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탄핵과 아들의 성적표

2005.11.23 15:31

정찬열 조회 수:439 추천:33

                                                        
퇴근 후 집에 돌아오니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우편으로 배달되어온 아들녀석의 성적표를 놓고 아내가 속이 상해 아들을 닦달하고 있다. 헌데 아들녀석은 성적이야 떨어졌다 올랐다 하는 게 아니냐며 엄마에게 따지는 모습이 도무지 양보할 기세가 아니다. 아내를 거들어 주고 싶었지만 아들의 주장이 당당했고, 무엇보다도 성적에 관한 한 학창시절에 내가 몇 점짜리였는지를 돌이켜볼 때 녀석에게 너그러워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이 일을 마무리해야할까 궁리 끝에 아들을 조용히 옆방으로 불러 앉혔다. 그리고 '지난번 시험에 최선을 다 했는가'를 물었다. 한참동안 말이 없더니만 '다음부턴 열심히 하겠습니다' 고 대답을 했다. 최선을 다했는가 물으면서 마음속으로 퀭기는 바가 없지도 않았지만, 아들의 기도 살리고 아빠 엄마의 체면도 지키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엄마가 아들을 닦달한 것은 지난 성적을 탓하기보다는 앞으로 잘하겠다는 답변을 듣고싶어서였을 터이니까.
대통령 탄핵 소식을 들으면서 미주 동포들이 분노하고 있다. 국회가 미쳤다, 국회를 탄핵해야 한다며 광화문에  몰린 수 만 군중을 볼 때 이번 사태는 야당의 명백한 잘못으로 보인다. 야당 일부에서 탄핵을 취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을 볼 때 탄핵은 야당의 실수로 생각된다.
여당의 지지가 치 솟고 있고 야당은 추락하고 있다. 자업자득이라는 생각도 든다. 지금 추세라면 다가오는 총선에서 여당이 압승을 할 것 같다. 개혁을 주장하는 당이 안정의석을 얻으면 입법을 통해 깨끗한 정치를 할 수 있는 제도적 바탕을 마련하게 될 것이다. 희망의 정치,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지난 대선 때 노무현 대통령을 성원했던 많은 사람들이 전화위복이 되고있다고 안도의 숨을 내쉬고 있다. 사필귀경이 아니냐며 반가워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곳 동포사회는 탄핵에 동의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그들의 논리는 이렇다. 대통령은 국가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사람이다. 각 정보기관은 정보를 수집 분석하여 예측 가능한 결과까지를 분석하여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있다. 이런 정보를 바탕으로 대통령이 고도의 정치적 계산으로 탄핵을 유도했다. 현 탄핵정국은 대통령의 도박이고 음모다. 대통령의 패에 전 국민이 놀아나고 있다. 야당이 대통령에게 농락 당했다. 이런 주장은 얼핏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필자는 탄핵을 찬성하는 이런 논리에 동의하지 않는다. 내가 지지했던 대통령이 국가를 혼란에 빠뜨리는 정치적 술수를 쓰지는 않았으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러나 탄핵을 막기 위해 대통령이 최선을 다 했는가 하는 지적에 대해선 답변이 궁해진다.
대통령이 사과를 하면 탄핵을 하지 않겠다는 야당의 제안이 있었지만 그것은 묵살되었다. 한술 더 떠 대통령은 총선 연계 발언으로 탄핵의 길을 가도록 야당에 빌미를 제공했다.
정치가 무엇인가. 국민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던가. 국민을 맘 편하게 할 방법이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게 정치하는 사람이 가야 할 길이 아닐까.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도 이기고 야당도 이기고 혼란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윈윈의 길' 을 포기하고 정치적 도박을 택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지난 시험에서 최선을 다 했냐는 아빠의 물음에 '다음부턴 열심히 하겠습니다'고 대답한 내 아들의 경우처럼,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들의 사과요구에 '다음부턴 잘 하겠습니다' 고 대답 한 마디 했더라면 오늘 같은 혼란은 초래하지 않았을 게 아닌가. 그것이 순리가 아니었을까. 대통령은 최선을 다 했어야 했다.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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