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교육에 대한 몇가지 의견

2005.11.23 15:34

정찬열 조회 수:582 추천:36



                             정찬열(남부한국학교장)

1. 시작하는 말

20년 가까이 뿌리교육의 현장에서 경험하고 느낀 점을 바탕으로 한국어 교육과 뿌리교육에 관한 몇 가지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당연히 미주 지역을 중심으로 한 얘기가 되겠지만 관심이 있는 분들께 작은 보탬이라도 되었으면 좋겠다.    
재외동포재단의 2001년 통계에 의하면 650여만 명의 한인이 159개국에 흩어져 살고 있다고 한다. 한 민족의 약 10분의 1에 해당하는 인구가 해외에 나가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이 가운에 미국에 뿌리내려 살아가는 한인이 200만이 넘는다고 하니 해외 한인인구의 3분의 1이 이 곳에 거주한다는 결론이 된다.  
이민자가 늘어나고 이민사회가 형성되면 그 사회를 구성하는 후손들에 대한 교육이 당면 과제로 떠오르게 된다. 후손들이 이주해 온 나라에 뿌리를 든든히 내려 잘 살아주었으면 하는 바램과 떠나온 조국을 잊지 않고 정체성을 간직하면서 살아가 주기를 바라는, 다소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조국을 떠났으면 그곳에서 확실히 뿌리를 내려 잘 살아가는 것이 본래의 목적에도 부합되고 떠나온 조국에도 떳떳한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논리의 문제일 뿐이다. 인간의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고 명쾌하게 무우 자르듯 재단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약간은 상충되고 논리에 어긋나는 바램일지 모르지만 사실은 이 두 가지 요구가 적절히 조화를 이룰 때 가장 바람직한 상태가 된다.  
어릴 때 부모를 따라 이민을 오게된 1.5세대를 포함한 현지에서 출생한 2세들이 청년기를 거치면서 거의 대부분 '정체성(Identity)' 관한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어릴 적엔 현지 아이들과 격의 없이 어울려 자라나지만 청년기에 접어들면서 '나는 누구인가' 하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피부색과 문화와 생활양식 등이 '다르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면서 그렇다면 나는 이 땅에 있어서 어떤 존재인가 하는 물음에 눈을 뜨게 되는 것이다. 이 문제를 슬기롭게 헤쳐나가지 못하면 자칫 좌절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예기치 않은 엉뚱한 길로 나아가게 된다. 그래서 그 나이가 되면 같은 피부색을 가진 아시안 친구들에 더 호감을 가지게 되고 '같은 점이 더 많은' 동족인 한인 친구들끼리 더 자주 어울리게 된다. 다소 빠르고 늦고 하는 차이는 있지만 이민자의 자녀들이 반드시 거치게 되어있는 이 과정을 잘 극복할 수 있도록 준비해 주는 것은 당연히 어른들의 몫일 수밖에 없다.
미국은 이민으로 이루어진 나라다. 세계 각처에서 모여든 이민자들이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지고 다양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대서양을 건너온 이민자들은 한 세대가 지나면 스스러움 없이 섞여 미 주류사회에 동화되어 살아가게 되지만 태평양을 건너온 이민자들은 세월이 가도 영원한 이방인으로 남아야 한다. 피부색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 사회의 중심을 이루는 백인(WASP White, Anglo-Saxon, Protestant)그룹에 섞일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 땅의 아시안 이민자들의 후손이 대대로 양어깨에 짊어지고 살아야 할 짐일 수 밖에 없다.  
