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마당

2004.03.16 07:31

김혜령 조회 수:562 추천:87

<1>
멀리서 공부하는 딸에게-
올해도 목련과 철쭉이 탐스레 피었노라
장미와 백합이 송이송이 문을 여노라

시작부터 끝까지 벙긋벙긋
꽃들이 흐드러진 항공서간을 닫으며,
아, 철없이 행복한 아버지!
스무 살 딸은 고개를 흔들었다.

시험과 진학과 취업과....
딸의 세상은 열어야 할
무거운 문으로 가득했기에

아버지가 열어주는 향기로운 창문을 닫고
때묻은 교과서를 펼쳤다.
무슨 과 무슨 속 무슨 종
낯선 짐승과 벌레와 이상스런 식물들
열쇠가 되기엔 미심쩍은 이름들을
우격다짐 꺾어들고 세상의 문을 찾아 나섰다.

<2>
얼굴이 되비치는 검은 묘비에
마흔고개 넘은 딸이
꺾어온 꽃을 내려 놓는다.

이름을 외지 못한 꽃,
과도 종도 잊은 새소리

드는 문 나는 문이 헐겁게 열려
흐린 얼굴이 나부끼는 푸른 공간 속

두고 간 마당의 라일락과 등꽃이 벙글었노라
옥잠화와 행설란도, 백팔 송이 목단도 문을 여노라
아, 철없이 행복한 아버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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