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바닥은
2008.03.18 04:26
강바닥은 고요했다.
아침 노을에 얼굴 붉히던 하늘이 푸르게 솟아
가지고 놀던 양떼며 깃털을 던지는 것을
말없이 받아 안았다.
강 언저리 풀숲에서 깨어난 어린 버러지들을 태우고
강물이 조잘조잘 흘러갈 때
햇빛을 싣고 가던 나뭇잎이 뒤척였다.
풀숲에서 강물에서
버러지와 버러지가 싸우고
버러지를 잡는 개구리와 물고기를
새들이 채갔다.
사나운 빗줄기가 강물을 찌르고 구멍을 뚫어도
신음하는 물살에게 제 살을 떼어 주었을 뿐
강바닥은 아쉬워하지도 슬퍼하지도 않았다.
물에 잠긴 하늘의 보랏빛 얼굴을 어루만지며
누군가의 노래가 굽이쳐 흘러갈 때도
강바닥은 제 품을 조이지도 늦추지도 않는
적요한 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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