이는 아이들이 청년기에 단 한 번 정체성의 문제로 혼란을 겪은 것이 아니라 평생을 인종문제로 인한 불이익을 당하면서 좌절하고 다시 일어서고를 되풀이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이나 일본에서 살아가는 동포들은 느낄 수 없는 하나의 멍에이다. 어릴 때 아이들에게 뿌리교육을 확실하게 시켜두어야 할 필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뿌리를 깊히 박아두면 아무리 큰바람이 불어와도 쓰러지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낳아 기르며 이런 어려움을 경험하게 되면서, 이들에게 민족정체성을 심어 주어야한다는 민족교육에 대한 요구가 현지 이민자들에 의해 자연 발생적으로 생겨났다. 이 일은 이민사회의 구심점이 되고있는 교회나 성당 등 종교단체에서 처음 시작됐다. 주로 한국에서 교직에 근무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시작은 되었지만 교과서나 현지에 맞는 교육과정의 불비, 그리고 여러 가지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하나씩 체계가 잡히고 시간이 흐르면서 관계자들의 노력으로 차차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게 되었다.
필자가 미국에 발을 딛게된 1984년은 한국어 교육과 뿌리교육에 대한 기운이 막 싹터 나오던 시기였다. 따라서 오자마자 자연스럽게 어느 교회의 한국학교 책임을 맡게 되었다. 그 후 몇 군데 학교를 옮기면서 봉사를 하게 되었고, 1995년 오렌지카운티 지역사회 인사들의 의견을 모으고 그들의 성원을 얻어 현재의 학교를 설립하여 교장으로 봉사해 오고 있다.

2. 뿌리교육과 민족공동체

한국어 교육을 비롯한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비롯한 민족의 뿌리에 관계된 모든 교육을 넓은 의미의 민족교육 혹은 뿌리교육이라고 부르는 데 이견이 없는 것 같다. 이민 1.5세나 2세의 정체성을 바로 세워주는데 뿌리교육이 절대로 필요하다는 언급을 했다. 그리고 이 일은 외부의 지시나 권고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민가정의 필요에 의해 자발적으로 시작되고 발전되어 왔다는 사실 또한 기술했다. 그러나 뿌리교육은 이 정도의 차원에서 논의되고 넘어갈 수 있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해외에 나가 살고있는 재외동포는 위대한 민족자산이다. 조국을 떠나 살게 된 이유야 여러 가지 이겠지만 대부분의 해외동포는 떠나온 조국을 생각하고 조국을 걱정하며 살아가고 있다. 국내에 거주하는 사람보다도 더 애국자가 되고 조국을 걱정하게 되는 것은 떠나온 땅에 대한 미련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시집간 딸이 친정을 걱정하고 못 잊어하는 모습과 비슷한 정서가 아닌가 생각한다.
해외동포 한 사람 한 사람은 대한민국의 외교관이다. 거주국 국민에게 한국의 문화를 전파하는 전도자이자 한국의 상품을 구입하고 선전하는 세일즈멘이며 세일즈 우먼이다. 좀 더 적극적 의미에서 해외동포는 그 만큼 우리의 국토를 넓혀가고 있는 개척자들이다. 이민 1세들이 그렇게 되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이해되지만, 이민 후손들이 계속 그들의 어버이나라를 조국으로 생각하고 사랑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에는 누구도 쉽사리 답을 할 수가 없다.
  우리의 후손들이 저희 부모의 나라를 조국으로 알고 사랑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저들의 가슴속에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정신을 불어넣어 주어야 한다.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은 조국에 대한 정당한 이해 없이는 불가능하다. 철저한 민족교육 뿌리교육이 선행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스라엘 민족이 세계 각국에 흩어져 살면서도 그 정체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고 중국의 화교들이 끈끈한 협동심으로 자신들의 부를 이루고 본국의 발전을 위해 큰 몫을 해 내는 힘의 원천은 말 할 것도 없이 그들의 뿌리교육이 튼튼한 때문이다.  
