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보하는 개

2003.04.14 06:23

김혜령 조회 수:353 추천:51

산보하는 개를 한 마리 보았다.
하얀 바탕에 순한 점들이 잉크처럼 번진 개가
무언가를 생각하며 가고 있었다.
기억과 상상은 한 줄기라서
둥근 목걸이의 줄은 주인에게 잡혔으나
걸음 사이로 풀려 사라지는 구름을
킁킁 좇으며 개는
목걸이보다 커단 고리 속을 걷고 있었다.

나는 또 갇힌 개를 한 마리 보았다.
아슬아슬한 담벼락 위를 걷다가
아차 좁은 담벼락 사이에 떨어진 개는
온몸의 털을 세우고 더듬거렸다.
먼지 쓴 유리알 눈으로
끊어진 세상의 줄기를 찾아
메마른 목청을 퍼 올리고 있었다.

플라타너스가 줄지어 지나고
그림자가 풀려 번지는 하얀 길에서
내가 내 손에 펜과 함께 잡혀서
물끄러미 그걸
바라보고 있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71 대화 김혜령 2003.03.28 315
70 벼룩과 과학자 김혜령 2003.01.29 329
69 사잇길 김혜령 2003.03.05 339
68 새벽 김혜령 2003.04.14 343
67 줄 위에서 김혜령 2003.01.29 345
66 비의 음계 김혜령 2003.04.14 346
65 봄꽃 질 때 김혜령 2003.04.14 350
64 공사장을 지나며 김혜령 2003.01.29 351
63 산다는 것은 김혜령 2003.04.14 351
» 산보하는 개 김혜령 2003.04.14 353
61 Imaginary Friends 김혜령 2003.04.15 364
60 우산 김혜령 2003.03.28 365
59 편지(2) 김혜령 2003.01.08 369
58 약도 김혜령 2003.01.08 411
57 편지(1) 김혜령 2003.01.08 414
56 김혜령 2003.04.16 459
55 음계연습 김혜령 2003.03.28 462
54 피로 김혜령 2003.04.22 468
53 나비가 지나는 교차로 김혜령 2003.01.03 489
52 오후의 소묘 김혜령 2003.03.28 494

회원:
1
새 글:
0
등록일:
2015.06.19

오늘:
0
어제:
0
전체:
22,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