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이한 마도로스

2004.09.11 04:11

정찬열 조회 수:771 추천:13

                          
                                                        
  필자가 살고있는 오렌지카운티는 인구 250만 정도의 L.A와 인접해있는 지역이다. 한국인은 15만 정도 거주하고 있고 베트남인도 약 20만이 살고 있다. 한인상가는 가든그로브시에 밀집되어있고 베트남인 중심부는 바로 지척인 웨스트민스터시에 있다. 베트남인과 한인이 이웃을 이루어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이곳 베트남인은 대부분 나라가 패망하면서 미국으로 빠져나온 사람들이다.
  그런데 며칠 전, 베트남인 동네에서 큰 잔치가 벌어졌다. 전 미국에 거주하는 베트남 커뮤니티가 힘을 합해 한국인 전재용씨 가족을 환영하는 대대적인 행사였다.
전재용, 그는 선장이었다. 참치잡이 원양어선인 '광명 87호' 선장이었던 전씨는 1985년 11월 14일 싱가포를 떠나 부산항으로 가고 있었다. 남중국해를 운항하던 중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한 목선 위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살려달라"며 사투를 벌이고 있는 사람 10여명을 발견했다.
한 눈에 보아도 베트남 난민보트였다. 회사에서 난민보트는 '무시하라'는 지시를 받고 출발한 터였지만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구하자, 책임은 내가진다"고 결심한 그는 곧바로 구조에 착수했다. 그러나 배에 옮겨 탄 전씨와 선원들은 아연실색했다. 처음 10여명에 불과해 보였던 난민들이 보트 밑창에서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탈진한 임산부와 어른, 아이 등 도합 96명이나 되었다. 먹을 물조차 바닥이 난 상태였다.  
   이들을 구조한 전씨가 상황을 본사에 전하자 "어떻게 하려고 구조했느냐"고 질책했다. 이에 전씨는 "내가 책임지겠다. 여기서 내리게 할 수도 없으니 부산까지 가겠다"고 버텼다.
  열흘 뒤 배는 부산에 도착했다. 전씨는 당시 안기부를 비롯한 정보기관의 조사를 받아야 했다. 그 일로 전씨는 회사를 그만 두게 됐다. 난민들은 부산 해운대 부근 적십자사 난민촌 캠프로 옮겨진 뒤 각자의 희망에 따라 미국과 프랑스 등지로 뿔뿔이 흩어졌다.  
  전씨와 난민들 사이의 질긴 인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전씨의 은혜를 잊지 못하던 당시 난민 대표였던 누엔(60살. 오렌지카운티거주)이 최근 한국인을 통해 전씨의 연락처를 알아냈다. 그가 전씨의 가족을 미국으로 초청했다.
  이 소식은 리틀사이공을 비롯한 뉴욕과 워싱턴 시카고 등 미 전역의 베트남 커뮤니티를 들썩이게 했다. 한국계 언론을 비롯한 미 주류방송사인 ABC, NBC, CBS 등을 통해 순식간에 미 전역으로 전파되었다.
  베트남인들은 전씨의 인도적 행동을 전 세계에 알리겠다며 리틀사이공이 생긴 이래 최대의 환영 준비위원회를 만들었다. 웨스트민스터시의 마지 라이스 시장과 가든그로브시의 부르스 부로드워터 시장은 전 선장에게 행운의 열쇠를 전달했다. 미 의회 관계자와 한인 및 베트남 커뮤니티에서 국제적인 난미구호. 원조에 기여한 사람이나 단체에게 수여하는 난센상 추천을 하자는 움직임도 일고있다.
  환영식 날. 미국에 온 전 선장은 겸손했다. "망망대해에서 '살려달라' 절규하는 사람을 외면할 선장은 없을 것입니다. 마땅히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감사의 표시로 중학생 딸에게 준 상당액의 장학금을 전 선장은 어려운 베트남 어린이를 위해 쓰도록 되돌려 주었다. 많은 미담을 남기고 그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갔다.  
  자기에게 닥칠 불이익을 무릅쓰고 옳은 일을 행한 전사장의 미담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안겨 주었다. 전 선장의 용기있는 행동은 칭찬 받아 마땅하지만, 19년이 지난 지금까지 은혜를 잊지 않고 전 선장을 찾고자 애쓴 누엔씨의 행동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평소 가볍게 알고 지내던 월남 친구가 엊그제 나를 만나자 대단히 반갑게 인사를 한다. 전재용씨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따이한 마도로스 전재용 선장, 한 자랑스러운 한국인 때문에 지금 이곳 2백만 동포들은 기쁘고 행복하다.  
                  <2004년 9월 8일자>

회원:
0
새 글:
0
등록일:
2015.06.19

오늘:
0
어제:
0
전체:
30,2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