  메스콤과 통신수단의 발달로 국경의 의미가 점차 엷어져 가는 요즈음은 민족이라는 개념이 달라지고 있다. 한정된 '국토 안에 사는' 의미보다는 '어디에 살던지 같은 인종'의 의미가 훨씬 강조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해외에 거주하는 동포들의 문제에 보다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할 당위성이 그만큼 더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3. 뿌리교육을 위한 지원은 잘 되고있는가      

뿌리교육은 이민자 개인 차원을 넘어 민족적 범주의 크고 넓은 테두리 안에서 생각해야 할 문제이다. 국가 경영의 차원에서 기획되고 실천되어져야 할만큼 중요한 명제이다. 그러면 과연 이러한 요청에 걸 맞는 본국 정부 차원의 정책적 지원이 있어왔는가. 그리고 이민자들 역시 그 만큼 뿌리교육을 중시하며 아이들을 교육시키고 있는가.
당연한 얘기지만 민족교육을 위한 지원은 한국의 국익을 위한 '한국국민'이 되도록 지원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이민 후손들이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간직하고 한국인으로서 긍지를 가진 당당한 '한국계 미국인' 으로 성장하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언급한 바와 같이 650만이 넘는 해외 한인은 대단한 민족적 자산임에 틀림이 없지만, 이 자산이 명실상부한 '민족적 자산'이 될 수 있기 위해서는 민족의 얼이 담긴 살아 숨쉬는 자산이 되어야 한다. 잠자고 있는 해외 한인을 민족정신으로 일깨워 줄 때 비로소 진정한 민족자산이 될 수 있다.
우리 정부는 그 동안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필요한 만큼의 지원과 성원을 해 오고 있는가. 서울대 김신일 교수가 1997년에 쓴 '해외 차세대를 위한 민족정체성 교육'이라는 논문을 보면 "해외 차세대를 위한 민족정체성 교육은 비교적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해외 차세대의 모국방문단 교육은 20여년을 헤아린다. 그러나 현지에서의 민족정체성 교육 또는 민족 문화교육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한 것은 10년 전부터이다. 그러다가 1980년 중반부터 해외동포에 대한 민족교육에 관한 논의가 국내외에서 갑자기 활발해졌다. 특히 1993년에 출범한 문민정부가 '국제화'와 '세계화'를 국정지표로 내 세우면서 해외동포 교육을 위한 정책을 강화하기 시작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교육 현장에서 실제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입장에서 보면, 정부에서 그 동안 해외 동포 자녀들을 위한 교과서를 제정하여 공급해주는 것 외에 피부에 와 닿을 만큼의 실질적 지원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일년에 한 번 한국학교 운영보조금으로 약간의 지원금을 받기는 하지만 그 액수는 그야말로 '명목상'의 액수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한국학교가 주말에 운영되고 있는데 교회나 성당 사찰 등 종교단체에서 선교의 목적을 겸하여 운영하는 학교들이 대부분이고 우리 학교처럼 컴뮤니티 차원의 후원을 받으며 운영되고있는 학교는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이다. 종교단체의 학교는 학교 장소도 자기건물을 이용할 수가 있고 교사 또한 소속 종교단체의 인원으로 충당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재정적인 문제는 사실상 없다고 보아야한다. 반면에 컴뮤니티 학교는 우선 교실을 렌트를 지불하며 빌려 써야하고 교사 대우 역시 종교단체 학교에 비하면 재정적인 부담을 주는 요인이 된다. 이런 여러 가지 사정을 감안한 실질적이고 필요한 지원이 이루어 졌으면 좋겠다.
교포들이 모금을 하고 정부에서도 상당한 액수를 지원하여 최근 L.A에 각종 세미나와 행사를 개최할 수 있는 교육관이 들어섰다. 그런데 이 건물이 L.A통합교육구 산하 성인대학으로 영어와 컴퓨터 등을 가르치는, 주로 L.A에 사는 성인들을 위한 학교로 운영될 모양이다(2002년 9월 27일 미주중앙일보 참조). 교포사회의 정성을 모아 모처럼 큰돈을 들여 힘들게 마련한 이 건물이 뿌리교육을 위해서도 많이 활용되었으면 좋겠다.  
