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 가십시다

2005.11.23 15:36

정찬열 조회 수:420 추천:28


  당신께서는 혹시 이런 경험이 있으십니까.   어둑어둑한 새벽, 닭 울음소리와 함께 잠에서 깨어나 종일토록 논밭에서 허리 굽혀 일 해보신 적이.  하루 일을 마치고 석양에 기-ㄴ 그림자를 끌며 막막한 심정으로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오던, 하루해가 유난히도 길던 그런 날들을 기억 속에 간직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한 짐 무거운 짐을 지게에 지고 언덕길을 오를 때의 그 가슴 미어지고 숨이 다 막히던 고통과, 짐을 부려버린 다음의 날아갈 것처럼 시원하던 경험을.... 이런 경험들을 가지고 계십니까.  
젊은 시절, 젊다기 보다는 차라리 어린 시절에 혹시나 이런 경험을 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또래의 친구들이 중학교나 고등학교 배지를 달고 학교에 다니는 모습을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신 적이.  강아지와 염소와 그리고 눈이 크던 이웃집 황소와 친구가 되어 살아본 적이, 그리고 밤이면 달빛 쏟아지던 뒷산을 거닐며  크고 작은 소나무들과 밤새워 얘기를 나누던 그런 추억이 있으십니까.  칠흑 같은 밤, 강가 절벽에 서서 소리치면 메아리조차 들려오지 않던 캄캄한 그런 시절이 기억 속에 있으십니까.  인생이 무엇인지 알 수도 없는 나이에 이미 인생의 절반쯤을 배워버린 듯 싶은 그런 애 어른을 당신은 만나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모처럼 고향에 가 보았습니다.  어릴 적 추억이 담겨있던 그 들판을, 논두렁과 밭이랑을 거닐어 보았습니다.  앞산과 뒷동산, 그리고 물때 따라 강물이 들고나던 그 강변도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나 고향은 예전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출렁이던 강물은 온데 간데  없고 그 자리엔 푸르게 푸르게 모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개펄은 막아 논을 만들고 산은 밭이 되고 여기저기 길이 뚫리고, 그리고 마을이 들어서고 있었습니다.  많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많이 달라져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남아있는 것 또한 많았습니다.  어릴 적 올라가 놀던 동네 앞 당산나무, 월출산 너머로 달이 휘엉청 뜨는 날이면 밤이 이슥하도록 앉아있었던 뒷등 비석거리,  금간 비석이 비스듬히 기울어진 30여년 전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비석 주위에 거름 무더기가 쌓여 퇴비냄새가 나는 것도 옛날 그대로였습니다. 그 모습 그 냄새 그대로가 놀랍게도 옛날 그대로 살아있었습니다.
낙안촌 도리촌 같은 동네 이름이랑, 큰골 작은골 잠사골 강두메 썩굴 가락끝 같은 귀에 익은 골짜기나 등성이 이름이 그때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어느 해 칠월 칠석, 안개 자욱한 밤에 오손도손 새도록 정다운 이야기를 나누었던 그 무덤이랑 잔디밭도 거기 그대로 있었습니다.  보리 모가지 오지게 여물어 가는 오월이면, 높새바람에 푸르름이 물결처럼 넘실거리던 보리밭. 동네 처녀들이 동백아가씨를 흐드러지게 부르며 넘어가던 그 밭 잔등을 바라보면서 나는 어느새 시골 머시매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삼십 년도 넘은 아득한 옛날이지만, 비록 지금은 많이 달라져 있지만, 지난 세월을 되돌아본다는 것은 의미가 있는 일일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 길들을 천천히 걸으며 하나씩 그 곳에 뿌려두었던 추억을, 기억을 더듬어가며 꺼내 보았습니다.  처음엔 희미하던 것들이 차츰 또렷해지더니 마침내 놀라울 만치 생생하게, 마치 비데오를 찍어두었다가 꺼내어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살아나는 것이었습니다.  울고있던 내 유년의 모습이, 방황하던 젊은 시절이, 그리고 마침내 길을 찾아 나서는 그때의 내 모습이 고스란히 그 자리에 살아있었던 것입니다.    
길을 걷다가, 걸어 가다가 발이 멈추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아버님이 누워 계시는 산자락 끝까지 걸어온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나를 되돌아본다는 것은 나 자신과 함께 나의 뿌리가 닿아있는  아버지도 함께 생각해 본다는 의미가 될 것입니다.  교육자로서 평생동안 아
이들을 가르치다 이곳에 묻히신 아버지.  바위처럼 산처럼 우리 곁에 계시다가 구름처럼 바람처럼 어느 날 우리 곁을 떠나가신 아버지.  맑고도 곧게 푸른 하늘처럼 한 생을 마치신 우리 아버지.  당신이 보여주신 한 생애가 나도 모르게 내 삶의 일부분이 되고있듯이, 내가 살아가는 모습 하나 하나가 이젠 내 아들의 삶 속에 그렇게 스며들 것이라는 사실을 조금은 두려운 마음으로 지금 이 자리에서 깨닫고 있습니다.
고향을 찾아보고 난 후, 나처럼 시골에 고향을 가진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깡촌, 어두운 밤을 촛불 하나로 밝히던 시절을 살아 온, 산과 들과 풀과 나무를 벗삼아 살아 본,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이제와 생각하면 참으로 귀한 고향을 가진 게 아닌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고향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에게, 가고 싶어도 고향을 찾아갈 수 없는 많은 사람들에게 미안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고향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내 가슴속에 고향하나 품고 살아간다는 의미는,  우리의 삶을 그만큼 따뜻하게 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힘들고 괴롭고 외로운 때가 없겠습니까. 그때마다 가슴속에 담겨있는 그 추억하나 꺼내어 봅니다.  세상일이 힘이 들 때면 무거운 짐을 지게에 지고 언덕을 오르던 생각을 합니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숨이 컥 막히던 그 순간을 떠올립니다.  언덕을 다 올라와 쉼터에 잠시 지게를 받치고 땀을 닦을 때의 그 시원한 바람도 생각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거운 짐을 부려 버릴때의 그 후련함까지도 함께 떠 올려 봅니다.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는 추억 속의 나를 꺼내어 봅니다.    
  고향이 없으십니까.  고향 하나 만드십시오.  어제 내가 살던 곳이 곧 오늘의 고향입니다.  그것을 그리워하고 그곳에서 위안을 얻으시고 희망하나를 거기서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은 훌륭한 고향이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고향에 가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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