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것은
2003.04.14 06:10
냉장고 안에서 뭉그러져 가는 콩알들의 몸 비빔과
선반을 타고 내리는 진득한 복숭아의 혈흔을
가슴에 담아 두는 것.
산다는 건 그런 건지 몰라.
스러지고, 부서지고, 사라지는 것들의
비릿한 슬픔과
그 슬픔 뒤의 은밀한 기쁨까지도
'서늘한 곳에 보관'해 두는 것.
눈감고 찬장구석의 멥쌀가루와 찹쌀가루, 고춧가루 봉지들을 헤아리다가
때로는 문득 미숫가루 봉지에 뚫린 삼각형 구멍이 눈에 보이고
그 속으로, 그 보드랍고 순한 입자들 속으로
기어들고픈 충동
그 엿 같고 벌레 같은 그리움을
새파란 가스 불에 지져내는 것.
산다는 건 그런 건지 몰라.
산다는 건 그냥
그런 건지 몰라.
선반을 타고 내리는 진득한 복숭아의 혈흔을
가슴에 담아 두는 것.
산다는 건 그런 건지 몰라.
스러지고, 부서지고, 사라지는 것들의
비릿한 슬픔과
그 슬픔 뒤의 은밀한 기쁨까지도
'서늘한 곳에 보관'해 두는 것.
눈감고 찬장구석의 멥쌀가루와 찹쌀가루, 고춧가루 봉지들을 헤아리다가
때로는 문득 미숫가루 봉지에 뚫린 삼각형 구멍이 눈에 보이고
그 속으로, 그 보드랍고 순한 입자들 속으로
기어들고픈 충동
그 엿 같고 벌레 같은 그리움을
새파란 가스 불에 지져내는 것.
산다는 건 그런 건지 몰라.
산다는 건 그냥
그런 건지 몰라.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71 | 대화 | 김혜령 | 2003.03.28 | 315 |
70 | 벼룩과 과학자 | 김혜령 | 2003.01.29 | 329 |
69 | 사잇길 | 김혜령 | 2003.03.05 | 339 |
68 | 새벽 | 김혜령 | 2003.04.14 | 343 |
67 | 줄 위에서 | 김혜령 | 2003.01.29 | 345 |
66 | 비의 음계 | 김혜령 | 2003.04.14 | 346 |
65 | 봄꽃 질 때 | 김혜령 | 2003.04.14 | 350 |
64 | 공사장을 지나며 | 김혜령 | 2003.01.29 | 351 |
» | 산다는 것은 | 김혜령 | 2003.04.14 | 351 |
62 | 산보하는 개 | 김혜령 | 2003.04.14 | 353 |
61 | Imaginary Friends | 김혜령 | 2003.04.15 | 364 |
60 | 우산 | 김혜령 | 2003.03.28 | 365 |
59 | 편지(2) | 김혜령 | 2003.01.08 | 369 |
58 | 약도 | 김혜령 | 2003.01.08 | 411 |
57 | 편지(1) | 김혜령 | 2003.01.08 | 414 |
56 | 창 | 김혜령 | 2003.04.16 | 459 |
55 | 음계연습 | 김혜령 | 2003.03.28 | 462 |
54 | 피로 | 김혜령 | 2003.04.22 | 468 |
53 | 나비가 지나는 교차로 | 김혜령 | 2003.01.03 | 489 |
52 | 오후의 소묘 | 김혜령 | 2003.03.28 | 49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