뿌리교육이 자생적으로 이민자들의 필요에 의해 시작된 예에서 볼 수 있듯이 뿌리교육의 성패는 외부로부터의 지원이 아니라 자녀들에게 반드시 민족교육을 시켜야겠다는 부모들의 마음가짐에 달려있다. 일주일에 한 번씩 한국학교에 보내는 것으로 자녀들의 뿌리교육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부모들이 많이 있다. 아이들을 주말 학교에라도 보내는 부모는 그래도 나은 축에 드는지도 모른다. 미국에 왔으면 미국사람이 되어 살아가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영어를 더 잘 해야한다는 논리로 아이들에게 민족교육을 아예 시키지 않는 부모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MIT나 칼택, 그리고 UC버클리는 중국 학생들이 많기로 소문난 곳이다. 이들 학교에 재학하는 중국인 아이들이 중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 얘기이다.  아이비리그 대학엔 소수민족 중 유태인 학생이 가장 많다. 유태인들이 수 천년간 세계 각처를 떠돌아다니면서도 자기들의 언어와 전통을 간직하며 세계에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던 것은 두말 할 필요도 없이 그들의 뿌리교육이 철저했기 때문이다. 정체성과 자긍심을 심어준 민족교육이 주류사회 진출의 원동력이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한인 부모들이 정신을 차려야 한다. 주말에 한 번 한국학교에 보내는 것 만으론 턱없이 부족하다. 가정에서 일상적으로 한국어를 꾸준히 사용하고 스스로 스승이 되어 뿌리교육의 중요성을 심어주어야 한다. 참된 뿌리교육은 이민자의 가정에서 부모와 자식사이에 이루어지는 것임을 학부모가 알아야 한다. 자녀에게 뿌리교육을 시키는 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당위의 문제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4. 뿌리교육의 현장

"우리 아이들이 / 지구 한 모퉁이 호랑이 모습 한반도 / 배달의 자손임을 잊지 않고 마음속에 간직하여 / 항상 겸손하면서도 예의바르고 정직하게 / 그리고 당당하게 이 땅을 살아갈 수 있는 / 그 기본을 가르칠 수 있는 / 지혜와 은총을 주시옵소서"
이 글은 매주 토요일 아침 우리학교 선생님들이 교사회의를 시작하면서 드리는 기도문의 일부이다.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학교가 어디 우리학교 하나 뿐이겠는가.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선생님들을 볼 때마다 저들을 위해 정성을 다 하는 선생님들을 대할 때마다 역사에 대한 그리고 핏줄에 대한 어떤 숙연함을 느끼게 된다.  
주말 한국학교에 있어서 교사의 역할은 특별히 중요하다. 필요한 지식이나 경험과 함께 뿌리교육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사명감이 있어야 한다. 한국어는 이곳에서 태어난 아이들 입장에서 보자면 외국어이다. 따라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기술과 경험 그리고 상당한 인내가 필요하다. 한국어를 안다고 누구나 교사가 될 수는 없다.
주말 한국학교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곳은 교회를 비롯한 종교단체의 학교이다. 뿌리교육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처음 시작한 곳이 교회학교 이기도 하지만, 현재 상당수의 교회학교들이 전교 수단의 하나로, 혹은 다른 교회도 하는데 우리교회도, 하는 식으로 한국학교를 세워 운영하고 있다. 특별한 교육과정을 도입하여 모범적으로 잘 하고 있는 학교도 물론 있지만 많은 교회 학교가 그렇다. 뿌리교육이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교육의 질이 문제가 된다. 그렇지만 학부모들은 체면 때문에 또는 여러 가지 인간관계 때문에 자기교회 학교가 아닌 다른 학교에 아이들을 보낸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교회학교에 학생을 보내는 또 하나의 이유는 학비 때문이다. 일반 학교에서 일년 평균 300달러에서 400달러 정도의 학비를 받는다. 아이가 두, 세 명이 되면 상당한 부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교회학교는 자체 건물을 이용하고 신자들이 봉사 차원에서 교사를 자원하니 학비를 받지 않고도 운영이 가능하다. 구조적으로 교회학교가 유리할 수밖에 없다. 제대로 교육을 하겠다고 설립된, 교회학교가 아닌 우리 같은 커뮤니티 학교의 학생이 줄어드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교회학교가 양적인 면에서 뿌리교육의 확산에 기여한 측면을 부정할 순 없지만, 결과적으로 교육의 질을 떨어뜨리고 아이들의 귀중한 시간을 허송하여 뿌리교육 기회를 앗아가게 한 부정적인 측면은 집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학생이 해마다 줄어든다고 한다. 요 근래 부쩍 더 많이 줄었다고 학교 책임자들이 입을 모아 얘기한다. 원인이 무엇일까. 위에서 언급한 대로 교회학교가 많이 늘어난 것도 하나의 이유지만 그것이 이유의 전부는 아닌 것 같다. 학부모들이 전처럼 열성을 보이지 않고 메스콤에서도 뿌리교육에 대해 이전처럼 관심을 두지 않는 때문이 아니냐는 의견을 내 놓은 분도 있다.
