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마라톤 대회를 제안한다

2005.11.23 15:27

정찬열 조회 수:513 추천:24

      
지난 일요일, 제 19회 L.A국제마라톤 대회가 열렸다. 대회는 세계 100여개 나라에서 출전한 국가대표와 한인 600여명을 포함한 2만 4천여명의 아마추어 선수들이 참가하여 총 26.2마일(42.19Km)구간에서 화려하게 펼쳐졌다. 마라톤 대회라기보다는 거대한 스포츠 축제라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이 행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순전히 고등학교 2학년인 아들 때문이다. 5개월 전인 지난해 10월, 녀석이 L.A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힘들겠지만 한번 도전해보고 싶고, 완주하게 되면 대학입학사정에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해낼 수 있을까 싶었지만 좋은 경험이 되리라 생각되어 훈련에 참가하도록 허락했다. 3천 여명의 학생가운데 29명이 지원하여 매주 토요일 오전에 훈련을 했다. 첫 날은 3마일을 달리더니 조금씩 거리를 늘여가 대회를 앞두고 20마일까지를 완주했다.
3월 7일 아침 8시 30분, L.A 시장이 총을 쏘아 출발을 알렸다. 왕년의 권투선수 모하메드 알 리가 시장과 나란히 연단에 서서 달리는 마라토너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T.V가 실황을 중계했다. "2만 4천명의 마라토너가 2만 4천 개의 사연을 가지고 달리고 있다"는 아나운서의 해설처럼 피부색과 생각이 각기 다른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결승점을 향해 함께 뛰어가는 모습은 아름다웠다.  
화씨 80도를 웃도는 무더위 속에서 선수는 선수답게 기록을 위해 뛰고 아마추어는 아마추어답게 즐기며 달렸다.장애인을 위한 휠체어 경기가 함께 벌어졌다. 보통사람도 힘든 마라톤 풀 코스를 장애의 몸으로 도전하여 손으로 휠체어를 굴리며 달리는 모습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뚱보클럽 멤버들이 육중한 몸을 뒤뚱거리며 거의 걷는 수준으로 달리는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초등학교에서도 단체로 참가했는지 어린아이들이 함께 뛰는 모습이 보인다. 기차놀이하듯 끈을 메어 남편이 아내를 끌고 달리는 한국인 부부의 모습도 보이고, 교회단체로 출전한 한인들의 모습도 눈에 띈다. 마치 광주의 어느 거리 같다는 느낌이 든다.
아들 녀석에게 한 시간 간격으로 전화를 했다. 출발 시 들떠있던 목소리가 시간이 갈수록 힘들게 느껴온다. 다시 전화를 했더니 13마일 지점 언덕을 올라가고 있다고 했다. 너무 숨이 차고 힘들어 포기하고 싶다고 한다. 그 다음부턴 전화를 해도 통화가 되지 않는다. 견딜 수 없어 도중에 포기했는가 보다고 생각했다. 오후 세시경 전화가 걸려왔다. "아빠, I DID". 아들의 기쁨에 찬 목소리였다. "와-. 잘했다, 장하다" 나도 몰래 눈물이 핑 돌았다.       T.V를 보니 코스 중간 중간에 물을 준비해 놓고 마라토너에게 공급하는 모습이 보였다. 골인 지점에 마련된 가족과 마라토너들의 만남의 장소에는 '아빠가 자랑스러워요', '사랑해요, 당신' 등의 문구가 새겨진 피켓들로 장사진을 이루고있다. 땀으로 범벅이 뒨 마라토너들은 자신을 기다리는 가족들과 환한 웃음으로 포옹을 하고있었다.  골인 순간에 아들을 안아주지 못한 게 참 아쉬웠다.  
이 날 길거리 응원을 나온 인파가 백 오십만 이라고 한다. 집에서 T.V를 통해 지켜본 사람까지 합한다면 이번 마라톤대회는 명실상부한 축제 한마당이었다. 이 대회는 혼다사가 스폰서로서 경비일체를 부담했다. 하루에 끝나는 행사로서, 그리고 적은 경비를 들여 시민들이 함께 즐기며 이만큼의 홍보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이벤트가 마라톤 말고 또 있을까.
  이런 마라톤 대회가 미국엔 보스톤, 뉴욕, 그리고 L.A 대회를 합하여 세 개나된다. 그런데 한국엔 지역이름을 딴 마라톤대회가 있다는 얘길 들어본 적이 없다.
5.18 가까운 일요일을 택해 광주마라톤 대회를 시작하면 어떨까. 마라톤을 통해서 5.18정신과 광주를 국내외에 널리 알린다. 좋은 아이디어 아닌가. 처음엔 광주 시민이 참여하는 대회로 시작하여 점차 규모를 늘여 국제적인 대회로 성장시키면 되지 않을까.  L.A 국제마라톤대회를 지켜보면서 떠오르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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