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내기 5.

2010.01.05 16:52

구자애 조회 수:601 추천:55

꼬깃꼬깃한 달러로 값을 치룬
식료품들이 계산대를 빠져 나오자
통로 한 켠에 수도 없이 개키고 펴졌을
날근날근한 보자기 위로 하나 둘 옮겨진다
2파운드에 99센트 하는 열무 서 너단
3파운드에 99센트 하는 달착지근한 감,부추. 호박, 강정...
양쪽 귀퉁이 나눠쥐고 굽은 등 펴질 사이 없이 쭈그리고 앉아
일주일치 양식을 오물오물 헤아리는 중이다
기억이 느슨해져 행여 빠뜨리지나 않을까
비어져 나온 열무 이파리 마저 집어넣고
당기고 밀고하는 사이 노부부의 빠진 잇속같이
헐렁해진 보자기가 금세 부풀어 오른다
자식따라 혹은 자식 위해
말도 통하지 않는 이 나라에서 습득한 방식이란
힘 닿는 데 까지 허리 졸라매는 일
서로의 끈 놓칠세라
가끔은 우격다짐으로 잡아 당겨도 보고
모른 척 느슨하게 풀어도 주고
봉지봉지 들어있던 식료품들이 자식인 양
보자기 속으로 안전하게 들어갈 수 있도록
어느 놈 하나 갓 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다독거리는 일
이젠 이력이 난 듯 해도.

옹쳐맨 보따리 나눠 쥐고 어느 쪽도 무게 실리지 않게
는적는적 걸어가는 바랜 시간들이 더 이상 흔들릴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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