뿌리교육의 앞날이 불안하다. 벌써 그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금년도 가을학기부터 L.A에 있는 모 한국학교가 학생모집을 중단했다. 20년 훨씬 넘게 뿌리교육에 헌신해온 학교가 학생들이 줄고 재정적인 어려움을 견딜 수 없어 문을 닫게 된 것이다.
다시 교실로 돌아와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매주 토요일 아침 기쁜 마음으로 한국학교에 나오는 아이는 거의 없다. 토요일 휴일에 이런저런 즐거운 일들을 다 팽개치고 한국학교에 와서 공부해야 한다니 좋아하는 어린이가 어디 있겠는가. 이런 아이들을 거의 억지로 끌고 학교에 와야하는 부모들의 입장도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한국어를 익혀나가면서 그리고 머리가 굵어지면서 아이들 스스로 뿌리교육의 필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한다. 그 정도가 되면 자발적으로 공부에 참여하게 된다.  우리학교 강주희 학생이 쓴 글 '기다려지는 토요일' 이란 작문을 함께 읽어보기로 하자.
- "주희야 한국학교 가야지, 어서 일어나거라" 하시는 엄마의 말씀이 나는 너무 싫었어요. "토요일 아침에 만화영화도 보아야 하고 친구들과 야구 구경도 가야하는데..." 하고 엄마한테 짜증을 부리곤 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랑 미국학교에 갔었을 때 우리엄마는 자랑스럽게 "주희는 토요일에 우리말 배우러 한국학교에 다닌답니다." 하고 이야기 하니까, 미국선생님은 말씀하시기를 "나의 어머님은 이태리에서 오셨는데 나에게 이태리 말을 안 가르쳐 주셔서 말을 못 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한단다." 하시면서 "너는 참 훌륭하구나. 열심히 공부해라." 하시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습니다. 나는 그 말씀을 들은 후부터는 토요일이 기다려졌습니다. 어려웠던 한국말도 선생님이 재미있게 가르쳐 주신답니다. 나는 미국에서 살고 있지만 한국말을 잘 해서 이 다음에 자라서 훌륭한 일을 할 것입니다. -
조금 힘이 들어도 이렇게 한국어를 배운 아이들은 진학이나 취업, 그리고 살아가는데 현실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게 된다. 그러나 어릴 때 한국어를 배우지 못한 아이들은 머리가 큰 다음에 반드시 후회하게 된다. 자기들 손목을 끌고 억지로라도 한국말을 가르쳐주지 않았던 부모들을 원망하게 된다. 지난 7월만 해도 대학을 졸업한 딸이 한국과 관련된 변호사 업무 때문에 한국어를 배우려하는데 특별 지도를 해 줄 수 없겠냐는 전화를 받은 적이 있는데, 이 같은 일은 20년 가까운 한국학교 생활을 통해 수 차례 경험한 적이 있다.
