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선

2007.06.25 22:59

구자애 조회 수:450 추천:44

겁 없이 돛을 달고
태평양 건너 표류한 사내는
정어리 대신 값싼 햄버거 먹으며
아파트 2층에 닻을 내리고
정박한 지 서너 해 째다
물살 다독이며 고래 낚는 법
이제 겨우 익혔을 뿐인데
오늘 아침 혈압 오른 삶이
통째로 혈맥을 막아버렸다

선장 잃은 갑판 위로
울부짖는 여린 파도 소리
진종일 철썩이는 사나운 곡소리가
한 때 만선이었을 때처럼
쉴새없이 튀어 오른다
사내가 평생 껴입었던 바람이
한 겹 두 겹 벗겨져
뚫린 희망 속으로 치솟고
무거워진 뱃머리 균형 잃은 채
연실 기우뚱 댄다

끝까지
움켜쥐고 싶었던 바다와
순간 놓아버린 세상이
스르르 녹아버리는
한줌도 안 되는 포말이었다니,
방향 틀지 않는 사내
더 이상 돛을 달지 않는다
거스러진파도의 곡선 위로
아슬아슬 피해 가는
또 한 척의 배, 위태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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