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티나무 성전

2010.06.11 00:43

구자애 조회 수:623 추천:64

그믐밤이었던 것 같습니다
마음 한자락 뉠 곳 찾아 헤매었던 것 같습니다
칠흑같은 어둠이 집요하게 나를 억누르고 있었던 것도 같습니다
숨을 몰아 쉬어야 할 것 같아 고개를 드는데
어딘가에서 아스라이 한 줄기 빛이 나를 자꾸만 끌어 당겼습니다
그 산중에 집이 있다는 것이
누군가가 빛을 발하고 있다는 것이 기이해서
무서움도 외로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막무가내로 어둠을 쳐내며 걸었던 것 같습니다
뭔가에 홀린 듯 넋나간 발이 가다 멈춘 곳은
인간의 집이 아닌 아름드리 느티나무 앞이었습니다
나무도 오래살다 보니 환기통 하나 정도는 필요했던가 봅니다
엉치뼈 쯤에 큼지막한 구멍하나 만들어 성전을 들여놓고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정성으로 깨진 보시기에 오롯이 담겨진 촛불이
그 구멍속에서 나를 불러들였던 것이었습니다
한때는 나보다 더 캄캄했을 뿌리가
몸 한 쪽 귀퉁이 도려내고
그 빈자리로 빛을 들여
눈뜨고도 보지못하는 나를 길에 세우셨습니다
너무도 거룩한 기도를 보는 순간, 나는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순간을 통채로 갈아엎게 만든 다마스커스,
그 극진한 빛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우는 일 밖에 없었습니다
그냥 소리내어 우는 일 밖엔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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