박자, 십육분의 일 박자....
자꾸만 느려지기에 바람은
둔하고 낮은 음을 질질 끌며 힘겹게
힘겹게 고개를 젓는다
가끔 이 고단한 소리 앞에서
껄껄 웃어 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허기진 속이 다 보이도록
뻐근한 뼈들을 헐겁게 열어 젖히고
음표와 상관없이 하늘을 두드려
깃털을 뿌리듯 음계를 마구 흐트리며
그러면 거꾸로 바로
시간의 줄에 걸리는 별이 있을지
더러는 늘어진 줄 사이를 빠져
아득한 우주로 달아나는 날개도 있을 것이다
하루의 연습이 끝나고
날랜 오른손이 그림자를 버리고 떠난 자리
바람벽에 어둠으로 남은 사람은
느리게, 아주 느리게, 멈춰 선 듯이....
아직도 미진한 음을 찾아
더듬거리는 왼손의 손금에 매달려 있다
누군가 우울한 반음계를 타고 있다
두 손의 어눌한 합창이
억새풀 휘청이는 붓에 묻어
회색 하늘에 비틀린 산이 솟고 무너진다
보통빠르기로, 조금 느리게, 느리게
왼손은 오른손보다
삼십이분의 일 박자, 십육분의 일 박자....
자꾸만 느려지기에 바람은
둔하고 낮은 음을 질질 끌며 힘겹게
힘겹게 고개를 젓는다
가끔 이 고단한 소리 앞에서
껄껄 웃어 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허기진 속이 다 보이도록
뻐근한 뼈들을 헐겁게 열어 젖히고
음표와 상관없이 하늘을 두드려
깃털을 뿌리듯 음계를 마구 흐트리며
그러면 거꾸로 바로
시간의 줄에 걸리는 별이 있을지
더러는 늘어진 줄 사이를 빠져
아득한 우주로 달아나는 날개도 있을 것이다
하루의 연습이 끝나고
날랜 오른손이 그림자를 버리고 떠난 자리
바람벽에 어둠으로 남은 사람은
느리게, 아주 느리게, 멈춰 선 듯이....
아직도 미진한 음을 찾아
더듬거리는 왼손의 손금에 매달려 있다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71 | 대화 | 김혜령 | 2003.03.28 | 315 |
70 | 벼룩과 과학자 | 김혜령 | 2003.01.29 | 329 |
69 | 사잇길 | 김혜령 | 2003.03.05 | 339 |
68 | 새벽 | 김혜령 | 2003.04.14 | 343 |
67 | 줄 위에서 | 김혜령 | 2003.01.29 | 345 |
66 | 비의 음계 | 김혜령 | 2003.04.14 | 346 |
65 | 봄꽃 질 때 | 김혜령 | 2003.04.14 | 350 |
64 | 공사장을 지나며 | 김혜령 | 2003.01.29 | 351 |
63 | 산다는 것은 | 김혜령 | 2003.04.14 | 351 |
62 | 산보하는 개 | 김혜령 | 2003.04.14 | 353 |
61 | Imaginary Friends | 김혜령 | 2003.04.15 | 364 |
60 | 우산 | 김혜령 | 2003.03.28 | 365 |
59 | 편지(2) | 김혜령 | 2003.01.08 | 369 |
58 | 약도 | 김혜령 | 2003.01.08 | 411 |
57 | 편지(1) | 김혜령 | 2003.01.08 | 414 |
56 | 창 | 김혜령 | 2003.04.16 | 459 |
» | 음계연습 | 김혜령 | 2003.03.28 | 462 |
54 | 피로 | 김혜령 | 2003.04.22 | 468 |
53 | 나비가 지나는 교차로 | 김혜령 | 2003.01.03 | 489 |
52 | 오후의 소묘 | 김혜령 | 2003.03.28 | 49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