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미국을 점령하다?

2004.12.01 08:17

정찬열 조회 수:590 추천:52

                        
                                                      
  여자와 잠자리를 한 번 같이한 사람이 그녀를 정복했다고 떠벌린다면 그는 세상 여자들로부터 덜 떨어진 사람쯤으로 취급 받게될 공산이 크다. 만약 산봉우리를 한 번 올랐던 사람이 그 산을 정복했다고 우쭐댄다면 산이 웃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정복한다는 말은 함부로 사용하는 말이 아니다. 그런데 요즘 이곳 한인들의 활약을 보면 이러다가 한국사람이 미국을 정복하는 게 아닌가 하는 재미있는 생각이 떠오르기도 한다.
  이곳 로스엔젤레스에 윌셔 거리가 있다. 고층 빌딩이 몰려있는 이 지역의 대표적인 상업구역이다. 몇 년 전부터 한국인들이 이 거리의 빌딩을 하나씩 사 들이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이 부근의 대표적 대형 건물인 에퀴더불 빌딩까지도 한인 소유가 되어버렸다. 이를테면 광주 충장로 거리쯤인 노른자위를 한국인이 거의 차지하게 되었다는 얘기다. 한 걸음 더 나가 윌셔센터-코리아타운(WCKNC)지역으로 이름지은 주민의회를 신설하여 오는 12월 4일 의원을 선출하게된다. 이 선거에서 한인이 의회를 장악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모나 홉슨 WCKNC 선거관리 위원장의" 한인이 의회를 석권하더라도 다 인종이 섞여 사는 커뮤니티를 잘 대변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는 말은 현지 분위기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또 있다. 지난 총선에서 필자가 사는 오렌지카운티 어바인 시의원 선거에 한인 두 명이 동반 당선되는 쾌거를 이루었다. 레지스터를 비롯한 메스콤에서도 세 명을 뽑는 선거에 한인 두 명이 당선된 사실을 크게 보도했다. 어바인이 갖는 상징성 때문이다. 어바인은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수준 높은 도시이며 백인 보수지역이다.
  이번 선거에서 워싱턴주 S하원의원과 오레곤주 K하원의원이 재선되었고, 하와이주 대법원 판사인 M씨도 언론에 오르내렸다. 다른 여러 지역에서도 많은 한인들이 시의원과 교육위원 등의 선출직에 당선되었다.
  정치인의 성공은 개인적인 노력도 필요하지만 한인사회의 인적 경제적 성장의 바탕 위에 이루어진다. 이민 백년을 넘기면서 그 동안 쌓여왔던 한국인의 잠재력이 서서히 꽃을 피우고 있다.
   70년대 이후 급속히 늘어나기 시작한 미국 내 한인의 숫자는 현재 2백만을 훌쩍 넘는다. 통계를 보면 지난 2천년부터 금년까지 4년 사이에 17만 명이 이민을 왔다고 한다. 이는 멕시코 중국 필리핀 등에 이어 세계 여덟 번째다. 약간 다른 얘기지만 미국에 유학 와 있는 학생도 현재 20만 명에 달한다. 금년에 들어온 유학생만도 5만을 넘었다. 이 중 상당수는 미국에 남게된다.  
  이렇게 미국에 정착한 한국인이 각계 각층에서 만만찮은 실력을 쌓아가고 있다. 시집간 딸이 친정 위하듯 이민자는 고국 발전에 든든한 배경이 된다. 며칠 전 한국의 강재규 영화감독이 헐리우드의 영화흥행 회사인 CAA사와 계약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는 한국영화가 미국은 물론 세계로 통하는 공급망을 확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뉴스를 듣는 순간 A양이 떠올랐다. 변호사인 그녀는 진로를 바꾸어 2년 전 헐리웃 영화수입회사에 입사했는데 영화대본을 검토하여 수입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그녀의 일이다. 한국어를 잘하는 그녀가 이번 일에 한 몫을 했으리라는 것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집에 들어오면 T.V체널을 9번에 맞춘다. KCAL TV 앵커인 한국인 미아 리가 진행하는 뉴스를 보기 위해서다. 그 시간에 최희섭이나 박세리 등, 한국 선수들의 활약을 볼 때면 참 흐뭇하다. 운동선수들도 미국 내 한국인의 위상을 올려주는데 한 몫을 하고 있다.  
  10여 년 전, 미국의 어느 영향력 있는 잡지에서 '한국인이 몰려온다'는 기사를 표지로 장식한 적이 있다. 미국 속에 한국인의 위상이 아직 미미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어바인 선거와 윌셔-코리아타운 주민의회를 보는 주류 사회의 시선이 심상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멀지 않은 장래에 이런 제목의 신문 머릿기사가 등장하지나 않을까. "한국인, 미국을 정복하다"
(2004년 12월 1일 광주매일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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