다음엔 교과서를 비롯한 교육자료에 관해 몇 마디 언급하고자 한다. 교육부를 통해 제공되고 있는 몇 가지 자료가 있긴 하지만 좀더 다양하고 치밀하게 교육적 가치를 지닌 자료를 만들어 공급해 주었으면 좋겠다.  
  한국어 교육이 뿌리교육의 중요한 부분임에는 틀림없으나 한국어 교육이 곧 바로 뿌리교육일 수는 없다. 뿌리교육은 한국어는 물론 우리의 역사와 문화 등을 포함한 포괄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뿌리교육은 한국어를 통해서 또는 한국어와 함께 할 수도 있지만, 한국어와 별개의 개념으로 또는 한국어 교육과는 별도의 방법을 통해서도 이루어질 수도 있다는 얘기이다. 각 지역의 사정을 고려한 정부의 성의 있는 지원이 있었으면 한다.

5. 미주 이민 백 주년과 뿌리교육의 전망

오는 2003년 1월 13일 이면 미주 이민 100주년이 된다고 한다. 하와이 호놀룰루에 도착한 102명으로 시작된 미주 한인 숫자가 현재 200만이 넘는다고 한다. 인구가 증가한 만큼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해야할 일과 책임질 일이 많아질 것이다. 미국 안에서 한인들의 역할이 많아지고, 조국과의 관계에서도 미주 한인들이 조국을 위해 기여할 일도 그리고 조국에서 우리에게 거는 기대도 늘어날 것이다.
국내 사정도 남북한 관계가 많이 개선될 조짐이 보이고 통일로 가는 길이 그리 멀지 않아 보인다. 그 동안 꾸준하게 실시해온 햇볕정책이 이제야 햇볕을 보기 시작하는 것 같다. 경의선 철도와 동해안 도로가 뚫려 남북이 하나로 이어질 날이 눈앞에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의 조국 한 반도가 동북아 물류의 중심이 된다고 한다. 북한도 이러한 시류에 맞춰 신의주를 경제특구로 지정하여 외국인을 책임자로 임명하는 등, 발 빠르게 개방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한 반도에 상당한 변화가 예상되고 있다.  그리고 월드컵 4강 신화를 만든 한 국민의 자긍심도 어느 때보다 높은 시점이다. 바야흐로 민족중흥 국운융성의 시대가 오는 듯 싶다.
한 민족의 융성을 위해 온 민족이 뭉쳐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남북이 하나로 합하고 국내와 국외에 있는 민족이 모두 하나로 결속되고, 그리하여 우리 민족의 역량을 한 번 우리 스스로 확인해 볼 수 있는 시간이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다. 같은 언어를 쓰는 한 민족이 서로 얼싸안고 한 목소리로 조국을 노래할 날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언어는 민족을 확인시켜주는 중요한 요소이다. 언어를 간직함으로써 민족의 맥을 이어갈 수 있다. 자국민의 언어가 널리 퍼져간다는 의미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의 힘이 그만큼의 크기로 확장되어 간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언어가 세계로 퍼져나간다는 의미는 우리의 문화가 언어와 함께 국제적으로 퍼져나가 인정을 받게 된다는 뜻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1997년 미국의 대학 입학 수능시험인 SAT II에 한국어가 제 2외국어로 채택된 것은 이민 백주년 사에 기록할 만한 대단한 사건이었다. 서울대 이광규 교수에 의하면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신 이후 최대의 경사였다. 이것은 한국어가 국제어로 승격 된 계기가 되었으며, 이러한 영향을 받아 일본과 호주에서도 한국어가 대학입시를 위한 외국어 과목으로 채택되었다.  
