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숍의 자연>
                                                                     김인자

   전부터 오웬스 벨리에 있는 비숍의 아름다운 단풍에 대해서 많이 들어왔다. 요즈음 비숍에 있는 여러 호수에서 송어낚시도 한창이라고 한다. 오랜만에 자동차 여행을 하기로 했다. 우리는 차를 정비하고, 카메라와 겨울 쟈켓을 꺼내들고 아침 8시에 집을 떠났다.

   이렇게 자연을 가까이 접할 수 있는 것이 몇 년만 인가! 36년 전 미국에 온 후 엘에이 북쪽에 있는 소도시인 라 캐나다에서 살았는데, 넓은 뒤뜰에 장미꽃밭과 전나무 등이 우거진 자연 속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살았는데도 정작 나는 자연을 느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가족의 건강을 챙기고, 집의 월부금에, 아이들의 학비와 또 경영하는 사업에서 잠시도 틈을 찾지 못하는 톱니처럼 돌아가는 세월이었다. 마음도 기계처럼 단단해져서 감정의 굴곡이 무딘 시멘트 길을 오직 내 앞의 책임에만 매달려 지내왔는데, 은퇴한 후로 시간에 자유로워져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비숍(bishop)은 엘에이에서 275마일 떨어져있어 차로 5시간의 거리다. 5번 후리웨이에서 14번으로 들어가서 팜데일과 란카스타를 지나니 허허벌판 모하비 사막이 나온다. 물기가 없는 사막기후에도 생존하느라 나무들이 땅바닥에 엎디어 자란다. 멀리 지평선 끝으로 높고 낮은 산들이 이중 삼중으로 겹쳐져 있고 그 뒤로 보이는 시에라 산맥의 봉우리엔(13000 ft) 아직도 잔 설이 쌓여있다. 길옆으로 펼쳐있는 낮은 구릉에는 겨울비로 솟아났던 풀들이 타는 햇볕에 메말라 황금빛 카펫처럼 깔려있다.

   황금빛 죽은 풀들 사이로 사막의 모래 능선이 맥을 놓은 듯 정지되어있고, 그 광활한 모래바닥에 바짝 마른 나무넝쿨들이 듬성듬성 서서 바람에 굴렁쇠 마냥 흔들리고 있다. 생명이 없는 그들은 바람에 굴러다니다 어느 곳에서 물웅덩이를 만나게 되면, 죽었던 가지에서 생명의 숨통이 트이고 뿌리가 돋아나 땅속 깊이 몇 메타씩 물기 있는 곳까지 뿌리를 내려 사막의 나그네로 재생하게된다는 것이다. 삶이란 넓이만이 아니고 깊이라고 엉성한 넝쿨이 소리치는 것 같다. 그들의 디아스포라 삶과 비장한 생존의 심지가 마치 척박한 이민생활처럼 느껴져 동병상련으로 가슴에 파고든다.

    Route 395로 접어드니 비숍까지 110마일 남았다는 이정표가 서있다. 삭막한 모하비 사막과 죠수아 나무, 그 곳에도 삶이, 생명이, 자연의 순환이 숨쉬고 있다. 4차선이 2차선으로 바뀌고 비숍으로 가는 길은 오직 좁은 이길 뿐이다.

   "...그러나 내게는 지켜야할 약속이 있고, 자기 전에 가야할 먼 길이 있다, 자기 전에 가야할 먼 길이 있다" 프루스트의 시가 가슴속에서 맴돌며, 옆에 있어준다는 것, 뿌리가 되어준다는 것, 이민 1세의 길이 무겁게 되새겨진다.

   Subway에서 점심요기를 한 후, In-N-Out 의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시내에서 비숍크릭으로 가는 루트 168번으로 들어갔다. 계속 산으로 올라가니 해발 8000 Ft라는 표지판이 나온다. 일방 통행로같은 비포장도로의 오른쪽 길로 접어들어 North Lake으로 향했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가는 좁은 산길은 왼편은 가파른 산이고 오른 편은 저 밑 골짜기까지 낭떠러지여서 천천히 기어가는데 앞길에서 불숙 차가 나온다. 어찌할 줄 몰라 당황하는데, 그 쪽에서 길 뒤의 전망대로 천천히 후진해서 나더러 먼저 지나가라 손짓한다. "조금만 더가면 편편한 길이 나오죠. 너무나 아름다워요." 그녀의 얼굴이 감격으로 물들어 있다.

    온통 단풍든 산길은 양편으로 황금색의 사시나무가 터널을 이루고 단풍잎이 미풍에 문풍지 같이 떨며 햇빛을 반사하고 있다. 푸른 하늘은 노란색으로 덮여있고 바로 밑 호수 속엔 지상의 풍경을 물에 담은 한 폭의 명화가 숨이 멈출 듯이 불타고 있다. 촘촘하게 모여서있는 사시나무의 숲 속에서, 찬란한 자연 속에서 내가 이방인이 아닌 주인으로, 인간의 길을 자연과 함께 가고있음을 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