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천적은 누구인가

2005.01.10 15:20

정찬열 조회 수:464 추천:40

          
                                            
  "결국, 나의 천적은 나였던 것이다." 조병화 시인의 이 한 줄 짜리 시를 처음 읽는 순간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다. 이 글은 천 줄 짜리 서사시 보다 나에게 더 큰 울림을 준다.  
  연말을 맞아, 계획했던 일 가운데 이루지 못한 일을 남의 탓으로 돌린 적은 없었는지. 너 때문에 일이 그르치게 됐다고 다툰 일은 없었는지 돌이켜 보면서 조용히 위의 글귀를 생각해 보았다.
  잘 못된 원인을 내 안에서 찾는 사람도 있지만 남의 탓으로 돌리는 사람도 많다. 사실 말은 쉽지만 잘못을 스스로 발견하고 인정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몇 년 전 일이 생각났다.  
  김대중 대통령 재임시절, 한국을 방문하여 택시를 탔는데 기사양반이 기분이 몹시 상해있었다. 무슨 영문이냐고 물었더니 "김대중이 때문에 아침부터 교통위반 딱지를 떼었다"는 것이었다. 교통법규를 지키지 않아 티켓을 먹은 게 대통령 때문이라는 얘기를 듣고 혼자서 웃었다.
  이렇게 자신의 잘못을 남의 탓으로 돌리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힘든 중에도 가진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내가 있는 이곳 오렌지카운티에 사는 P모씨는 소아마비로 한 쪽 팔을 쓰지 못하게 된 사람이다. 어릴 때 한국에서는 힘들게 자랐지만 고등학교 때 미국으로 건너와 대학을 졸업하고 지금은 은행 간부로 재직하고 있다. 이곳 한인회 이사장을 맡아 봉사활동도 열심이고 성한 사람 못지 않게 한 팔로 골프도 잘 친다. 함께 골프를 하다보면 두 팔을 가진 내가 부러울 만큼 어려운 샷을 잘 쳐내곤 한다.  
  엊그제 어느 신년 모임에 그와 나란히 앉아 저녁을 먹게 되었다. 요리는 스테이크로 통일되었던지 그에게도 같은 음식이 나왔다. 모두들 나이프와 포크를 들고 고기를 잘라먹고 있는데, 식사 중에 언 듯 보니 그는 고기를 자르지 못하고 포크 하나만으로 어렵게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내가 가만히 다가가 고기를 잘라 주었더니 그가 조용히 웃었다. 세상을 달관한 웃음이었다.
   며칠 전, 스키장에서 다리 하나로 유유히 스키를 타고 내려오는 사람을 멀리서 보았다. 그런데 내 곁을 스쳐 지나가는 그를 보니 등뒤에 구조대원 표지인 적십자 마크가 선명한 게 아닌가. 한 발로 스키를 타는 것만도 대견해 보였는데 스키장 구조요원으로 활약하고 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가진 것을 감사하며 거기서 길을 찾아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원래 길이란 없었다. 사람이 가니까 길이 생긴 것이다.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삶을 살아내는 저들이 부럽다. 만약 내가 저렇게 힘든 상황에 처했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 것인가 생각해 보기도 한다.
  걸어가는 사람에 따라 길은 달라질 것이다. 교통위반 딱지를 뗀 운전자가 법규는 지키지 않고 대통령만 탓하고 살아간다면 어떤 길이 만들어질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러면서 나는 지난해 이루지 못한 일의 대부분의 원인이 나에게 있었음을 반성한다. 건강을 위해 주말마다 조깅을 하겠다는 계획은 몇 주일을 하다 흐지부지 그쳐버렸고, 일기를 한 번 써보자고 다짐했던 일도 두 달을 넘기지 못했다. 사무실 일도 계획했던 목표에 훨씬 미치지 못했다. 그러고도 아이들에겐 한 번 계획한 일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호통을 쳐 왔으니 겉 다르고 속 다른 아버지가 되어버렸다.
  내 길은 내가 걸어감으로써 비로소 만들어지는 것. 반듯한 내 길을 한 번 만들어 보자는 그 다짐이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그것도 나 자신으로 인해.  결국, 나의 천적은 바로 나였던 것이다.
  새 해가 밝았다. 희망의 새 날을 맞아, 나는 스스로에게 경고를 보낸다. " 결국, 너의 천적은 너일 것이다." 두고 볼 일이다. <2005년 1월 12일자 광주매일칼럼>


회원:
0
새 글:
0
등록일:
2015.06.19

오늘:
0
어제:
0
전체:
30,2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