SAT II에 한국어가 채택된 후 메스콤은 대대적으로 이를 홍보했으며, 그런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었던가 한국학교는 학생들로 넘쳐났다. 사실 SAT II시험에 한국어가 채택되게 된 배경도, 그리고 97년 이후 SAT II 시험에 매년 2000명 이상의 학생이 꾸준히 응시할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도 따지고 보면 그 동안 주말학교에서 열심히 아이들을 가르쳤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시험에 응시할 만한 인적자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2000년 발행된 미주한국학교연합회에서 발행한 논문의 통계에 따르면 현재 미국내의 주말 한국학교는 1,050개이며 9000여명의 교사가 90,000여명의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숫자는 해마다 줄어들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줄어들 것이라 예측된다.
우선, 한국 국내사정의 호전으로 인해 미국 이민 숫자가 줄어들 것이며 그로 인해 한국어를 배워야할 어린이도 당연히 감소하게 될 것이다. 다음으로 1.5세대 혹은 이민 2세 부모들이 늘면서 그들의 자녀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야 겠다는 열성이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그들은 조국에 대한 관심 그리고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1세인 부모세대의 그것에 훨씬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주말학교 학생들이 줄고있는 현실은 벌써 그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증거로 보아야 할 것 같다.
  물론 학생들의 숫자가 줄어든다고 해서 뿌리교육에 대한 필요성이 줄어든다는 얘기는 아니다. 아이들의 숫자에 관계없이 뿌리교육은 꾸준히 계속되어야 한다. 다만 그런 변화를 예측하고 그에 대한 대비책을 미리 강구해 나가야 할 필요는 있다. 뿌리교육의 성패가 SAT II 한국어 시험에 좌우되는 것은 아니지만 SAT II 한국어가 활성화되면 그만큼 한국어에 대한 관심도 국내외적으로 높아져 결과적으로 뿌리교육에 대한 이해와 관심도 높아질 것은 자명한 순서이다.
  SAT II 한국어 시험이 계속 유지되기 위해서는 매년 일정 숫자 이상의 학생이 이 시험에 응시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인 학생은 물론 더 많은 비 한국계 학생이 시험에 응시하도록 해야한다. 그것은 한국어의 국제화를 위한 당연한 요구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SAT II 한국어 진흥재단에서 작년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미국의 고등학교 교장들을 한국으로 초청해 각 고등학교에 한국어 반을 개설하도록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는 것은 대단히 적절한 활동이라고 본다.
SAT II 일본어 응시생의 70%이상이 비 일본계 학생인 반면 SAT II 한국어 응시생의 95%이상이 한국계 학생이라는 사실, 그리고 미국내 900여 고등학교에서 일본어를 제2외국어로 채택하고 있으나 한국어를 채택하고 있는 학교는 현재 40여개교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앞으로도 계속적으로 한국어가 SAT II로 채택될 수 있기 위해 어떤 일을 해야하는가 하는 방향을 명확하게 제시해주고 있다.
북한이 앞으로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활발하게 움직일 것으로 예측됨으로 이에 대한 남북언어의 통일문제도 뿌리교육 차원에서 연구 검토 실행해야 할 문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것은 통일 한국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의 의미도 될 수 있다. 서로 다른 남북의 언어규범을 통일시키는 문제야 본국정부의 소관이라 하더라도 상대적으로 정치적인 영향이 적게 미치는 이곳 미주 이민사회의 관계자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가 아닌가 한다. 한국어가 명실상부한 국제어가 되기 위해선 세계의 중심인 미국사회에서 인정받고 사용될 수 있어야 한다는 특수한 상황을 고려할 때 더욱 그렇다,
앞으로 100년 후, 미주 이민 200주년이 되면 우리 언어는 미주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처해 있을까. 세계 경제를 주름잡은 통일 한국의 영향 때문에 각 고등학교에서 다투어 한국어를 제 2외국어로 채택하고 SAT II시험에 너무 많은 학생이 몰려 즐거운 비명을 지르지나 않을까.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외국학생들 때문에 학교에선 한국 학생들의 인기가 올라가고, 우리 아이들은 뿌리교육을 시킬 필요도 없이 자발적으로 한국어를 배우려 하는 그런 상황이 되지 않을까. 기다려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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